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교민 350여명이 31일 오전 8시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각각 이동, 오후 1시쯤 아산경찰인재개발원에 도착했다.
교민 수용 시설 선정과 관련, 정부가 혼선을 빚으면서 선정지역으로 거론 된 지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검토됐던 지역과 확정 지역간 갈등도 벌어졌다. 수용시설을 반대하는 지역민들에게는 '님비주의' '이기주의' 라는 사회적 비난까지 쏟아졌다.
오해와 억측, 성급한 보도가 지역 갈등 키워
정부는 교민들을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분리 수용한다고 29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날인 28일 천안우정공무교육원 등 2곳에 수용한다고 보도했다. 천안 지역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천안에 오는 것을 막아달라' 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천안시도 '우리에게 전달 된 사안이 없고 들은 바가 없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지역민들은 "시민도 지자체도 알지 못한 채 결정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오해와 억측, 성급한 보도가 지역간의 갈등을 초래했다.
29일 정부의 공식 발표 후 분노는 아산·진천으로 옮겨갔다. 천안주민 반발에 밀려 아산으로 결정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가 지역간 갈등에 불을 지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당초 천안으로 선정했다가 반발하니 아산에 수용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양승조 충남지사의 고향이 천안이기 때문에 천안에서 아산으로 바꿨다는 억측까지 들렸다. 언론보도로 시작된 지역간 갈등은 오해와 억측으로 지역민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아산주민들은 교민수용을 반대하며 트랙터 등 농기계를 몰고 아산경찰인재개발원 입구를 봉쇄했다. 주민들은 '우한폐렴 아산수용 결사반대'를 비롯해 '아산을 무시하느냐', '아산은 정부가 버린 도시, 천안은 안되고 아산은 되느냐' 등 날선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밤샘농성을 이어갔다.
아산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29일 오후 행정안전부 이승우 사회재난대응정책관과 김계조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잇따라 아산경찰인재개발원 앞 농성장을 찾았다. 주민들에게 정부 결정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 전달을 하기 위해서다.
행안부 관계자들은 이날 "정부가 우한 교민을 상대로 처음 귀국 수요 조사 했을 당시에는 150여 명이었고, 두번째 500여 명, 현재 700여 명으로 점점 늘었다. 수용 할 수 있는 곳은 가급적 한 두 곳으로 최소화 하되 분산 수용해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 1실로 접촉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가능한 규모로 논의가 된 것"이라며 "애초에 천안을 선정한 적 없다. 천안은 검토 대상이었을 뿐 선정 과정에서 아산경찰인재개발원이 시설면에서 우위했기 때문에 결정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천안우정공무교육원의 경우 총 768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2인 기준으로 384실을 보유하고 있고, 천안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도 1072명을 수용할 수 있어도 주로 4인실, 8인실로 289실이 전부다.
반면 아산경찰인재개발원은 2인실 638실에 1276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210실 519명 수용이 가능해 1인1실을 기준으로 두 곳을 합치면 848실로, 귀국을 희망한 우한 교민 750여명의 수용이 충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부개방을 하지않는 아산경찰인재개발원과는 달리 천안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은 외부인에게 개방이 허용 돼 있어 격리숙소로 적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승조 충남지사 "안전 걱정말라,수용시설 인근 집무실 설치"
30일에는 진영 행정안전부장관과 양승조 충남지사가 이 곳을 찾아 주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분노한 주민들은 진 장관과 양 지사를 향해 계란과 과자 등을 던지며 강하게 반발했다.
진영 장관은 "아산 주민들의 걱정끼쳐드려 죄송하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걱정 안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점검을 철저히 하고 주민들 피해 없도록 대책 세웠다.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걱정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양승조 지사는 "저는 천안의 지사도 아니고, 아산의 지사도 아니다. 충남도민 모두의 안전이 중요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부의 임시생활시설 결정은 천안지역 주민의 반발에 의한 것이 아닌, 관계부처 비상회의를 통해 8곳의 후보지를 놓고 6개 항목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서 아산경찰인재개발원이 1위로 통과했다"며 "이를 선정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지만, 결코 정치적 사안을 고려해 번복된 결정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기 오는 교민들은 무증상자로 37.5도 넘는 사람 절대 안 온다. 만약 위험이 있다면 제가 이 근처에서 집무실을 차리고 이 곳에서 업무를 보겠다. 안전은 문제없으니 걱정마시라"고 주민들은 안심시켰다.
양 지사는 약속대로 31일 아산경찰인재개발원 인근 초사2통 마을회관에 현장집무실과 숙소를 마련하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주민들과 함께 생활키로 했다. 이곳에서 도정 업무 처리와 접견 등을 갖고 필요한 경우 현장 방문도 진행한다. 매주 월요일 개최하는 실국원장회의와 도정 주요 회의 등은 숙소 옆에 회의실을 별도로 마련 할 계획이다.
또 집무실 옆 숙소에서는 양 지사 부부가 생활하며, 식사는 인근 식당을 이용키로 했다. 비서실 직원들은 각자의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4.15 총선 앞두고 정치적 이슈 된 '우한 교민 수용'
우한 교민 수용은 4.15 총선을 앞두고 천안아산지역 정치판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지역 중대 사안에 정치인들의 의견 피력은 표심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지역사회를 술렁이게 한 이번 우한 교민 수용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한국당 박상돈 천안시장 예비후보는 28일 성명서를 통해 '천안 수용은 절대 안된다'고 비판하면서 "청주공항과 가까운 청주로 가라"고 발언해 청주지역 주민들에게 비난을 샀다. 또 아산과 진천으로 결정되자 '격리시설 지정 취소 시민 여러분의 강력한 성원 덕분' 이라며 시민들에게 보낸 선거홍보문자로 눈살 찌푸리게 했다.
천안시민 최모씨(49)는 "우리 지역이 수용장소가 되는 것을 찬성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알고보니 지정이 됐다가 취소 된 것도 아니고, 천안 바로 옆 도시로 확정돼 마음이 썩 편치 않은 와중에 '시민들의 강력한 성원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 재난이라고 하는데 우리시만 중요하다, 우리시민만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비춰진다"고 지적했다.
또 천안지역 자유한국당 신범철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29일 우정공무교육원에서 '정부 무능'을 주장하며 무기한 피켓농성을 예고했지만 장소가 아산으로 확정되면서 이를 철회했다. 박찬주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천안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서도 "안전에 대해서는 전 정부와 비교했을 때 나아진 것이 없다"고 단언했다.
또 자유한국당 천안시의회의원들도 같은날 기자회견을 통해 "우한교민들이 천안지역으로 와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산경찰인재연수원을 지역구로 둔 지유한국당 아산갑 이명수 의원은 우한교민 수용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면서 피켓에 청와대와 민주당을 거론하는 문구를 삽입해 선관위로부터 지적을 받고 삭제, 제대로 된 시위도 못하고 철수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천안지역은 모두 민주당 현역의원들이지만 정부의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대처 방안 등 불안하고 답답했을 시민들과 그 어떤 소통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야말로 '무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역주민 김모씨(40)는 "분노하는 주민들과 함께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전대책을 설명하면서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고, 국회가서 일하라고 뽑아줬더니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는 코빼기도 안 비친다"며 허탈해했다.
서로를 위로하며 다독인 것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
교민 송환이 시작된 31일 오전 우한교민들이 2주간 머물게 될 아산경찰인재개발원 도로 옆 가로수에는 '힘내라, 편히 지내다 건강하게 귀가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시민단체들이 내건 이 현수막은 반발하는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지만 전날 분위기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또 아산지역 온라인 카페와 SNS를 중심으로 우한 교민을 위로하고 아산시민을 다독이는 게시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한 교민들이 이곳에 온 이상 계속적인 반대는 모두를 힘들게 한다며 자정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
지역 온라인맘까페 한 회원은 "지역민으로 불안한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사실 극심하게 반대도 했었다. 어쩔수 없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사히 이 시간을 지나길 바랄 뿐"이라며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하고 교민들이 떠날 때까지 주민들 역시 건강하시길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회원은 "우한에서도 고국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불안해 한다고 들었다"며 "그 분들도 우리 국민이고 내 가족이다. 나와 내 가족이 우한 교민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별 탈 없이 무사히 건강히 묵었다 가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아산에 거주한다는 한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여기서 2주동안 잘 들 쉬었다가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가시라"며 "이 시국이 지나거든 가족 손 꼭 붙잡고 현충사 한번 들려주고, 외암리민속마을 한 번 들려주고, 온양온천 한 번 들려주면 (우리는) 그걸로 됐다"며 잔잔하게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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