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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19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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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19일 별세

향년 99세... 재벌 1세대 시대 끝나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19일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다. 이로써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국내 대표적 재벌그룹 1세 경영자 시대가 끝났다.

신 명예회장은 1921년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1938년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 후 목장에서 일하다 성공을 위해 1941년 일본으로 밀항, 1944년 공장을 창업해 경영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사이 공부를 이어가 1946년 와세다실업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신 명예회장은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려 껌을 개발, 1948년 롯데그룹 모체인 ㈜롯데를 세웠다. 이후 롯데의 또 다른 상징이 된 가나초콜릿을 1964년 출시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한 신 명예회장은 롯데부동산, 롯데리아 등 계열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두 나라 국교가 정상화하자, 신 명예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에 승낙해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후 신 명예회장은 주로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무르며 그룹을 경영했다. 여태 롯데가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한국에서 롯데그룹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1970년 부정식품 단속이다. 당시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 그룹 명운이 흔들릴 위기였다. 때마침 국빈 방문하는 외국 사절을 위해 서울에 고급호텔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쇳가루를 구실로 신 명예회장에게 롯데호텔 설립을 요구했고, 신 명예회장은 이를 승낙해 위기를 돌파했다. 당시 정부의 각종 혜택을 등에 업은 신 명예회장은 1979년 롯데호텔을 준공하는 한편, 롯데쇼핑까지 완공했다. 이를 계기로 롯데그룹은 단순 제과업체에서 유통, 서비스업까지 아우르는 대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현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명예회장이 처음 구상했다. 신 명예회장은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기 위해 관련 부지를 매입해 기초를 닦았다. 신 명예회장은 2015년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을 직접 찾아 건설 상황을 직접 듣는 등 말년까지 해당 빌딩에 애착을 보였다.

말년은 불운했다. 2015년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이 과정에서 장남 손을 들어준 신 명예회장은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이사를 해임하려 했다. 그러나 이사회의 반대로 신 명예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고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이 됐다. 둘째 아들과 갈등 끝에 권좌에서 억지로 떠밀려났다.

이후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모두 퇴임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 신 명예회장은 2017년 경영비리 혐의로 두 아들과 함께 법정에 섰다. 재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35억 원형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유족으로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 명예회장의 일본 이름은 시게미츠 타케오(重光武雄)다.

과거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 외무상을 지낸 A급 전범 시게미츠 마모루의 외조카라는 설이 돌기도 했다. 롯데그룹 창업주가 전범의 조카 사위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론이 악화하자 2015년 롯데그룹은 <조선일보>에 해당 보도에 관한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등 공식 부인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에서 일하며 형 신 명예회장과 함께 그룹을 운영해 나갔으나 1978년 농심을 세워 독립했다. 농심이 롯데로부터 분리하기 전 롯데는 ‘롯데라면’을 출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신 명예회장은 라면 판매를 결사 반대했다. 라면 사업에 관한 갈등이 훗날 농심그룹 출범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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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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