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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 엄마가 RH+ 아이를 임신하면..."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22> 적아세포증

날이 갈수록 더워집니다.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제 카페에는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궁금했던 것들인데,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간 것들이 많아서 이 기회에 저도 다시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실제로 교과서에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이 실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실립니다. 자, 제가 카페에서 찾아낸 오늘의 질문은 바로 이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혈액형에 대해서 배웠는데, RH+/- 혈액형에 대해 배우면서 '적아세포증'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적아세포증이 왜 생기는 건지 정확히 좀 알고 싶어요. 대충 엄마한테 항체가 생겨서 그렇다는 건 아는데 어떻게 돼서 항체가 생기는지. 또 왜 ABO식 혈액형에서는 적아세포증이 나타나지 않는지도 궁금합니다.**

지난번 혈액형 이야기에 더해서 혈액형 시리즈 시작합니다.

적아세포증이란 RH-인 여성이 RH+인 아기를 임신하는 경우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모체의 RH 항체에 의해 태아의 적혈구가 파괴되고 이로 인해 태아에게서 핵이 존재하는 미성숙한 적혈구(이게 바로 적아(赤芽))가 많이 증가되며 결국 유산 혹은 사산에 이르게 되는 증상을 말합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세포에는 핵이 존재한다고 했지요? 그러나 완전히 성숙한 인간의 적혈구는 핵이 없어지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모양을 띕니다. 물론 적혈구도 처음 골수에서 만들어질 때는 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성숙되는 과정 중에 핵이 퇴화되게 되는데,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적혈구는 다른 세포와는 달리 분열하지 않고, 생성 이후 산소 운반 작용만 하기 때문에 핵이 굳이 필요 없다는 의견과, 핵이 떨어짐으로 인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되어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더 잘 결합할 수 있는 구조적인 이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닭이나 비둘기 같은 조류의 적혈구에는 핵이 존재하니 반드시 핵이 없어져야 될 당위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화 중에 인간은 조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되었을 뿐이겠죠.)

어쨌든 적혈구는 골수에서 만들어져 약 120일 간 쉼 없이 혈관을 타고 몸 속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직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적혈구에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 타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요?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ABO식과 RH식 혈액형입니다.

이 두 혈액형 타입은 둘 다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가 각각 1901년과 1940년에 발견한 혈액형 타입입니다. 이중에서 RH은 붉은털 원숭이의 혈구에 대한 항체와 인간의 혈액 사이에 일어나는 응집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섞었을 때 응집이 일어나면 RH+, 응집이 일어나지 않으면 RH-가 되는 것이죠.

RH-형은 백인들에게서는 비교적 흔한(약16% 정도) 혈액형이지만, 한국인에게서는 0.1~0.3% 정도로 극히 드물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RH-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RH- 여성이 임신에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Rh-의 남성과 결혼할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고, 혹 남편이 Rh+이더라도 보인자여서, 아기가 RH-이면 상관없지요. 문제는 아기와 엄마의 혈액형이 다를 때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Rh-타입이 극히 적기 때문에, RH- 여성이 Rh+ 남성과 결혼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이 경우, Rh+가 우성이기 때문에 아기는 RH+ 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엄마는 아기를 열 달 동안 체내에 품고 있기 때문에 혈액형이 다른 것은 자칫 면역 거부반응을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첫 아이를 낳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첫 아기를 낳을 때 아기의 Rh+ 적혈구가 태반이 떨어져서 상처 난 자궁벽을 통해서 어머니의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 면역 반응이 일어나 Rh 항체를 만들게 되므로 문제가 됩니다.

이 후의 임신에서는 자궁내의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넘어오는 Rh 항체의 작용을 받아 심한 빈혈이 생겨 유산이나 사산이 생기고, 살아서 태어나더라도 태어난 후에 심한 빈혈과 황달로 교환 수혈(몸 전체의 피를 모두 빼고 수혈을 받는 것, 즉 온몸의 피를 완전히 교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필요로 합니다. 또 교환수혈이 필요한 상태에서 교환수혈을 못하면 살아서 성장하더라도 뇌신경의 손상으로 장애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BO식 혈액형을 인식하는 항체는 태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와 아기의 혈액형이 달라도 상관없지만(간혹 이런 경우에도 태아의 적혈구 용혈 현상이 일어난다고는 하는데, 신생아에게 가벼운 빈혈이나 황달이 올 뿐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Rh 타입을 인식하는 항체는 태반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엄마 몸속에서 아기의 핏속의 Rh+인자를 외부 물질로 규정지어 항체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면역계가 아기를 외부의 해로운 물질로 인식하여 항체를 만들어 공격하기 때문에, 아기의 적혈구가 용혈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몸속에 Rh 항체가 생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즉, 아기의 몸에서 들어온 Rh인자를 엄마의 면역계가 인식하여 항체를 생성하기 전에 외부에서 이에 대한 항체를 넣어 주어서, 이 인자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주사하는 것이 RH 면역글로블린(상품명으로는 '파토블린'입니다)인데, 임신 30주 경부터 출산 직후(72시간 내) 사이에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면역 예방법을 임신할 때마다 제대로 실시한다면 아기를 몇 명이고 무사히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단, 출산 뿐 아니라 유산이나 조산, 사산 등에서도 항체가 생성되기 때문에 다음 임신을 위해서라면 정상적인 분만이 아닌 경우에도 반드시 주사를 맞아주어야 합니다. 임신 초기에 일어나는 조기 유산의 경우가 간과되기 쉬운데, 이런 경우에도 유산 즉시 주사를 맞아주어야 다음에 아기가 생기지 않는 불행한 결과를 예방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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