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자살한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남긴 유서 일부가 언론에 공개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해 초까지 모든 결정을 내렸다"라는 내용이다.
이인원 유서 "신격호가 모든 결정"…신격호 "조문 계획 없다"
롯데그룹 비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창업자인 신 총괄회장에게 돌리는 내용이다. 롯데 비리 의혹에 대해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가 예정된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부회장 다음 조사 대상으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유력했다. 이 부회장의 갑작스런 자살로, 검찰의 수사 일정이 꼬이게 됐다.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이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과 대립했다
신 총괄회장 측은 이 부회장의 빈소에 조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신동주 전 부회장 역시 29일 오전까지 조문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신격호 가신 그룹, 일제히 신동빈 편에 섰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전까지, 신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이른바 '셔틀경영'을 해 왔었다. 홀수 달은 한국,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무르는 식이었다.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 머물 때면, 이 부회장이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이른바 '가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 머물 때면,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이 같은 역할을 했다. 쓰쿠다 사장은 일본 롯데그룹의 주거래 은행이던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출신이다. 그를 눈여겨 본 신 총괄회장이 직접 영입해서 곁에 뒀다고 한다.
그런데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후계자로 부상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신 총괄회장 가신 그룹이 일제히 신 회장 편으로 돌아섰다. 이인원 부회장 및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모두 신 회장의 최측근 가신이 됐다.
지난해 3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롯데그룹 식품 사업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쓰쿠다 사장이 '원 롯데, 원 리더(One Lotte, One Leader. 하나의 롯데, 하나의 지도자)'라는 문구를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그는 회의 참석자들 앞에서 신동빈 회장에게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신 총괄회장의 가신 그룹이 차남인 신 회장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는 상징성이 있다.
'원리더' 표현 자제하는 이유?
신 총괄회장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해 7월,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들에 대한 해임을 통보했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이인원 부회장 및 황각규 롯데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에 대한 해임도 함께 요구했다고 한다. 이런 요구는 결국 기각됐다. 이후 진행된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신동빈 회장이 이겼다.
하지만 지난 6월, 검찰이 한국 롯데그룹 수뇌부를 전격 수사하면서 변화 조짐이 있었다. 쓰쿠다 사장은 최근 일본 롯데 임직원들에게 '원 롯데, 원 리더'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했다. 한국 롯데 수사의 영향이 일본에 미치는 걸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울러 신 총괄회장 이후 새로운 '원 리더'로 떠오른 신동빈 회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언론에 공개된 이 부회장의 유서 역시 의도는 닮은꼴이다. 당초 수사의 칼날은 신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고령 및 건강 이상으로 조사가 어려운 신 총괄회장에게 돌린 것이다.
주군 위한 희생은 당연?…<주신구라> 경영학
소유 및 지배 구조를 보면, 롯데는 일본 기업에 가깝다. 일본에선 전문경영인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자살한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유학했던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는 <일본 내면 풍경>(살림 펴냄)에서 일본 고전 <주신구라(忠臣藏)>에 빗대서 이런 현상을 설명했다. <주신구라>는 46명의 사무라이가 주군의 원수를 갚고 전원 할복자살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조직의 수장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겼다는 게다. 그리고 이런 정서가 기업 및 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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