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동시방문 일정을 마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오는 9월 열릴 예정인 제4차 6자회담에서 "대단히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밝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점치는 외신보도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같은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러 외무, 김정일에게 푸틴 친서 전달**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4일 백남순 북한 외상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5일에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핵문제 등을 협의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러시아 이타르타스 및 인테르팍스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는 "양국간 친선협조조약에 기초해 관계를 더욱 공고히 발전시키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담겨있다"고 밝혔으나, 외신들은 "친서에는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김 국방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을 담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 "9월 블라디보스토크 남북 정상회담 추진"**
청와대는 현재 오는 9월 노무현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방안을 러시아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는 4월께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탄핵사태로 취소되면서 방문을 재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노대통령의 방러 추진과 김 국방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일각에서는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러시아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 가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북한 정상과의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블라디보스토크발 기사에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남북한 동시 방문은 푸틴 대통령과 남북한 정상 간의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전했다.
***라브로프 "사실무근"**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하지만 6일 인타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회담은 전혀 계획되고 있지 않다"며 부인했다. 지난 3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의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부인한 바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방안을 중점 논의했다"며 "남-북-러 3국 당국자 회담 개최 문제도 조율했다"고 말해, 3국간 외교 채널을 통한 정상회담 논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타스 통신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과의 회담과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전제로, 북한의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북한의 권리를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고 북한 입장을 지지하면서 이와 함께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기"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져, 남북정상회담을 독려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차기 6자회담, '대단히 구체적 합의 달성' 전망"**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또한 방북 과정에 북핵문제와 관련, 상당히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음을 시사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인타팍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4차 6자회담에서는 동결과 보상의 원칙과 관련해 '대단히 구체적인 합의'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양국은 3차 6자회담에서 원칙적인 합의를 본 핵시설 관련한 '동결 대 보상' 방안이 구체적 합의의 기초가 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보상을 조건으로 핵시설 동결을 하고자 하는 북한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양국은 '포괄적 해결 원칙'도 지지했다"며 "포괄적 해결 원칙은 한반도 비핵화 보장과 북한의 안전보장, 사회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한 지원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 한반도 영향력 확보 움직임**
러시아 외무장관의 남북 동시 방문은 6자회담에서는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으나, 남북정상회담 및 북한에의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타르타스 통신은 "라브로프 외상은 이번 방문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남북간 대화를 실시할 수 있도록 중재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일본 산케이신문도 김정일 위원장의 방러 일정과 장래 에너지 공급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북한에의 에너지 지원을 통해서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측은 에너지 지원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에 대한 대안으로 러시아의 수력 발전소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과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의 건설을 통한 에너지 지원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극동연해주 세르게이 다르킨 지사도 지난주에 "북한과의 국경부근까지 송전선을 건설중"이라며 "푸틴대통령이 지시한다면 내년이라도 송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또 이 송전선을 한국에까지 늘리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교 당국은 "찬반양론이 있지만 한반도로의 에너지 지원 사업화는 장래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어 이는 유효한 외교적 카드가 된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북한으로서도 국내의 에너지 수급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불안정하고 외교적으로도 중국 이외의 선택사항을 확보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의도가 북한측과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과연 러시아의 이같은 한반도 영향력 확대정책이 구체적 성과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등이 이를 방치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는 9일 '부시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한국 및 일본-중국을 방문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안보보좌관의 행보가 더없이 주목된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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