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의 '부실 혈액 관리'에 대한 정부 대책이 그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는 적십자사의 혈액 사업 조직을 혁신하고 국가의 관리ㆍ감독 강화를 통해 채혈부터 검사ㆍ공급ㆍ수혈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에 대해 일부 시민ㆍ사회단체에서는 "적십자사에게 계속 혈액 사업을 맡길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적십자사 혈액 사업 독립성 강화, 전문성 확보"**
지난 3월 감사원의 적십자사 '부실 혈액 관리 실태' 감사 발표를 계기로 설치된 국무총리실 산하 '혈액안전관리개선기획단'에서 마련한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이 6일 발표됐다. 이번 정부 대책에는 적십자사의 혈액 사업 조직을 혁신하고 국가의 관리ㆍ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어 적십자사 조직에 대한 일대 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책안을 살펴보면, 혈액사업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혈액 사업 조직의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므로 외부의 유능한 전문가를 혈액 사업 조직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해당 책임자에게 혈액 사업 조직의 인사와 예산에 관한 권한을 주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혈액원장을 최대한 의사로 충원하고, 적십자사의 사회봉사, 남북교류 등 적십자사의 일반 사업 조직으로부터 혈액 사업 조직으로의 순환 인사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적십자사에 대한 국가의 관리ㆍ감독도 대폭 강화된다. 적십자사 외부에서 안전한 혈액이 공급되고 있는지 상시 감시ㆍ평가할 수 있는 질병관리본부 내 전문부서 신설을 추진하고, 해당 부서에서 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에 감시 결과를 주기적으로 보고하기로 했다.
현재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는 각 지방 혈액원의 제정을 통합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이밖에 혈액 안전과 관련한 인프라 구축비용을 국고로 운영하고, 운영비용은 혈액 수가로 충당하는 등 국고 지원과 혈액 수가와의 분담 원칙을 확립하기로 했다. 향후 5년간 국고 지원금 1천4백70억원을 포함해 총 3천2백7억원을 투자할 계획도 밝혔다.
***"환자가 헌혈자 구하러 뛰어다니는 일, 없어야"**
정부는 헌혈자와 수혈자에 대한 대책도 내놓았다.
정부는 헌혈자로 등록한 뒤 지정된 날짜에 헌혈을 하면 반나절 유급 휴가를 받고 공공ㆍ문화 시설 이용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등 헌혈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통해 '등록 헌혈자'를 늘리는 대책도 내놓았다.
정부는 이밖에 '헌혈의 집'을 60여곳 신설하고,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채혈 시간 변경 등의 대책을 추진해 헌혈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체 헌혈자의 35%인 개인 헌혈자 비중을 2010년 70%까지 늘려 군인ㆍ학생 등 단체 위주로 이루어지는 헌혈 구조를 탈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성분 채혈 혈소판의 공급 부족으로 헌혈자를 환자 자신이 확보해야 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당장 올해부터 성분채혈 혈소판은 적십자사가 모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응급 상황에서도 공급이 가능하도록 '24시간 공급체계'도 구축된다.
***이중ㆍ삼중 확인, '수혈 가이드라인 제정'**
한편 정부는 혈액의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이중ㆍ삼중의 확인 절차를 거치고, 의료기관 수혈 사고 예방과 혈액 적정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국가적인 수혈 가이드라인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혈 부작용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직접 조사한 후 보상기준을 설정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이를 위해 모든 혈액 검체를 10년간 보관하고, 관련 검사 장부의 보존 기간도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적십자사 틀에서 해결될지 의문..."**
한편 이런 내용이 6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발표되자, 시민ㆍ사회단체들과 환자 단체들은 "늦게라도 혈액 관리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고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이런 대책이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틀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가"라며 "혈액 사업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적십자사를 대체할 다른 기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지적했다.
강주성 대표는 또 "이번 대책에서는 혈액을 제공하는 헌혈자의 안전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며 "적십자사나 국가가 여전히 헌혈자를 단순한 '혈액 제공자'로 취급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권성기 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은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지만 일반 시민이나 환자들이 대책을 마련하는데 참여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최종 결론을 내는데 시민이나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민과 환자 입장의 실질적인 대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에 대해서 적십자사 직원들도 기대감 속에서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한 적십자사 직원은 "실제로 직접 일선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허점이 보인다"며 "특히 직접 환자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성분 혈장을 굳이 제약사에 공급해 혈액제제로 만들어 환자에게 공급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적십자사 혈액원에서 사용하는 성분 채혈기를 사용하면 적혈구, 혈장, 혈소판 등 다성분 채혈이 가능하다"며 "성분 채혈을 확대해 혈액의 안전성과 환자의 편리성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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