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그렇게나 덥더니, 어제가 처서라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네요. 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 들어, 책장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예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죠? 이제 덥지도 춥지도 않아 책 읽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두고 미처 못 읽은 책이 수북하니,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부지런히 읽어둬야겠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이겁니다.
***“쌍둥이 중에서 샴쌍둥이 있잖아요. 이란성 쌍둥이가 정말 샴쌍둥이가 될 수 없나요? 나무 중에서 연리지(連理枝)가 있다던데, 비록 식물과 사람의 그것이 다르다곤 하나, 약간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 않나요? 발생 초에 착상된 위치가 가깝다든지 해서 발생하는 중간에 서로가 섞여 버린다든지 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면, 더해서 서로 밀쳐내지 않고.. 이리 저리 섞여 버린다면 그들은 최소한 모계 유전자 1/2은 같은, '타인'은 아니잖아요.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까 샴쌍둥이가 나올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능할까요?“**
귀여운 질문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나 뿌리가 얽혀서 한 나무처럼 자라난다는 연리지라는 희귀한 현상에다가 샴쌍둥이를 대비시킨 상상력이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란성 쌍둥이가 샴쌍둥이가 되어 태어날 확률은 우리 집 강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처럼 말을 하게 될 확률과 비슷할 겁니다. 이는 샴쌍둥이 발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샴쌍둥이는 서로 다르게 발달하던 두 개체가 달라붙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였던 수정란이 둘로 나뉘는 과정’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일란성인 경우에만 샴쌍둥이가 생성될 뿐, 서로 다른 쌍둥이가 붙어서 생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태아의 발생과정을 보면 초기에 수정란이 난할을 일으키며 운명이 정해지지 않은 세포(이것이 바로 배아줄기세포이지요)들을 잔뜩 만든 후에, 이 세포들이 자리잡은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신호를 받아 세포 중 일부는 태아가 되고, 그 중 일부는 아기를 보호하고 아기와 모체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태반이 됩니다. 태반은 엄마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기 스스로의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란성 쌍둥이는 발생 초기에 각각 다른 태반을 만들어 성장하게 됩니다. 이 정도로 구분이 확실한데 태아가 다른 형제자매의 세포와 섞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참고로, 태반이 이렇게 아기의 세포에서 유래되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제대혈 보관 시스템이 가능한 것입니다. 제대혈이란 아기가 태어난 뒤 조금 뒤에 나오는 태반(이것을 후산(後産)이라고 합니다)에서 뽑아낸 혈액으로 피를 만들 수 있는 조혈모세포를 얻을 수 있어서, 악성 혈액질환(백혈병 등)이나 몇 가지 암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제대혈을 채취해 극저온상태로 얼려두었다가 혹시나 아기가 자라면서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이 제대혈을 녹여 조혈모세포를 분화시켜 치료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태반이 근본적으로 아기 자체에게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 몸의 일부이므로 면역 거부반응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현재 국내에서도 10여개의 회사가 제대혈 보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보장해주는 태아 보험 역시 많은 보험사들이 상품을 개발해 내놓고 있답니다.
어쨌든 샴 쌍둥이는 하나의 수정란이 일란성 쌍생아가 되려고 분리되다가 중간에 분리가 멈춰지면서 신체 일부가 결합된 상태로 태어나는 쌍둥이(의학적으로는 융합쌍생아(Conjoined twin)이라고 합니다)입니다.이때 결합 지접은 머리, 가슴과 배, 등, 엉덩이 등에 주로 나타납니다. 정상적 출산 10만회 중에서 1번의 비율로 발생하는데, 실제로 75~95%의 샴쌍둥이가 사산되거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하기 때문에 실제로 자라나는 비율은 극도로 적습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기록상 유명한 샴쌍둥이는 샴(지금의 태국)에서 1811년 태어난 쳉(Cheng)과 잉(Eng) 형제입니다. 이들은 가슴과 배 부분이 결합조직에 의해 붙어 있었는데 그들이 자라면서 이 부위가 점차 늘어나 둘이서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샴쌍둥이로써는 드물게 결혼을 하여 아이도 낳고 60살이 넘도록 산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쨌든 샴쌍둥이는 신체의 일부가 붙어 있다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아주 드물게는 초기에 나뉘어진 태아 중 한쪽은 정상적으로 발생하지만, 다른 한쪽은 신체 일부만이 발생되어 다른 형제의 몸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발생학 교과서에서 갓 태어난 남자아기의 배에 다른 형제(가 될 뻔했던)의 엉덩이와 다리 부분만이 붙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이럴 경우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더부살이하고 있는 조직을 떼어내면 되지만, 독립된 두 명의 아기가 붙은 채 태어나는 경우에는 종종 분리 수술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리와 유정이, 사랑이와 지혜 등 몇 명의 샴쌍둥이가 태어나 분리 수술을 받은 사례가 있고, 지난 2000년에 영국에서 태어난 조디와 메리의 딜레마와, 2003년 분리 수술을 받다 사망한 이란의 비자니 자매의 이야기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샴쌍둥이 문제는 여러 가지 의학적, 윤리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유리와 유정이는 1994년 가슴과 배가 맞붙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가슴뼈 뿐 아니라 심장벽 일부까지 붙어 있어서 분리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두 자매는 각자 독립적인 삶을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리는 200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유정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엉덩이가 붙은-비교적 생명에 지장이 없는- 채 태어난 사랑이와 지혜 자매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구요.
이들은 애초에 분리를 하는 것이 두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는데 이의가 없었고, 아이들도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견뎌 주어 별다른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만, 메리와 조디, 비자니 자매의 경우에는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냈었지요.
2000년 태어난 메리와 조디는 각각의 심장과 폐를 가진 채 태어났지만, 메리는 심장이 이미 멈춘 상태로 조디의 심폐기능에 의지해 살아 있는 상태였던 것이죠. (만약 두 아이가 따로따로 태어났더라면 메리는 사산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조디의 심폐기능은 정상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두 사람 몫의 기능을 할 수 없기에 의사들은 이들을 이대로 두면 몇 달 못 가 둘 다 사망할 것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분리수술을 해서 건강한 한 아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자인 쌍둥이의 부모는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둘 다 죽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자라게 해야 한다”고 고집해 법정 문제로까지 비화되었고, 전국민이 양편으로 나뉘어 분리수술에 대해 찬반 논쟁을 벌였죠. 격렬한 공방전 끝에 결국 영국 법원은 이 샴쌍둥이를 분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항소를 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서던 부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의 제소를 포기한 채, 이들은 결국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이 수술로 인해 메리는 완전히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는 한 아이를 희생시켜서 다른 아이를 살리는 것이 과연 옳은지, 현대 의학의 관점과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정상적인 삶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논쟁점이 하나로 집결된 문제여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여론을 이끌어냈지요. 뒤이어 2003년 일어난 비자니 자매의 수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머리가 붙은 채 태어난 라단과 랄레 비자니는 29년을 같이 살다가, 하루라도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고자 목숨을 건 위험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었지요. 그러나 그들은 안타깝게도 수술 도중 사망했고, 하루라도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그들의 소원은 결국 독립적인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막이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을, 아무리 환자가 원한다고 해도 무리하게 진행시켰다는 이유로 이들을 수술한 싱가포르 래컬스 병원 수술팀이 고발되기도 했었지요. 이에 법원은 분리수술을 요구했던 이들이 완전한 성인이었고, 본인들의 간곡한 의사가 있었으며, 이들이 수술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수술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어 의사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의 딜레마는 아마도 ‘하나의 독립된 생명’에 대해서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이기에 앞으로도 한동안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을 보며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머리 하나, 팔 둘, 다리 둘, 눈, 코, 입.. 모든 것이 정확한 개수로 정확한 자리에 있어야만 과연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고, 거기에 조금 부족하거나 더해진다면 그것은 ‘모자란’ 생명으로 보는 우리의 시각 말입니다. 세상의 ‘정상’들과 다른 것들에 대한 ‘관용성’, 그것이 이 문제를 좀더 올바르게 결론내릴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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