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리우드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
국내 여름시장 중간 점검: 할리우드 급상승, 한국영화 급속 추락**
올 여름 시장만을 놓고 보면 한국영화는 현재 분명히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 올 들어 한국영화계는 소수 몇편의 영화만을 제외하고 수준이하의 졸작들을 양산해내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박스오피스에서도 신통찮은 성적을 내는데 그치고 있다. 중견배급사 아이엠픽쳐스가 최근 발표한 시장분석 보고서에서도 한국영화의 추락은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월별 시장점유율 분석에서 한국영화는 6월 한달동안 36%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는 22개월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참고로 6월 직전까지 올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시장점유율은 63%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계자들은 지금의 추락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깊은 곳을 향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할리우드는 수개월 전 우리 영화가 들었던 얘기를 듣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영화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지난 5월부터 연속 홈런 내지는 장타를 치며 여름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5월말에 개봉된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는 전국 3백90만 정도의 관객을 모아 현재까지 올 한해 개봉된 외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뒤이어 나온 <투모로우>도 마찬가지. 전국적으로 3백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두 작품 말고도 할리우드 여름영화들은 연속해서 빅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영화는 현재까지 극장에 걸려있는 작품이 대부분으로 <슈렉2> <스파이더맨2> <해리포터-아즈카반의 죄수> <아이, 로봇> <반 헬싱> <본 슈프리머시> 등이 그것이다.
할리우드 여름영화, 곧 블록버스터들이 큰 인기를 모으는데는 막대한 물량공세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긴 하다. 지난 주말(7월31일~8월1일) 전국 관객 60만명 이상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반 헬싱>의 경우 수입가 50억원에 마케팅비만 18억원 이상을 들인 작품이다. 손익분기점만 하더라도 전국 관객 2백만명선. 하지만 수입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대표 김승범)는 개봉 첫주말의 흥행추이를 놓고 볼 때 전국 관객 3백만명 이상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크게 쓰고 크게 먹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헬싱>을 포함해 올해 개봉된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의 경우 단순히 자본과 조직을 동원한 물량공세만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의 할리우드 여름영화들은 유난히 작품성면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을 영화화한 <아이, 로봇>의 경우 리들리 스콧이 1982년에 만든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흑인판으로 만든, 묵시록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으며, 곧 개봉될 UIP 배급의 <본 슈프리머시> 역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타의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와는 차별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얼마 전 예술영화전용관 백두대간에서 상영돼 한국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은 저주받은 걸작 <블러디 선데이>를 만든 인물이다.
결론은 다양성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올 여름 유난히 한국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먹혀들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을 할리우드 특유의 물량공세, 탁월한 CG기술력으로 포장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한다면 올 한해,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한국영화들은 그야말로 초라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제의식이라곤 거의 비쳐지지 않는 안이한 기획의 상업영화들만을 양산해 낸 결과다. 한마디로 한국영화는 현재, 기획의 철저한 실패를 시장에서 맛보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작품은 대체로 10대 청춘스타들을 기용한 할리 퀸 소설류의 청춘멜로나 트렌디한 공포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청춘멜로의 대표격 영화로는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 <돌려차기> 등. 공포영화의 경우 <페이스>를 시작으로 <령> <분신사바> <인형사> 등이 꼽힌다.
올 한해, 특히 여름시장에 있어서 한국영화들이 흥행면에서나 비평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 결과는 국내 영화제작자들이 관객의식의 빠른 변화를 추동해내지 못하고 있는, 결국 시장에 대한 과학적 분석 능력이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화기획과 실물 시장 간에 나타나는 이 같은 괴리감은 국내 극장문화가, 긍정적인 원인에서든 부정적인 원인에서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서도 나타났듯이 연령별 스펙트럼이 대폭 확장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의 기획은 여전히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관객층만을 겨냥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제작자들은 아직도 '어린 아이들의 쌈짓돈'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주5일 근무제의 정착으로 주말 여가시간이 늘어났고, 그렇다면 영화의 주소비층의 연령대가 좀더 넓어지고 있는데 그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대후반의 어린 관객들을 겨냥한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보면 백번 양보가 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 지금은 바캉스 시즌, 무엇보다 여름방학 시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작품수준을 지나치게 하향평준화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영화가 이대로 가다가는 자멸의 길로 나아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기대를 모았던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같은 경우 일본 공포영화 시리즈 <링>과 홍콩 팡브라더스 감독의 <디 아이>를 합친 듯한 작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작금의 우리영화가 독창성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영화는 올 한해를 경유하면서 자칫 급전직하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는 갈등 국면을 말끔하게 정리해 내지 못하고 있으며(프레시안 7월19일자 기사 '한국영화 패권 둘러싼 CJ와 강우석의 전쟁' 참조) 스크린쿼터제도의 개선 논의에 있어서도 지지부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한국영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최근의 한국 영화계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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