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두 인사를 모두 경험해 봤던 전직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이성윤(사법연수원 23기 동기)과 가까운 기수다.
"윤석열은 원래 오래된 '검찰주의자'였고 그의 스타일은 지금도 가감없이 보여진다. 이성윤은 원래 '검찰권 절제'를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사람이다. 이성윤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그의 오래된 소신이었다. 마치 이 지검장이 갑자기 검찰권 절제를 들고 나온 것처럼 오해하는데 난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양 쪽이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각자 할 일을 한다고 본다."
윤석열 총장이 '정의' 구현을 위해 칼을 휘두르고 있고, 이성윤 지검장이 그에 대해 '항명'을 하고 있다는 시각의 보도가 신문을 뒤덮고 있는 와중에, 여론조사 하나가 주목을 끌었다. 세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총장은 10.8%를 기록했다. 2위였다.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윤 총장이 "여론조사 후보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호사가들은 그의 이름을 계속 불러낼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겨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조국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들춰냈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를 포착했다. '윤석열 호'가 거침없이 달리면서,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윤석열 이후'는 어떻게 되는걸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끝나고 조국 전 민정수석과 청와대 '친문' 인사들이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은 후, 검찰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을까.
윤석열을 띄운 것은 누가 뭐래도 여권이다. 대통령의 탄핵과정을 밝혀냈던 특검이 끝난 후, 청와대는 욕심을 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다 좌천된 검사의 명성을. 특검이 끝난 후 윤석열을 스카웃했고 그것으로 청와대와 여권은 정치적 이익을 취했다. 나아가 그를 검찰 수장에 앉혔다.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다들 잘 안다. 윤석열 본인의 '스타일'대로 대통령의 측근들을 줄줄이 수사했다. 윤석열의 명성을 이용한 사람들은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급기야 윤석열은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검찰 정치'의 새로운 버전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은 2003년 대선 자금 수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을 구속했다.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기업의 팔을 비틀고, 차떼기로 선거 자금을 실어 나른 것도 밝혔다. 팬카페가 생겼다. 그러자 검찰 개혁 목소리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가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하자 송광수 총장은 "내 목을 치라"고 반발했다. 원형 경기장에 모인 대중은 엄지 손가락을 들고 검찰의 편이 되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 연구관으로 있었던 윤석열 총장은 이런 풍경을 생생하게 목격했을 것이다.
'스타'를 배출하자, 검찰 조직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독재 정권 검찰권 남용의 잔재를 치기 위해 '검찰 개혁' 칼이 겨눠질 때마다 몇몇 검사들이 옷을 벗으며 조직을 강화해 갔다. 그런 검찰이 2005년엔 또 '리버럴 정권'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강정구 교수 사건이다. 검찰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려 했다. 냉전의 유물을 꺼내든 검찰 앞에서 화들짝 놀란 노무현 정부는 천정배 법무부장관을 통해 '불구속 수사를 하라'며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졌다.
검찰의 '사상 투쟁'은 성공적이었다. 연승 행렬을 이어갔다. 강정구 교수는 이듬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10년에 형이 확정됐다.(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그때 강정구 교수 구속 의견을 냈다가 사표를 던진 황교안 검사는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장관으로 부활해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며 민주주의에 깊숙히 개입했다. 자유의 시계를 되돌리면서 '검찰 공화국'은 그렇게 발전해 왔다.
유독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선 '스타 검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보수 정권은 스타 검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항하면 자른다. 검찰을 길들이는 방법, 혹은 검찰과 함께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검찰은 PD수첩 사건, 정연주 사장 사건, 미네르바 사건,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정권 입맛에 맞게 수사해 민주주의를 뒤틀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통치 도구로 활약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 고향 후배들이 검찰을 줄줄이 장악했다. 그래도 보수 언론은 침묵했다. 일례로 동아일보에 나온 2011년 7월 법무부장관 취임 기사다.
"2005년 10월 대검 공안부장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의 구속 수사 필요성을 건의했다가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파동을 빚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대구 ‘고향 후배’로 어렸을 때부터 '누님', '동생' 하는 사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2002년 대선을 지나오며 우리 사회는 대중이 주체가 된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냈다. 독재 정권에 부역하던 검찰은 송광호를 내세워 이 새로운 민주 정부에 적응하는 방식을 완전히 터득했다. BBK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하던 2007년~2009년 검찰 공화국은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9년의 암흑기가 흘렀다. 노무현 정부의 정-검 갈등 데자뷰라는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지금, 2003년 기점으로 17년만에 다시 윤석열이라는 '스타 검사'가 출현했다. 검찰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는 배경도 비슷하다. 기시감, 그리고 불안감이 든다.
17년만에 나타난 '영웅서사'...거기서 '전라도'가 왜 나와?
살아 있는 권력을 잡는 게 지상 목표고, 그것이 검찰 개혁의 요체라면, 이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을 구속했을 때 세상은 더 좋아졌어야 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대법원을 거쳐 2012년 박수를 받으며 정치권에 진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더 나빠졌다. (안대희는 '전관예우' 의혹으로 정치 대뷔에 실패했다.) 윤석열 검사가 이명박 정권의 '쿨'한 승인을 얻어 이상득을 구속했을 때, 검찰 공화국은 종료됐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검찰이 칼을 휘둘러 박수를 받을 수록, 검찰 개혁은 요원해진다는 것을.
이미 '스타 검사'의 서사는 착착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이슈를 검찰이 집어삼킨다. 이 순간에도 국회의원들은 서로를 고소 고발하고,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가 새롭게 배당되고, 거리에서 확성기를 든 투사들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검찰청 문턱을 밟고 있다. 윤석열은 '대선 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정부의 검찰 개혁과 수사 개입이 뒤섞이며 여권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권력에 대항한 영웅 서사가 구체화될 수록 불편해진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의 구속을 '검찰이 훌륭해서', '검찰이 잘 해서' 이뤄진 일이라는 전제를 다는 순간, 우리는 검찰 공화국의 또 다른 포로가 된다. 검찰이 잘 해서 탄핵이 이뤄졌다는 말처럼 촛불 정신을 허무하게 만드는 건 없다.
검찰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제어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영웅시 될수록, 그것을 견제하는 사람들은 적대자가 된다. 윤석열 검찰 수사에 '주석'을 다는 수준에 머무는데도 (이성윤의 항명이든 주장이든 실제로 관철된 건 전혀 없다), 이성윤 지검장은 적대자를 처단하러 가는 영웅의 길에 놓인 '시련'이 된다.
최근 진보 언론을 자처하는 신문의 칼럼란에 '전라도 어디' 출신 이성윤이라는 문구가 나온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노무현 탄핵의 '원죄'를 씻어내고자 하는 추미애 장관이 '전라도 어디' 출신 이성윤을 발탁했다는 내용인데, 대통령과 동향이라는 지적도 아니고, 동문이라는 지적도 아니다. 글 전체 맥락을 해치는 건 물론이고 되레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윤석열의 수사에 '전라도 어디' 출신 지검장이 맞선다는 것인가. 한국 사회 맥락에선 고약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 특정 지역' 검사. 그 글을 읽는 '지역차별론자'들은,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환호할 것이다. 역시 전라도였어.
점점 불안하게 흐르는 이 영웅 서사의 끝은 어디일까.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처벌된 후에, 검찰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돌연 시민의 통제를 받겠다며 칼을 내려놓고 박수를 받으며 과업을 이룬 영화속 영웅처럼 세속을 떠나 석양이 빛나는 지평선 너머로 떠나게 될까? 이제 검찰은 새로운 윤석열을 발굴하면 되는 걸까? 영웅이 각광받는다는 건, 시스템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영웅 서사는 고대나 중세에 어울린다. 아니면 '마블'류의 판타지이거나.
윤석열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 만큼이나, 검찰 개혁은 중요하다. 향후 정권이 바뀐 후 문재인 정부에서 좌천된 검사들이 부활해 전 정권을 응징하는 모습을 보자는 게 검찰 수사의 본질도 아니고 검찰 개혁의 요체도 아니지 않은가. 특정 인물에 기대는 '영웅 서사'는 시스템을 망친다. 추미애 장관도, 청와대도, 이제 '수사 개입'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키우기'는 중단하고 본질적인 검찰 개혁에 매진할 새로운 묘수를 만들어 내야 한다. 17년 전의 잘못을 그대로 반복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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