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19기 4중전회, '거버넌스 체계' 개혁 강조
미국과 통상 분쟁 지속과 홍콩 시위의 악화라는 국내외적 위기 상황에서 지난 2019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공산당 19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9기 4중전회)가 개최됐다. 주지하듯이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당-국가 체제'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실질적인 최고 정책 심의 및 결정 기구다.
이번 회의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공중앙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 견지와 완비, 국가 거버넌스 체계와 거버넌스 능력 현대화 추진에 관한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관한 결정'(中共中央关于坚持和完善中国特色社会主义制度、推进国家治理体系和治理能力现代化若干重大问题的决定)이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 거버넌스 체계의 개혁이 이번 회의를 통해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이후부터 노동자의 집단행동 및 파업을 비롯한 사회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중국 정부와 학계에서는 '사회관리'(社会管理, social management)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3년 이후 사회관리의 방향을 '사회 거버넌스'(社会治理, social governance) 체계의 구축으로 전환하면서 민간 '사회조직'의 참여를 중시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이후부터 민정부에 등록한 사회조직이 양적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2010년 기준 약 44만 6000개), 특히 2013년 중국 공산당 제18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의 거버넌스 체계와 거버넌스 역량의 현대화가 향후 국정운영의 총괄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됐다.
그런데 이번 4중전회에서 보다 특징적인 것은 '인민(人民)'의 주체적 지위와 광범위한 참여를 적극적으로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즉 '인민이 국가의 주인인 제도체계'를 견지함으로써, 당과 국가기구의 개혁을 인민이 주도하고 다원적인 소통과 참여를 바탕으로 '인민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조직과 새로운 사회관리 기제
이처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개혁개방 이후 이룩한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부산물인 빈부격차의 확대, 환경파괴, 노사갈등, 군체성 사건의 폭발적 증가 등 갈수록 격화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원적인 주체와 민주적인 참여를 중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동원과 행정적 관리에 단순하게 의존했던 전통적인 모델에서 탈피해 정부 주도하에 다원적인 주체가 참여하는 국가 거버넌스 체계를 수립할 것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당 조직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조직과 인민 등이 사회 거버넌스의 주체로 참여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거버넌스'를 강조한다고 해서 단순히 과거보다 민간영역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사회조직의 활동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와 다른 방식의 통제와 관리방식이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2016년 8월 21일에 공포된 <사회조직 관리제도의 개혁과 사회조직의 건강하고 순차적인 발전의 촉진에 관한 의견>이다.
이 문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조직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자율성 보장보다는 통제적 성격의 관리와 감독을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책임자에 대한 관리 강화', '자금에 대한 감독 강화', '활동에 대한 관리 강화', '사회적 감독의 강화', '사회조직 퇴출 기제의 완비'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회조직 내 당 조직 건설'을 사실상 의무화함으로써 사회조직에 대한 당의 영도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2017년 19차 당 대회 이후에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조직의 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당정이 부과한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조직에 대해서만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것임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즉 '당과 정부의 집정능력 강화', '안정적인 체제 유지',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사회 서비스의 제공', '인민들의 당정에 대한 불만 완화', '당정의 사회적 통치 비용 분담' 등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국 특색의 사회조직'이라고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조직에 대한 중국 당정의 통제와 관리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당정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회조직만이 체제 내부로 포섭되어 생존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생존을 위해 포섭된 사회조직도 정부에 대한 높은 의존성과 낮은 자율성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기에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참여 공간은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법대학 사회학원 교수인 잉싱(应星)은 중국사회가 전체주의적 통제에서 '기술적 거버넌스'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기술적 성격의 공공 거버넌스는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만들어내고 있는 경영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새로운 권력 기술과 규칙을 통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 이러한 방식의 사회 통제와 감시는 안면인식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선별적 사회조직 활성화와 '사회 거버넌스' 체계의 부조화
한편 중국 사회관리의 방향이 '사회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되면서 노동의 영역에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더 이상 전통적인 관리 체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소위 '사회로 확장된 노동문제'가 나타나면서 노동문제의 '사회 거버넌스' 체계로의 인입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출현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산업경제의 주요 역군으로 부상한 농민공의 파업이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적절한 '사회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둘째, 노동자의 집단적인 저항이 공식적 노동조직인 '공회'(工会) 체계를 통하지 않고 전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셋째, 당정 통제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노동 NGO' 조직이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개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2015년 3월 22일에 <조화로운 노동관계 수립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여 사회관리의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방정부와 자본의 유착관계로 결합되어 있는 '안정유지'(维稳) 체제 하에서 이러한 시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외부로부터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고자 기업 친화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지방 공회도 이에 부응하여 기층 공회 및 노동자의 권리수호(维权) 행동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사회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가 '사회조직'의 활성화와 규제 완화이지만, '노동 NGO' 조직은 예외로 취급되고 있다. 즉 중국 정부는 다수의 사회조직에 대해 포섭 전략을 취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경제 발전에 위해가 될 우려가 있는 '노동 NGO'에 대해서는 '안정유지'를 명목으로 탄압과 배제의 전략을 적용하는 분할통치 방식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안정유지 체제 하에서 노동관련 사회조직은 항상 불안정을 야기하는 불순단체로 간주된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 사회 거버넌스 체계 개혁은 당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운영 및 사회관리에 주로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인민들의 사회적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서비스'(빈민·양로·고아·장애인 구제, 재난구조, 의료보조, 교육 서비스 제공, 도농의 기층주민 대상 서비스 제공 등)를 제공하는 사회조직들을 선별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비판적인 사회조직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4중전회에서 강조한 것처럼 다원적인 소통과 참여를 바탕으로 '인민민주주의'를 심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사회조직을 활성화하여 진정한 '공민사회'를 건설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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