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386 정치인들이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며 쓴소리를 한 데 이어, 이번에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386세대는 경제공부를 안한 게 아니라 사실은 경제감각이 없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헌재 부총리 발언을 계기로 촉발된 386세대와 경제-관료계 사이의 갈등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성세대의 잇따른 젊은세대 비판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박용성 "386,경제공부 안 한 게 아니라 경제감각 없어"**
평소 직설적 표현을 잘 쓰기로 유명한 박 회장은 19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제29회 최고경영자대학`에 참석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헌재 부총리는 386세대에 대해 경제공부를 안했다고 했지만 경제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경제감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들은 명분과 겉으로 나타나는 정치 감각만 안다"면서 "숫자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선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본에서 실패한 상품권 배포 주장하기도**
박 회장은 이날 정부의 세금감면을 통한 경제회생 대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석유값 오른다고 정부가 세금조정해서 가격을 맞추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지금처럼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법인세를 2%포인트 낮춰 주겠다고 감사하게 여길 기업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고소득층이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그들이 해외 골프장에 가고,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아울러 “고소득층이 소득의 35%를 저축하고 서민층은 빚을 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며 “정부와 정치권, 재계 등 사회지도층이 소비 진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공무원 식사비 3만원이하 규정처럼 지켜지지도 않고 소비심리만 위축시키는 정책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 소비 진작책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려해도 투자할 곳이 없는만큼 일본처럼 '국민생활쿠폰'이라도 발행,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일본에서 실패한 정책으로 판정난 상품권 배포를 대안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전윤철-이헌재도 앞서 386비판**
박용성 회장의 이같은 비판은 386세대 정치인과 경제당국을 함께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것이나, 근간은 노무현정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386세대 정치인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같은 386비판이 경제관료와 재계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 들어 공식석상에서 가장 먼저 386비판의 물꼬를 튼 이는 전윤철 감사원장이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지난 4월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조찬간담회에서 기업인을 대상으로 '변화와 혁신시대의 감사운영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는 자리에서 "지금의 20~30대는 아버지 세대가 일궈놓은 과실을 따먹으며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아버지 세대가 배고
픔을 참으며 어떻게 현재를 일궈왔는지를 아는 20~30대가 불평만 늘어놓는 것에 비애를 느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밀어닥치는 파고를 어떻게 타고 넘을 것인가에 현명한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에서 이데올로기 논쟁이 국민들의 마음에 와닿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념 논쟁에 빠질 것이 아니라 국가가 당면한 현실적 문제에 대해 관계부처 장관을 불러다 구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해, 우회적으로 당시 개혁논쟁이 한창이던 열린우리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전 감사원장 뒤를 이어 386세대에 비판을 가한 이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였다.
이 부총리는 지난 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여성과경영포럼 강연 과정에 "우리 경제는 현재 60년대식 경제 정책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라며 "경제발전의 주력 세대인 386세대가 정치적 암울기를 거치면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386정치인들을 비판했다.
이같은 이헌재 부총리 발언이 알려지자 열린우리당의 임종석 등 386세대 정치인들을 이 부총리를 강도높게 성토했고, 그후 불거진 이 부총리가 야인시절 국민은행으로부터 매달 5백만원씩 자문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386세대가 고의로 흘린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도는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경제위기 주범은 기성세대, 젊은세대는 희생양**
이같은 재계 및 관료계 수장들의 잇따른 '386세대 비판'은 지난 대선이래 촉발된 우리사회의 '세대간 갈등'이 얼마나 심한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한 증거라 하겠다.
이들의 비판은 비판의 대상이 정치권에 입문한 일부 386정치인들에 국한된 것이라면 부분적으로 그런 비판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각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386세대 전체에 대한 비판이라면 적절치 못하다는 게 지배적 반응이다. 과연 현재의 경제위기가 386세대 책임이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엄격히 말하면 '기성세대 책임'이다. 물론 젊은세대중 상당수가 무분별한 카드 남용 등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이같은 카드대란을 촉발시킨 주범은 다름아닌 경기부양 차원에서 카드남발을 허용한 관료계와 재계의 수장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3년간 경기부양 차원에서 조장되고 방치된 아파트 투기는 결정적으로 젊은세대를 희생양으로 만든 반면, 연령별로 볼 때 아파트 등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중장년층의 부를 증가시키는 '세대간 착취'와 '세대간 불평등'을 초래하면서, 젊은 세대의 노동의욕 상실 및 구매력 소멸에 따른 내수기반 붕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젊은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따끔한 충고는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쓴 약'이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위기 책임을 젊은세대에게 전가하는 식의 잘못된 비판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는 사실을 박회장 등 기성세대가 깨닫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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