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국제영화제 위기냐 기회냐
-지자체 영화제 점검 나설 때**
올해로 네번재를 맞는 광주국제영화제가 개막 한달도 채 안남은 시점에서야 가까스로 집행위원장을 새로 선임하고 체제 정비에 나섰다. 다음달 2일부터 11일까지 광주지역 일원의 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광주국제영화제의 새 기수는 대종상 사무총장이자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의 김갑의 교수. 김 교수가 선임되기까지 집행위원장 자리는 무려 넉달간 공석이었다. 김위원장은 올해 행사를 위해 긴급으로 투입된 일종의 ‘구원 투수’역을 맡은 셈이다.
광주국제영화제에 관한 한 그동안 기대나 지원보다는 우려와 질책의 목소리가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 해의 3회 행사는 관객동원에 철저하게 실패, 영화제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사무국 집계에 따르면 3회 영화제의 총 유료 관객수는 4만5천여명 수준. 그러나 일각에서는 관객수가 그보다 훨씬 밑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광주영화제 무용론’은 영화제 첫회때부터 국내 영화인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문제다. 부산과 부천, 전주영화제 등과 비교할 때 이렇다할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어렵고 무엇보다 광주영화제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무용론이 갖고있는 핵심이다. 거기다 서울 중심의 영화활동을 행사 기간동안이나마 광주로 집중시킬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은 부산영화제를 제외하고 부천과 전주 대전 등지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행사가 치러진 약 열흘간 고작 4만6천명 정도의 관객만을 동원하는데 그쳐 국제행사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전주영화제 사무국의 정규 요원들은 올해 행사가 끝난 후 핵심 인력 등이 대부분 이탈한 상태로 추후 지속적인 영화제 개최가 가능할지 회의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일부터, 열렸는지 안열렸는지,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있는 대전영화제의 경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상태다. 개막작으로 기획시대(대표 유인택) 작품 <돈 텔 파파>를 선정한 대전영화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전시행정이 가져오는 병폐를 그대로 안고 있는 행사로 국내 영화인들의 비아냥을 사고 있을 정도다.
그나마 성공한 영화제로 평가받고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부천영화제는 그간 경기도권 베드 타운으로서 관객들의 유동성이 지나치게 심해 관객들의 집중도를 끌어 올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지난 2001년부터 김홍준 집행위원장 체제가 본격 들어서면서부터 영화제의 관객 규모를 부천과 경기권, 서울 일부로 축소시킴으로써 오히려 영화제 ‘열성당원’을 키워내는 데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부천영화제는 바야흐로 인지도 면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에는 성공한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10여억원에 이르는 영화제 예산을 지자체나 일반기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을지 주목거리다.
***지자체와 프로그래머 사이에 벌어지는 동상이몽 한판?**
부산을 제외한 다른 지자체 영화제의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것이 많은 영화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자체는 국제영화제를 지역문화의 확장과 자치단체의 수익구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퍼블리시티’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고 프로그래머와 핵심 영화제 인력들은 이를 좀더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행사로 키움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내 영화문화 전체의 수준을 끌어 올리려는 야심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작가의 면면을 살펴 보면 국제영화제가 가져가야 할 고색창연한 예술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또 한마리의 토끼는 놓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알랭 레네, 유세프 샤힌, 에롤 모리스, 와타나베 켄사쿠, 크리스토프 오노레,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 등 이들 작가의 목록은 광주영화제의 취향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영화대중의 창출을 꾀한다는 점에서는 극히 회의적인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親유럽적 혹은 프랑스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실험대안영화의 장이랄 수 있는 시네마테크 상영의 확장판에 불과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무리한 과시욕으로 인해 국제영화제라는 외피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단순하게 말해서 누가 이 영화제를 친화력을 가지고 쉽게 찾아오겠는가라는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지적인 영화들을 집중 상영해 영화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라든가 ‘높은 미학적, 영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내 영화시장의 한계로 실체를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영화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영화제’라는 긍정적 평가(문화일보 8월17일자 보도)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이에 대해 또 한편에서는 지식인들의 ‘먹물 근성이 가장 노골화된 영화제’라는 평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광주국제영화제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아니면 우리 실정에 비해 ‘많이 앞서 있는’ 영화제인 셈이다.
광주든 전주든 혹은 대전이든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국제영화제는 바야흐로 사고의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때를 맞고 있다. 시선을 좀더 안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전국 관객 혹은 해외영화계 및 시장을 겨냥하는 과도한 욕망을 담아내기 보다는 지역의 특색을 살려서 해당 지역의 문화행사만으로 폭을 좁힐 필요가 있다. 이들 영화제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철저하게 실리추구형 행사로 자리를 바꿀 때에 가능한 일이며 그럴 때에만이 적극적인 ‘시민참여형’ 행사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에 대한 일대 수술, 곧 실험대안 영화제로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대중영화들이 선보여지는 페스티벌로 거듭나야 한다.
광주국제영화제에 관한 한 김갑의 현 집행위원장 등 작금의 문제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영화제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청신호라면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는 배창호 감독의 저예산 비상업영화 <길>이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배창호 감독 등과 함께 중견 영화인들이 이 영화제의 앞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영화제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앞서 누가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행사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국제영화제에는 조금씩이나마 희망과 낙관의 시선이 주어지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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