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하사는 근무하던 부대의 승인 하에 여권을 발급받아 합법적인 여행으로 외국에서 수술하였고, 복무하던 부대의 대원들도 A하사의 계속 복무에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A하사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꿈이었다'면서 '성별정체성을 떠나 국가에 헌신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며 국군의 이 같은 강제전역 조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단체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남성의 신체만을 군에 복무할 수 있는 자격으로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들을 차별하는 시대착오적인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면서 강제전역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군이 이 같은 조치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A하사에게 심신장애가 있고 트렌스젠더 복무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복무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감당하려면, 군대 내의 성평등 수준이 상당한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60만 국군 중 1만 명의 여군이 군에서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면 얼마나 답답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여군이 창설(1950년 창설)된 지 70여 년인데, 여성에게 사관학교 입학이 허용된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또 2019년에서야 우리나라 육, 해, 공군 통틀어 최초로 투스타 장군이 탄생하는 등 국군의 성평등 수준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내가 A하사 사건을 지켜보면서 여군들을 먼저 떠올린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몇 년 전 내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의 동료 변호사들은 여성 군인이 항명죄로 기소된 사건의 변론을 지원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여성군악대장 스토킹 사건'으로, 여러 언론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졌다. 여성군악대장 A대위는 갑자기 헌병대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품위유지의무위반, 부하 성추행, 직권남용, 항명 등의 혐의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다. A대위의 부하 성추행 등 대부분의 혐의는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져 무혐의 처분되었고, 일부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A대위는 수사기록을 열람하며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자신을 스토킹해 오던 직속상관인 B소령이 A대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것이었고, A대위의 혐의 대부분도 B소령이 작성한 기록지에 바탕한 것이었다. B소령은 A대위에게 군악대 병사들이 제보한 것 같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B소령은 A대위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해 왔다. 사랑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기본이고, 휴가 중이던 A소위에게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전송시키게 하고, 남자친구와 자봤냐는 부적절한 성적 언동을 일삼았다. 또한 남자친구와 사귀지 말 것, 외출 시 목적지와 누구와 만나는지 보고할 것, 모든 지출내역을 보고할 것 등이 적힌 각서에 서명하게 하였다. 하루 평균 50여 통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어떤 달은 한 달 동안 문자메시지를 431회 보낸 적도 있었다. A대위는 B소령이 자신을 스토킹하다 마음대로 안 되자 음해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B소령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군은 B소령이 각서 등을 받은 것은 직속상관으로서 A대위의 바른생활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무혐의처리하고 스토킹에 대해서만 인정하여 경고했을 뿐이다. 성희롱과 지독한 스토킹을 가한 B소령은 단순히 경고를 받고, 스토킹 가해자 B소령의 제보로 시작된 수사 결과 A대위는 B소령에 대한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강제전역 위기에 놓인 것이다. A대위는 군사법원 재판 1심에서 기소된 혐의 중 B소령에 대한 항명 혐의만 인정되고 대부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항소심 재판에 뛰어들어 A대위를 변호했다. A대위가 유죄로 인정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증거는 B소령이 작성한 서류들과 B소령의 지휘를 받고 인사평정을 받는 직속 부하 2명의 진술뿐이었다. 그나마 B소령 직속부하들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어 결국 2심에서는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대법원에서 A대위의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성군인들이 군대 내에서 당하고 있는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여러 제보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여군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이 이 사건 하나뿐인가.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군부대 성폭력·성희롱 사건은 여전히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다. A소위가 당한 일이 별거 아닌 일로 여겨질 지경이다.
2013년 B대위는 직속상관인 소령의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그는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한 적이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겼다.
2017년에는 만 18세에 미성년 부사관으로 입대한 한 여군이 부대 내에서 수차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으나, 다행히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부서 내 유일한 여군이었던 이 부사관은 회식자리에서의 성추행, 일상적 성희롱, 단체 카톡방에서 음란물 공유 등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여성해군 대위가 직속 상관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했다.
또 성소수자였던 한 여성해군 중위는 상관인 남성 소령이 '남자 맛'을 알려준다며 강간, 임신 중절 수술까지 했다. 이후 중위의 고충을 상담해주던 다른 남성 중령 역시 그를 강간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해당 여성 중위가 이를 견디다 못해 근무이탈을 했다가 그 원인을 추궁 받으면서 밝혀졌다.
헬기 조종사였던 피우진은 2002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한쪽 가슴을 절제했고 임무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나머지 한쪽 유방마저 절제했다. 그런데 군인사법 시행규칙은 여군이 유방을 절제하면(신체훼손) 전역시키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고, 이에 따라 그는 강제전역을 당하였다. 그는 강제전역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다시 군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가 집필한 책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 펴냄)를 보면 여군들이 군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늦은 밤 남성 상급자들이 피우진의 부하 여군들을 자신들이 놀던 술집으로 호출했는데, 무슨 호출인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상급자들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피우진은 부하 여군들을 완전 군장 복장으로 내보내어 상황을 모면했다는 등의 여러 일화가 담겨 있다.
국회 국방부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대 내 여군과 여성공무원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건수는 최근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군대 내의 성범죄는 급증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따라 나온다. 재판에서 실형까지 선고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근에는 성범죄뿐 아니라, 여군에 대한 명예훼손, 항명행위까지 늘고 있다고 한다.
강선영 장군은 육군항공작전사령관으로 여군 최초의 투스타 장군이 되었다. 그는 1993년 육군 항공학교에 입학해 헬기 조종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 장군은 조종사 교육을 1등으로 수료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능력의 문제를 넘어 '여성'이라는 편견을 딛고 유리천장을 깨며 달려야 했던 30년 군 생활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가 못하면 '아, 여군은 그걸 못해'라며 그걸 아예 시키지 않는 거예요. 제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배들의 한계로 머물지 않도록…'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 못지않은 여성이어야 했고 남성 같은 여성이어야 했을 것이며, 또 여성다운(?) 여성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악전고투 속에서 그 오랜 세월을 버텨 마침내는 여성 최초의 투스타 장군에 이르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국민개병제에 기초한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로 남성은 일정 연령이 되면 군에 징병된다. 이러한 사실은 시시때때로 여성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남성이 군에 복무하는 기간 동안 여성들은 사회에서의 시간을 보장받는 기회를 누리고 편안하게 살았다며 '억울하면 군대 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군은 과연 여성을 징집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 수시로 발생하는 성폭력·성차별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아니, 감당하고 해결할 의사가 있는가.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징병은 참정권 등 시민적 권리를 확대하는 과정으로 도입된 제도인데, 이때의 시민은 여성이 아닌 남성만을 전제하고 있다. 국가와 시민(남성) 간의 계약으로 시작된 징병은 여성을 시민에서 배제하고 시민인 남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제도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남성시민들은 남성만이 시민인 국가를 지키기 위해 징집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으로서 징병이 이루어졌다기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가의 압도적 우위에서 시행되다 보니 시민적 권리의 확대 과정으로서의 국민개병제도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시민보다 국가가 우선인 국가주의 하에 인권침해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중요한 젊은 시기를 군에서 보내야 한다는 피해의식이 상당했다. 그렇다 해도 국민징병제도는 여성을 시민에서 배제하고, 남성시민의 권리를 확대시키기는 과정에서 오직 남성만이 징집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여성에게 차별적인 제도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본질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남성의 징병은 가장 중요한 성차별적 논거로 사용되어 왔다. 여성들이 군대 가겠다고 들고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이 철폐되고, 성평등한 사회가 된다면 여성이 군에 입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 대한민국이여, 여성을 징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대한민국은 우리 여성들의 조국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1938년 발표한 작품 <3기니>에서 이미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했다. <3기니>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편지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 울프는 '당신은 나의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 조국은 나를 노예처럼 다루었다, 조국은 내가 교육을 받거나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왔다. 사실 여성인 내게는 조국이란 없다. 여성으로서 나의 조국은 전 세계다'라고 서술했다. 오늘날 여성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들에게 '조국은 있는가'란 울프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한민국은 여성의 군 입대 자격을 따지기 전에, 군 복무 여부로 차별을 정당화하기에 앞서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