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문재인 대통령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정권'이라는 말을 당연히 사용해 왔다. 과연 그런가. 2016년의 촛불항쟁이 중반에 접어들 시점에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회의에서 사회자가 민주당의 참여 여부를 안건으로 올렸다. 당시 불교계의 대표로 운영위원과 정책기획팀으로 참여했던 필자는 일곱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토록 야만적이고 부조리한 박근혜 정권에 대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등 민주당이 정권 내내 단 한 번도 야당답게 싸운 적이 없었던 점, 그동안 촛불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퇴진까지는 바라지 않는 등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고 있는 점, 나아가 촛불이 기득권의 교체가 아니라 정권교체로 이어지면 죽 써서 뭐 주는 격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약간의 논란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참여시키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 후에도 민주당은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계속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촛불에 밀려 탄핵에 동참했다. 민주당은 엄연히 촛불의 주역이 아니었다.
과정의 정당성도 없다. 왜 촛불항쟁 이후에도 서민과 노동자의 삶에 달라진 것이 없는가. 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진보의 분열을 빼면 나머지 세 가지는 현 정권과 여당에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당시 촛불을 든 시민의 저층에는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게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불평등은 현 정권에서 더욱 심화하였다. 이의 완화책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시늉에 그치고 조세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IMF조차 성장정책을 반성하고 있는데, 현 정권은 성장정책으로 회귀하고 반노동 · 친기업으로 전환하였으며, 철저히 노동을 배제하고 있다.
둘째, 촛불항쟁에도 '자본-정권-사법부-보수언론-종교 권력층-김앤장과 같은 전문가 집단'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조금도 균열되지 않은 채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독점하고서 온갖 특혜를 누리고 편법과 갑질을 행하고 있는데 현 정권과 여당도 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촛불에서 그토록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외쳤건만 현 정권이 이를 거의 수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적폐의 핵심인 재벌과 미국에 대해 과하게 종속적이다. 재벌들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 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사법부의 심판 중에 있는 이재용을 비롯하여 재벌의 총수를 만나고,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한일관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강국 등을 들먹이며 수십 조 원을 퍼주고 있다.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 남북관계를 다시 악화시켰고, 일본에 양보를 받은 것도 없이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였으며, 이라크파병보다 더 위험하고 정당성이 없음에도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였다. 검찰개혁과 선거법 개혁에서는 약간의 성과가 있기는 하였지만, 사법개혁과 정지개혁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미미하고, 경제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현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인사들도 '촛불배반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보하고 있었다. 자유한국당이란 파트너가 너무도 몰상식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정치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개혁에는 고려할 사항도 많고 시간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사태로 수개월 동안이나 쓸모없이 국력을 낭비하고서도 성찰은커녕 권력연장의 술책에만 골몰하더니, 이제 이로도 모자라 임미리 교수가 쓴 칼럼을 검찰에 고발하여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처사까지 행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인 벤저민 카도조의 말대로, "표현의 자유는 다른 모든 자유의 모체이자 절대 필요조건이다." 이를 억압하면 모든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란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부는 더 이상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에 걸쳐서 잘하는 것 거의 없이 자한당의 연이는 자살골로 30∼40%대의 지지율을 겨우 유지하며 '적대적 공존'을 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찌 이리 오만방자한 결정을 내렸는지 몹시 의아하다. 민주주의마저 저버린다면 이 정권과 여당에 정당성은 전혀 없다. 권력의 최종심급(final instance)은 총이 아니라 정당성이다. 정당성을 온통 상실한 정권은 붕괴하기 마련이다.
필자만의 망상인가. 이 정권에 대해 쓰는 글들이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 정권 때 비판했던 글들을 닮아간다. 톨게이트 노동자 농성과 문중원 기수의 죽음과 관련한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다가 "이게 나라냐?"라는 말조차 실로 오랜만에 튀어나왔다. 남북관계, 외교, 정치, 경제, 사회문화, 노동,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박근혜 정권과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비판이 점점 많이 들린다.
박근혜 정권의 권력이 정점에 있었던 때 필자는 "촛불집회의 진로"(<한겨레신문> 2013년 9월 11일), "조폭파시즘의 발흥과 최후"(<한겨레신문> 2013년 10월 16일자), "유신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한겨레신문> 2013년 12월 11일자)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촛불이) 10만, 100만이 될 때, 총칼이 없는 우리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며 대형참사와 박근혜 정권의 붕괴를 예견하였다. 필자가 무슨 예지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나 역사 또한 원리나 알고리즘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칼럼에서 쓴 대로 "군부와 검찰, 국정원, 언론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정당성의 위기에 놓인 현 정권은 식물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언론과 비판세력을 잠재울 때 '잠수함의 토끼' 또한 잠들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칼럼에서 "대통령은 집권에 집착할수록 유신의 수명이 단축되는 역설을 직시하시라"라고도 말하였는데, 이제 이 말에서 "유신"을 "민주당"으로만 교체하여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려주어도 크게 과하지는 않으리라. 여당의 대표가 "4.15 총선으로 촛불혁명을 완성하자"고 했는가.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민주당을 찍지 않는 것이야말로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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