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식 대학 서열화, 점점 견고해지는 학력·학벌 카스트, 개성과 재능을 잘라버리는 주입식 교육, 경쟁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 사교육비 폭증, 학교 수업 중단 및 자살학생 증가, GDP대비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 유례가 없을 정도의 기형적인 사학의 비중, 스펙 쌓기에 내몰리는 대학생들, 청년실업으로 열패감에 시달리는 수백만의 젊은 영혼들! 교육 고통 속에서 헬조선을 부르짖는 청춘들을 보며 우리 기성세대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우리나라 교육이 중병을 앓은 지 오래되었지만, 이곳저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터지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보기가 힘들다. 현재의 우리 교육이 인성과 상상력을 말할 수 있는가? 정의와 민주시민을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민족자존과 친일청산, 남북평화와 미래사회를 말할 수 있는가? 과학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하루가 다르게 일반화되는 시대에 과연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현재 대한민국 교육은 해외토픽에 등장할 정도로 그 병이 너무 깊어 누가 봐도 기형적 상태이고 중증이다. 하루속히 '교육 대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약이나 바르면서 수수방관하는 것은 교육 고통을 호소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는 일이요, 대한민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 분야, 뼈아픈 실책 몇 가지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교육 혁신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교육 분야 성적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통일 문제 신경 쓰듯, 검찰 개혁에 주력하듯 교육 개혁에도 앞장섰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교육 문제는 국정과제 중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명 중증인 환자를 두고 어떤 의사가 수술하기를 꺼린다면, 환자 상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그 환자를 수술할 실력이 모자라거나, 그 환자를 살려 얻는 이익이 별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에서 정면 돌파하듯 교육 대수술을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은 첫째, 교육의 중요성과 현 교육 현실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둘째, 교육 문제는 손대봤자 정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최대한 건드리지 않겠다는 전략이거나 셋째, 정부여당도 이른바 엘리트층으로 대변되는 교육 기득권 세력에 포위되어 꼼짝달싹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문제인 정부는 몇 번째 이유로 '교육 혁신' 앞에서 작아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 교육 문제는 교육 논리로 풀어야!
핀란드 등 교육 개혁에 성공한 나라에서 보듯 교육 문제는 철저하게 교육 논리로 풀어야 한다. 정치 논리와 시장 논리 등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에 '교육 문화수석'을 두지 않았다. 역대정부가 지나치게 교육 문제를 청와대가 주도하는 바람에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논리를 앞세워 국제중·자사고 설립 등 특권학교 통해 교육을 시장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정치 논리를 앞세워 국정역사교과서 파동 등 교육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애썼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가 에르끼 아호 국가교육청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정치권이 한 발 물러나 있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도 교육부총리와 국가교육회의에 힘을 실어주고 교육부총리와 국가교육회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5년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우고 그 로드맵에 따라 차근차근 국민들을 설득해 가며 때로는 호소해 가며 교육 공약을 하나하나 이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교육문화수석'이 없자, 당초 취지·기대와 달리 선기능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교육 문제에 간섭, 교육 공약과 정책이 갈 곳을 잃었고 결국 김상곤 부총리는 무능의 상징처럼 낙인찍혀, 결과적으로 불명예스럽게 내려오고 말았다. 물론 김 전 부총리에게도 절반 정도의 책임이 있다. 대통령을 독대해서라도 내게 힘을 실어 달라고 해 나라를 살리는 교육 혁신에 매진했어야 했다. 국가교육회의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무슨 존재감이 있으며 어떤 성과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3권 분립 국가이다. 그러나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는 헌법정신과 취지를 감안하면, '입법·사법·행정'에 '교육'을 더해 사실상 4권 분립을 지향하고 있다 하겠다. 이 헌법적 가치에 부응하기 위해 현재 교육감직선제 등 교육 자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정치권력의 도구나 시장 논리로 접근하면 안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교육 논리와 교육적인 안목에 기초하여 정책을 구현하고, 교육부 관료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책개발 기능을 집행기능과 분리시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교육백년지대계가 실현되도록,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이상의 법적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통일문제 접근하듯 교육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여 반통일 정책을 쓸 수는 없는 것처럼 교육 혁신을 원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하여 중증 상태의 교육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또한 의사가 여론에 따라 환자를 진단·처방하지 않듯이 교육 문제는 여론을 따라가면 안 된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에게 맡기는 순간 수시·정시 싸움처럼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필요에 따라 공론화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핀란드 등 교육 개혁에 성공한 나라에서 보듯 올바른 교육 청사진을 제시한 후,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둘째, 교육 정책을 국정과제 중 우선순위로!
집권여당이 정말 교육을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있었다면 국회 교육상임위원장을 야당에 내줄 리 없다. 다른 상임위원장을 양보하더라도 교육위원장만은 집권여당이 갖고 교육 혁신을 위한 입법 작업에 박차를 가했어야 했다. 아울러 교육상임위원들도 적임자를 고르고 골라 배치했어야 했다. 희망하지도 않는 의원을 교육위로 보낼 것이 아니라 교육위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즉 이를테면 A의원에게는 '국가교육위윈회'를, B의원에게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를, C의원에게는 '사교육비 대폭 경감'을 위한 입법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라고 하며, 교육위 의원들에게 각각 사명과 임무를 부여하듯 배치했으면 국가교육위가 신설되고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등 훨씬 큰 혁신과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교육부 장관 임명에도 아쉬움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얼마든지 학교 현장과 교육 현안을 잘 아는 '교육 개혁의 적임자'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 청문회 통과 수월 등의 이유로 정치인 출신을 임명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이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에도 각종 교육 관련 자리나 위원회에 교육 논리 아닌 정치 논리가 작동하고, 특정 인맥 중심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차지하고 있어 낙하산 인사·코드인사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주의' 대신 '온정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셋째, 교사 또는 초중고 출신 교육전문가 등 학교 현장 우선!
"입시지옥을 초열지옥으로 만들려는 정책은 청와대와 교육부의 교육철학 빈곤에서 비롯됐다. 미국 교육 체계에도 '뛰어난 자에게 영광'이라는 제퍼슨주의와 '기회 평등'이라는 잭슨주의가 융합돼 있다. 교육 행정 난맥상은 학교 교육 주체인 교사와 학생을 무시한 탓이다. 교사 무시는 교육부 장관이 59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교수·정치인 출신이고 교사 출신은 한 명도 없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치인은 기득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여론'을 따라가기 십상이고, 교수는 심각한 초·중·고 교육 현장을 모른다. 교수는 교사자격증도 없는 자들이다. 교사 출신 교육부 장관이 절실한 이유다. 우리는 상급 관청이 정책을 만들고 하급 관청은 집행하는 하향식 행정을 당연시하지만 진정한 교육 자치는 현장 목소리를 위로 전달해 정책을 형성하는 것이다."(<경향신문> 2019년 12월 31일 자 '[이봉수의 참!]문재인 정부가 되돌려 놓아야 할 일' 중)
이봉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 역시 교사를 '투명인간, 식물인간 취급'하고 있다. 정말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여기며 교육을 최우선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면 학생·교직원·학부모 등 교육3주체 입장에서 생각하고 학교현장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특히 교사 등 교육 주체를 개혁의 파트너로 삼아 교육 정책 입안 과정부터 실행 단계까지 학교 현장과 초중고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위원회와 조직이 대학교수나 정치인 등 명망가 위주로 꾸려지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대통령 정시확대 발언 이후, 한 교육 단체가 "주무 장관이나 국가교육회의 의장도 모르는 내용이 연설문에 들어갔다"며 "이번에 문제를 야기한 청와대 비서진 내 책임자 경질과 국회 교육 공정성 강화 특별위원회 등에 포진한 사교육업자의 해촉"까지 요구했을까? 이는 의료개혁하자면서 전국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 출신 의사들은 배제하고 대학교수 등 일부 명망가 위주로 개혁팀을 꾸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다.
'그 나라 교육의 질은 그 나라 교사들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문재인 정부도 꼭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교육 혁신을 교사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할 때 '교원노조 법외 문제'도 함께 처리했을 것이고, 교사의 정치기본권(정당가입, 후원, 출마의 권리) 보장, 교사의 전문성(교재 선택과 교육 과정권, 평가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개혁입법을 추진함에도 이렇게 소홀하지 않았을 텐데 아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교사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고 사기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리나라 교사는 허울뿐인 전문직이다. 이제 실질적으로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 교원의 승진제도 등 개혁이 시급하다. 승진과 행정중심의 학교를 교육 활동 중심의 학교로 바꿔, 교육 주체인 교사들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부디 '교문현답(교육 문제, 현장에 답이 있다)'을 실천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닌 채, 행복하게 살아갈 소양과 능력을 길러주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교육 논리로 교육 문제를 풀어가야 함에도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 등으로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 학교는 입시공장으로 전락시켰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제는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차가운 경쟁 교육'에서 '따뜻한 협력 교육'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다니고 싶은 학교, 교직원들에게는 일하고 싶은 학교, 학부모들에게는 보내고 싶은 꿈의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마땅히 학생들의 꿈과 끼, 삶과 뜻이 커지고, 교직원들의 뜻이 신명 나게 펼쳐지며, 학부모들의 믿음이 웃음 가득 실현되는 학교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가 사회에 나가 직업을 선택할 때가 되면, 이들 중 65%는 새롭게 생긴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하고,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위해 매일 15시간씩 낭비하고 있다'고도 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고 있고, 어떤 미래를 준비시키고 있는가?
소수의 기득권 및 이익단체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와 국민들의 절절한 고통에 응답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정면 돌파하듯 특단의 교육 대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육 고통시대'를 끝내고 '교육 행복시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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