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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등 '9인의 감독' 공동영화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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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등 '9인의 감독' 공동영화사 설립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13> 충무로의 새로운 '태풍의 눈'

***9명의 영화감독들, 새영화사 '나인 디렉터스' 설립,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다**

***박찬욱-봉준호-김지운-허진호 감독 등 공동으로 영화사 만들다**

작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흥행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 온 감독 9명이 공동으로 영화사를 만들어 한국영화 제작의 새로운 실험에 도전한다.

이들 감독들이 최근 법인 신고를 완료한 영화사의 이름은 '나인 디렉터스(Nine Directors)'. 참여한 감독들은 지난 5월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서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과 <봄날은 간다>은 허진호 감독,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 그리고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등이다.

'나인 디렉터스'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김성수 감독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작비 전체를 투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개발하기까지 때에 따라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품 사전 개발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일선에서 뛰는 영화감독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음을 지적해 왔다. 김 감독의 이 같은 제안은 여타 다른 감독들에게 공감을 얻었으며 이들은 프로듀서 이태헌을 영입, 제작사 설립을 추진해 왔다.

이태헌 프로듀서는 박찬욱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모호필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이지만 국내 영화계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 '나인 디렉터스'의 활동 여하에 따라 앞으로 크게 주목할 만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서강대 출신으로 영국 에딘버러에서 영화평론을 전공했으며 그간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해왔던 것외에도 영화현장에서 다양한 영화경험을 쌓아 왔다. 켄 로치 감독의 <칼라 송> 등의 영화는 그가 수입배급한 작품. 옴니버스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가운데 박찬욱 감독이 만든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그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작품이다.

'나인 디렉터스'가 제작사이긴 하지만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를 통해 연대 의사를 밝힌 감독 9명 모두 이미 각자의 영화사를 설립, 소유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향후 영화제작의 주체는 각자의 영화사가 되는 것이지 '나인 디렉터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나인 디렉터스'는 이들 감독이 각자의 영화사를 통해 신작을 만들 수 있도록 적게는 1억~2억에서, 많게는 4억~5억원에 해당하는 사전 작품 개발비를 투자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나인 디렉터스'는 감독들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 일종의 소액 투자자로서 역할을 하되 그것을 사전에 작품 개발비의 형태로 지원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인 디렉터스'는 더 나아가 이들 감독들의 작품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20억~30억원 전체를 사전에 펀딩(funding)하되 감독들의 이름값에 따른 투자의 안정성 등을 내세워 국내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제1금융권에서의 투자 유치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금융권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는 국내 중견 로펌(law firm)인 '에버 그린'이 맡고 있으며 '나인 디렉터스'는 국내 투자외에도 해외로부터의 직접투자를 통해 회사의 재무구조를 보다 안정화시킨다는 전략이다. 해외투자는, 허진호 감독처럼 이미 홍콩 진가신 감독이 이끄는 '어플러스 픽쳐스' 등에서 직접투자를 받았던 경험이 큰 밑바탕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인 디렉터스'의 설립은 2001년에 만들어져 현재는 다소 활동이 부진한 '에그필름'(대표 지영준)의 운영행태와 비교될 수 있다. '에그필름'은 설립 당시 5명의 유명감독을 모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에그필름'에 소속된 감독은 배창호 곽재용 박찬욱 이영재 이무영 감독 등. 이들 감독은 당초 '에그필름'으로부터 향후 각자 영화 3편에 대한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는 것을 골자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에그필름'은 모회사인 한 벤처투자회사가 약속한 자금 펀딩을 이행하지 않고 손을 떼 급격한 운영난에 휘말렸으며 지금까지 이무영 감독의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태권V소녀>와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 정도만을 제작한 상태.

'에그필름'의 경우는 모회사가 감독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주식 상장을 시도하고 이에 실패하자 사업 전체를 무산시킨 케이스로 이른바 국내 영화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투기성 자본의 행태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계약전 '에그필름'으로부터 각각 향후 제작할 영화에 대한 일정한 연출료를 지원받은 감독들은 계약 자체가 이른바 '노예문서'화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경우 투자제작배급 일체를 '쇼이스트(대표 김동주)'가 했음에도 불구하고 '에그필름'이 감독과의 계약을 내세워 총 수익의 30%를 확보했다. 현재 '쇼이스트'와 '에그필름'은 <올드보이>의 국내외 총수익의 배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나인 디렉터스'는 '에그필름'의 오류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각자의 감독들이 갖고 있는 영화제작의 자율권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데 입장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의 감독들로 하여금 자본의 종속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하되 효율적으로 제작비를 지원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전 작품 개발비' 투자유치를 위한 공동의 영화사를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들 유망 감독들이 단순하게 작품 개발 지원비를 공동으로 투자받는, 일종의 자본의 기능적인 결합만을 꾀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사 설립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작금의 한국 영화계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새로운 영화문화를 위한 도약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의식있는 작가들, 특히 작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흥행성 있는 대중영화를 제작해 내고 있는 이들 감독들의 경우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조류, 일명 '뉴 코리언 시네마'의 정신적 모토를 만들어내는 것이 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나인 디렉터스'가 향후 한국영화의 새로운 뿌리가 될지, 영화제작 시스템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는 정도로 그칠지 국내 영화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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