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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 설에도 못 쉬어"

[인터뷰] 명절에 일하는 노동자들

"나 이번 설에도 일해야 해."


마트 입장에서 명절은 대목이다. 장을 보러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마트 노동자는 명절이면 더 바빠진다. 이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곽성희 씨도 마찬가지다. 대형 마트는 명절 2주 정도 전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물품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은 그야말로 정신 없이 일한다. 계산대 앞에는 장을 보고 계산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평소보다 길게 늘어선다. 명절 시즌에 외려 연장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곽 씨가 일하는 마트의 캐셔들은 명절 당일, 명 절 전 날, 명절 다음 날 쉴 사람을 두고 제비뽑기를 한다. 40여 명의 캐셔 중 하루 당 5명이 쉰다. 곽 씨는 마트에서 일한지 7년 만에 명절 당일 쉴 사람이 됐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하루 쉰다고 고향에 갈 수는 없다.

곽 씨는 "명절이 되면 씁쓸하다"며 "남편이랑 저 둘 다 고향이 지방인데 애들하고 애들 아빠는 고향에 가고 저만 혼자 서울에 덩그러니 남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마트 업체로 구성된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인 의무휴업일을 명절 당일인 토요일(25일)로 바꾸려고 했으나 무산된 일이 있었다. 소상공인들은 의무휴업일 변경이 중소상인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했다. 그런데 곽 씨를 비롯한 마트 노동자들도 반대했다.

곽 씨는 "명절 다음 날과 전 날도 쉬게 해주면 모를까 하루 쉬는 걸로는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설령 고향이 가깝다고 해도 여성들은 쉬는 날이 하루면 음식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며 "대형마트가 명절 하루 쉬어주는 걸로 노동자의 쉴 권리를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화도 났다"고 전했다.


▲ 마트에서 물품을 정리하는 노동자. ⓒ연합뉴스

명절 앞두고도 체불임금 못 받고 일하는 병원 청소 노동자

병원 노동자는 명절에 쉴 수 없다. 사람의 병은 명절이라고 멈추지 않는다. 조종수 씨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청소 노동자다. 조 씨는 병원 쓰레기를 카트에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 150kg 정도 무게의 쓰레기를 하루에 15번, 많으면 20번씩 옮긴다. 힘든 업무라 보통 1, 2년이면 자리를 바꿔주는 이 일을 회사 지시로 3년째 하고 있다.


조 씨가 일하는 병원의 청소 노동자들은 두 개로 조를 나눠 설 연휴 중 절반을 일한다. 연휴 첫날 1조가 일하면 다음날은 2조가 나와서 일하는 식이다.


조 씨는 설이 되면 여러 모로 일하기 더 힘들다고 말했다. 조 씨는 "명절에는 가족들하고 지내야 하는데 일하는 게 서글프고, 가족들이랑 정담도 나누고 해야 하는데 못 그러니 가족들이 많이 아쉬워한다"며 "일하는 사람도 절반으로 줄기 때문에 일 양도 많아지고 한 명도 빠지기 힘든 상황이 된다"고 전했다.

조 씨는 체불임금 진정도 진행 중이다. 4개월 전 추석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서부지방고용노동청에 최저임금 미지급, 연차수당, 휴일수당 체불 등으로 발생한 체불임금을 신고했다. 다음 명절인 설이 돌아오기까지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조 씨의 체불임금 추정액은 400여 만 원. 조 씨 이외에도 세브란스병원 청소 노동자의 체불임금은 총 8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조 씨는 노동청에서 명절을 앞두고 체불임금 문제 해결을 서두르겠다는 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말은 없었다"고 답했다.

▲ 병원은 명절에도 쉴 수 없다. ⓒ연합뉴스

2년째 명절 때 친지들과 만나지 못한 지하철 역무 노동자

정봉환 씨는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서 일하는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소속 역무원이다. 고객 민원에 대응하고, 역사 시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지하철역에는 휴무가 없기 때문에 역무원의 3조 2교대 근무체계는 명절 같은 휴일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돌아간다. 대중교통은 1년 내내 쉬지 않고 운행되어야 한다.

정 씨가 일하는 구일역은 고척스카이돔 근방에 있다. 야구 시즌이나 지난 18일, 19일 퀸 콘서트와 같은 일정이 잡히면 역무원도 바빠진다. 다행히 이번 설에는 고척돔에 행사가 잡히지는 않았다.

정 씨는 그래도 명절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김제가 고향이라는 정 씨는 "제가 큰 아들인데도 명절 근무가 잡혀 2년째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며 "부모님은 설 몇 주 전에 보고 온다고 해도 친지들과 다 같이 만날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정 씨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부모님과 11살 아이다. 정 씨는 "부모님이야 자식이 일한다니까 오라고는 못하시는데 주변에서 '큰 애가 왜 안 내려오냐'고 물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다"며 "아이들도 친지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고 전했다.

정 씨는 "역무원뿐 아니라 경비나 기관사 등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명절에 내려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제 나이대의 그런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많은 사람이 서울을 떠나는 설, 지하철 노동자들은 서울에 남아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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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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