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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동상, 생가? 그런 이야긴 제가 죽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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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봉준호 "동상, 생가? 그런 이야긴 제가 죽은 후에"

봉준호, 송강호 등 12명의 제작진과 배우 모인 <기생충> 기자회견

"저도 기사 봤습니다. 동상이랑 생가. (웃음)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시면 좋겠고.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런 기사는 넘겼습니다. 그걸 갖고 제가 딱히 할 말이."

<기생충> 기자회견장에서 정치권 일각의 봉준호 생가터 복원, 영화박물관 건립 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촌평했다. 끝인사로는 "영화 자체가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기생충>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19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생충>을 계기로 한국에 알려진 '오스카 캠페인',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성격과 호응의 이유, 그리고 '포스트 봉준호'라는 화두에 대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웃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 ⓒ프레시안(최형락)


오스카 캠페인은 "물량 열세를 열정으로 메꿨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을 "열정으로 메꾼 게릴라전"이라고 회상했다.

봉 감독은 "저희가 처한 상황은 북미 배급사 네온은 중소배급사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였다. 사실 게릴라전이라고 할까. 다른 거대 스튜디오나 넷플릭스에 비하면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예산으로, 대신 열정으로 뛰었다"며 "그 말인즉슨 저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 흘릴 일이 많았다는 것인데 600회 이상의 인터뷰와 100회 이상의 Q&A, 관객과의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다른 경쟁작이 LA 시내 광고판에 광고를 내고, TV와 잡지에 광고를 내는 물량 공세였다면 저희는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팀워크로 물량 열세를 커버하며 열심히 한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봉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한때는 바쁜 창작자들이 창작 일선에서 벗어나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 캠페인을 하는 게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 적도 있었다"며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밀도 있고 깊이 있게 검증하는구나. 어느 작품이 뛰어났고, 어떤 사람이 참여했으며,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점검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화제가 됐던 "오스카는 로컬" 발언이 계획된 것이냐는 질문에 봉 감독은 "처음 캠페인 하는 와중에 도발씩이나 했겠나"라며 "칸, 베니스, 아카데미 등 여러 영화제를 비교하는 대화를 하다 자연스럽게 쓱 나온 건데 미국 젊은이들이 트위터에 많이 올렸던 것 같다"고 답했다.


송강호 배우는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 "처음 경험하는 과정이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갔다고 해도 무방한데 6개월간 최고의 예술가들과 같이 호흡하고 늘 보면서 얘기 나누고 작품도 보고 이런 과정을 갖다 보니 내가 아니라 그분들이 얼마나 위대한가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만큼 위대한 예술가들을 통해 많은 걸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 <기생충>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 ⓒ프레시안(최형락)

"<기생충>은 처음부터 엔딩까지 빈부격차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영화"


봉 감독이 그간 <괴물>, <설국열차> 등에서 '빈부격차'라는 주제를 꾸준히 다뤄왔는데 왜 <기생충>이 이토록 주목을 받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봉 감독은 먼저 <기생충>이라는 작품의 성격에 대해 "제가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만들려는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는 건 싫었다"며 "이(<기생충>)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적인 면도 있지만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씁쓸함을 1센티미터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엔딩까지 그런 문제(빈부격차)를 정면 돌파하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어쩌면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이유로 영화에 달콤한 장식을 입혀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며 "최대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려 한 게 대중적인 면에서 위험해 보일 순 있어도 그게 영화가 택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다행히 한국에서 1000만 이상의 관객이 호응했고,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베트남 일본, 영국, 북미 등 전 세계적으로 호응을 받은 부분이 기뻤다"며 "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서 호응했는지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해봐야 할 것 같은데 제 업무는 아닌 것 같고, 많은 평론가, 기자, 관객의 평가를 통해 자리매김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단, 봉 감독은 "<괴물> 때는 괴물이 한강 변을 뛰고 <설국열차>는 미래의 기차가 나오는 등 SF적 요소가 많았는데 이번 영화는 그런 게 없다”며 "동시대 이야기고 이웃에서 볼법한 이야기를 배우들이 뛰어난 앙상블로 실감 나게 표현한 부분이 폭발력을 가졌던 것 아닐까. 스스로 짐작만 해봤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봉 감독과 같이 각본을 쓴 한진원 작가는 <기생충>이 세계적 호응을 얻은 데 대해 "그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매번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우리 영화에는 캐릭터들이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각자에게 드라마, 욕망, 이유가 있어 모두가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플롯을 따라갈 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 <기생충> 기자회견에는 CNN, BBC 등 외신을 비롯 500여 개 매체의 기자들이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영화 산업은 더 도전적인 이야기를 수용해야 한다"

실험적 작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금의 영화 산업 구조에서는 '포스트 봉준호'가 나올 수 없다는 데 대한 봉 감독의 생각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봉 감독은 "'요즘 젊은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봉 감독의 데뷔작)나 혹은 <기생충>과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를 들고 갔을 때 투자를 받고 영화 촬영에 들어갈 수 있나'라는 질문을 냉정하게 하면, 제가 1999년 데뷔할 때보다 젊은 감독이 이상한 작품, 모험적 시도를 하기 어려워지는 경향"이라며 "재능있는 친구들이 산업에 흡수되기보다는 독립영화를 만들고 독립영화와 산업의 메인스트림(주류)이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2000년대 초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당시에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의 다이나믹한 충돌이 있었는데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며 "80, 90년대 붐을 이룬 홍콩 영화 산업이 어떻게 쇠퇴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갖고 있다.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한국의 영화 산업이 영화가 갖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고 더 도전적인 이야기를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봉 감독은 "최근에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많은 재능이 이곳저곳에서 꽃 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영화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라며 희망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 손을 흔들고 있는 봉준호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기생충>이 영화 자체로 기억되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 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은 <기생충>에서 비롯된 긴 여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끝인사를 전하는 자리에서 제작진과 배우들은 영화 제작과 오스카 캠페인 과정에서 고생한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본업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살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 자리에서 봉 감독은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봉 감독은 "작년 5월 칸부터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고,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지만 사실 영화 자체가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라며 "배우들의 멋진 아름다운 한순간의 연기, 모든 스태프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장면 하나하나, 그 장면에 들어간 저의 고민, 이런 것들로 영화 자체로 기억되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봉준호, 송강호 등 12명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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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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