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출신의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이 "어느 약이든 부작용은 나타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될 게 없다"며 PPA(페닐프로파놀아민) 성분 감기약이 4년간 유통된 데 대한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언론의 과장보도 탓으로 돌려 논란이 일고 있다.
김선미 의원 말대로 PPA성분 감기약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졸중 위협'에서 자유로우며, 식약청의 늑장대처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호들갑 보도'에 불과한 것일까?
***"단일 질환 사망률 1위, 생명 건져도 후유증 심각"**
'갑자기 무엇인가에 당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 불린다. '뇌졸중'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인 사망률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4천5백만명이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있다.
통계청의 <2002년 사망원인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연간 총 24만6천여명의 사망자 중에서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3만7천여명으로 전체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뇌혈관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혈압으로 인한 사망자수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욱더 늘어난다. 이는 단일 질환 사망률만 따져 볼 때 가장 높은 것으로, 최근 10여년간 '뇌혈관 질환'의 사망률은 변함없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터지거나(뇌출혈), 막히는(뇌경색) 것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PPA 성분은 뇌출혈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뇌간 등 생명과 직결된 부위에 뇌졸중이 발생하면 하루이틀 새 사망하며, 그 밖의 부위라도 뇌졸중 범위가 크면 깨어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로 시간만 끌다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더 무서운 것은 생명을 건지더라도 전신 또는 반신마비, 언어장애, 요실금 등의 후유증으로 본인은 물론 주변 가족들의 삶의 질이 엉망으로 떨어지며, 때로는 이것이 원인이 돼 사망한다. 죽음보다 무섭다는 치매도 절반 정도는 뇌졸중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환자만 2백80만명, 스트레스도 원인"**
현재 국내에는 약 2백80만명의 뇌졸중 환자가 있으며 고혈압, 당뇨와 함께 3대 만성 질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연령별로는 1960~70년대에는 50대가 가장 많았으나, 1980년대~최근에는 고령화에 따라 6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최근엔 비교적 젊은 50대 초반, 심지어 40대도 뇌졸중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고혈압, 비만 및 사회적으로 고조되는 스트레스 등이 뇌졸중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혈압이 높으면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6~12배, 뇌출혈에 걸릴 확률이 18~20배 높다.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뇌졸중 환자의 약 70%에게 고혈압이 있었다. 여기에 스트레스까지 겹쳐 뇌졸중 발병률을 더욱 높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에 <뇌졸중>(신원문화사 펴냄)이란 책을 낸 배철환 강남의림한방병원 원장은 4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뇌졸중은 기본적으로 노화와 관련된 병이지만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찾아온다"며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질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배 원장은 "PPA 성분 감기약의 경우에도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의사들 사이에서는 그 위험성이 얘기돼 왔다"며 "처방전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기약을 먹고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배 원장은 "부작용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PPA 성분 감기약이 뇌졸중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 원장은 "공중보건 차원에서는 당연히 '만약의' 부작용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조치처럼 전면 금지시키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 발언, 뇌졸중 원인 제공"**
익명을 요구한 다른 신경외과 전문의도 "현재 미국만큼 철저하고 엄격하게 의약품의 부작용에 대한 규제를 하는 나라는 없다"며 "솔직히 얘기하면 2000년 미국에서 예일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PPA 성분 의약품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을 때, 국내에서도 미국의 조치를 따라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유럽연합(EU)도 자국의 소규모 제약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엄격한 규제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제약회사 입장을 고려해 규제를 미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선미 의원의 얘기는 보건복지 행정을 감시해야 할 보건복지위 소속의 의원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라며 "뇌졸중의 중요한 원인이 스트레스인데, 김선미 의원의 발언이 뇌졸중 유발 원인을 제공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뇌졸중이 줄어드는 기미는 안 보인다"며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과 뇌졸중 관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을 빨리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철환 원장은 이와 관련, "사회적으로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는 것도 뇌졸중을 예방하는 한 방법"이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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