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 만난 이종석 전 장관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북한 개별 관광과 관련해 "유일하게 남아있는 걱정은 한미 공조 부분"이라며 "우리가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미국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한미 워킹그룹에서는 북핵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비핵화 협상에 대해 이도훈(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미 국무부 부장관)이 만나 창의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질 못했다"며 "그러다보니 신(新) 조선총독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개별 관광은) 정부의 주권적 사항이고 유엔 (대북) 제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판단할 것이지 미국과 먼저 협의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해 북한에 대한 개별 관광 추진은 한미 워킹 그룹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는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개별 관광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미국의 뜻과는 대조적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들을 상대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개별 관광 사안과 관련, "향후 제재 (위반 사항 문제)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이 사안을) 다루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개별 관광이 유엔 안보리 제재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자 제재에도 저촉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이 문제를 한미 워킹그룹의 논의 테이블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통일부는 또 이날 배포한 개별 관광과 관련한 참고자료에서도 "개별관광은 유엔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 가능한 사업"이라며 "제재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세컨더리 보이콧'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혀 독자적인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전 장관은 최근 정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제가 항상 '버스 지난 다음에 손 흔들지 말라'고 했는데 지난해 하반기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내 (남한) 시설 철거를 이야기하기 전에 정부가 이런(개별 관광) 제안을 했다고 하면 실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을 것"이라며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간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진전 사항을 맞춰왔는데, 남북관계가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켰던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며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 악화를 막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그럼에도 정부가 개별 관광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개별 관광은 유엔 제재 밖에 있고 (관광 허가 결정은) 대한민국의 주권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남북 간 통로를 통해 (남북 주민들이) 서로 방문할 수 있다면 군사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고, 현실적으로 본다면 전쟁없는 한반도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별 관광은 진작에 풀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이왕 개별 관광을 허용하는 쪽으로 의지를 가졌다면 이러 저러한 조건들을 붙여서 상황을 어렵게 하지 말아야 한다"며 "북한은 까다로운 협상 상대다. 정부가 좀 더 담대하고 선 굵게 정책을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북한이 정부의 개별 관광 추진 의지에 호응할 가능성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지금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가능성은 반반"이라며 "일단 (개별 관광 물꼬를) 터 놓으면 실제로 북한을 오갈 필요성이 있는 시민단체나 지자체 등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관리하고 추진해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아직 미국과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고 경제 개발을 가장 중심적인 목표로 두고 있다는 점도 남북 간 관광을 매개로 한 향후 교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해 '새로운 길'을 이야기할 때 강하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비핵화 협상 중단 선언 등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이런 기준에서 따져보면 전원회의에서의 김정은의 메시지는 (그 강도가) 중, 하 수준 정도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연말 도발 가능성을 예고했지만 (이후 언행을 봤을 때) 비핵화 협상의 문을 닫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며 "북한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자신들이 대화의 문턱을 낮출 생각은 없다는 점, 그리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맞춰) 미국이 동시 행동으로 제재를 완화 또는 일부 해제하라는 것 등이다"라고 분석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은 '반미 결사 항전'이 아니라 '자력갱생'을 이야기하고 있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후) 각 시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른바 '궐기 대회'에서는 자력갱생, 경제발전, 농업증산 등의 구호가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먼저 나오지 않고 엄격한 조건을 먼저 내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북미, 남북 간 대화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우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은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서 군에 경제 건설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훈련을 해버리면 자신의 발언의 정통성에 문제가 생긴다"라며 김 위원장이 훈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에 대해 우리 정부가 확실히 스탠스를 잡아야 한다. 북한에게 훈련 축소는 별로 의미가 없다"며 "미국에 훈련을 중단하자고 이야기하려면 정부의 결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이 정도만 하면 북한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장관은 또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 결의안을 좀 더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한 것을 그냥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냅백(위반 행위 시 제재 복원) 조치로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 즉 북한이 제재를 완화했음에도 군사적 행동을 취하면 제재 해제를 취소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가 18일(현지 시각) 평양 내 소식통을 인용해 리용호 외무상의 후임으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리선권이 임명됐다고 보도한 내용과 관련, 이 전 장관은 그 의도에 대해 "(미국과) 비핵화 문제에서 김정은이 성과를 보지 못했는데 이후에도 협상이 어려워지다 보니 교체한 것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그는 "리선권이 외무상이 됐다고 해서 대미 강경 노선을 예측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리선권이 북핵 협상의 최전선에 나설지도 의문"이라며 "북한이 최근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과 상당히 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리선권은 핵 문제보다는 이러한 업무를 주로 할 것 같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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