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가 지난 1일 지상파TV 탄핵방송에 대한 심의안건을 '각하'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방송위 보도교양제1심의위원회의 남승자(전 KBS 해설위원) 위원장과 이창근 심의위원(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이 임기를 한달 남긴 상황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등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남 위원장은 지난 4일 양휘부 방송위 심의담당 상임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임할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2일 보도교양제1심의위원인 이창근 교수도 2일 남승자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지난해 10월 차기 언론학회장에 선출된 이창근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5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사임의 변을 기고해 "탄핵소추를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으로 보고 방송의 공정성을 판단한 언론학회 보고서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위 보도교양제1심의위원회는 탄핵방송에 대해 직접 심의를 담당했던 주체로, 이들은 탄핵방송에 대한 공정성 여부를 언론학회에 연구용역 주었었다. 그러나 지난 6월초 언론학회가 불공정 보고서를 낸 뒤, 지난 1일 방송위가 공정성 여부 심의 각하 결정을 내리자 이에 남 위원장과 이 위원이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사퇴한 남 위원장은 LBS에서 30년간 기자로 재직한 KBS 전직언론인이며, 이창근 위원은 96년부터 방송위 보도교양심의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이같은 사퇴결정은 앞으로 공정방송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음은 이창근 위원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 전문이다.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다시 생각할 때이다"**
한국언론학회의 탄핵방송보고서는 탄핵방송의 공정성에 대하여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달 30일 필자가 소속된 방송위원회 제1 보도교양심의위원회는 언론학회 보고서에 대한 지상파 3사의 의견을 청취한 뒤 그동안 미뤄왔던 공정성 위배 여부를 판정하려고 하였으나 의견의 차이가 커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다.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과 의견의 대립 정도를 감안할 때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 때문에 심의는 심의위원회의 상위기구인 방송위원회에 회부되었으며 방송위원회는 1일 개별이 아닌 전체 프로그램은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각하함으로써 탄핵 방송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이제 방송위원회의 틀 안에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탄핵 방송이 방송과 정치, 그리고 여론 형성간의 역학관계에 대해 방송인과 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여 심의위원과 방송을 공부하는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면서 심의위원직을 사임한다.
***1. 방송의 공적 책임**
우선, 탄핵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방송의 근본적 성격과 그 공적 책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희소한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은 그 제한적 성격과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국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것이 보편적인 원리이다. 이를 위해 방송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고 균형있게 반영하여 국민의 화합과 민주적 여론 형성에 이바지해야 하며 (방송법 제1조, 제5조 2항), 특히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때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방송법 6조 9항).
이를 위하여 방송사는 그 공적 책임과 파급 효과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하여 공정하고 신중하게 방송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민주적으로 공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방송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모든 방송은 규제를 받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공영방송은 수신료와 같이 국민이 부담하는 다양한 지원방식에 의해 운영되는 방송이기 때문에 국가 및 정치권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전파의 주인인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은 국민 간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촉진하고 숙의를 통하여 공론이 형성되도록 그 자체가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방송할 때 한쪽에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공영방송이 한 쪽의 편을 드는 순간, 공영방송은 당파적이 되며 따라서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물론 민영방송도 이에 예외는 아니나, 공영방송은 그 제도를 태동시킨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국민에 대한 책임 의식이 더욱 투철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공영방송의 전범인 BBC를 탄생시킨 영국의 방송법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현안에 대해 공, 민영 불문하고 모든 방송사가 방송에서 자사의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1926년 영국 정부가 당시 상업방송이던 BBC를 공영방송으로 변신시킬 때 주무 장관이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일단 방송이 정치에 개입하게 허용하면, 앞으로 여러분은 결코 방송에서 정치를 몰아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계한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도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할 것이나, 특정 시국이 민주주의의 존폐가 달린 것인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방송 제작자들은 매우 신중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공감할 때 그러한 판단의 정당성은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탄핵에 대한 시각과 보도의 공정성**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탄핵 소추를 둘러싼 논란을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으로 보고 그러한 관점에서 공정성을 판단한 언론학회 보고서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첫째, 탄핵에 찬성한 국민이 1/4 내지 1/3 이란 수치는 결코 무의미한 소수가 아니며, 따라서 과거 독재 대 민주의 투쟁 때와 같이 국민의 모두가 한쪽에서 분노한 '일탈적' 사건과는 다르고, 따라서 탄핵반대가 모든 국민이 합의한 사항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의 절차적 적법성에 하자가 없다고 판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판결문에서 소추 이유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판결문의 내용과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사실은 탄핵이 논쟁적 사안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국민의 7할이 야당의 당리당략적 의도를 간파하고 이에 분노를 표시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나 그 계산된 의도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은 헌재의 결정문이 증명해준다.
셋째,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탄핵소추가 '정치적 일탈 행위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사실이며, 따라서 탄핵 방송은 공정했다'는 일부 방송사의 주장은 헌재 판결문에 내포된 복합적 의미를 단순화한 과도한 해석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방송의 중요한 공론 형성 기능을 간과한 것이다.
즉, 여론이 한 시점에 나타난 대중의 집합적 의견이라면, 공론은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숙의하여 도출해내는 합리적인 '공중의 판단' (public judgment) 이다. 물론 여론이 진정한 민의와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지만 일시성과 가변성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은 한 시점의 여론을 반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공론의 장에서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사안의 의미를 숙고하고 결론에 이르도록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정치 과정에서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방송의 임무는 단순히 여론의 반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의 7할이 탄핵에 찬성했으므로 그 비율만큼 방송한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는 민주정치에서 언론이 수행해야 할 공론 형성의 기능을 외면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부 방송 프로그램이 초기 여론의 비중에 의거,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을 두둔한 것은 여론 반영의 임무는 수행했을지 몰라도, 보고서가 지적하였듯이 국민적 숙의를 조기 종결시키고, 소수자들의 의견 표현 의사를 위축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여론의 향배가 유동적인 초기에 제작자의 주관적 판단을 여과하지 않고 방송한 것은 방송의 공론 형성 역할과 지상파 방송이 이 과정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성급하고 신중치 못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상충하는 의견이 이성적 논의를 통하여 그 진위가 도출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정치체제이지, 방송사처럼 막강한 국민 설득 자원을 가진 기구가 자신의 주장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행위가 허용되는 권위주의적 체제가 아니다. 방송사의 주장이 균형을 잃고 편향될 때 그 것은 방송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설혹 탄핵 소추를 반민주적인 행위로 간주한 일부 제작자들의 사태 인식과 역사관이 정당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인식은 사실 전달이 아닌 논평 등 보다 적절한 프로그램을 통해 주장해야지, 현실을 굴절시켜 묘사하거나 윤색된 표현으로 탄핵 반대를 두둔한 것은 방송 자율성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3. 방송 내용**
보고서는 방송 내용이 전체적으로 탄핵반대 측에 긍정적이고, 찬성 측에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물론 방송 내용 전부가 불공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보고서가 지적하였듯이 방송 내용 중 불공정한 부분보다 더 많은 부분은 공정성 여부와 무관한 사실이나 정보와 관련된 기술이나 묘사였다. 중요한 사실은 한쪽에 치우친 평가적이고 가치판단적인 묘사와 표현이 많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중립적일 수밖에 없는 사실과 관련된 진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송 공정성 평가의 본질을 외면하는 궁색한 논리일 뿐 아니라, 방송인들이 그동안 애써 이룩해 놓은 한국방송의 질적 수준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방송의 편향성이 일반 뉴스 프로그램 보다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현저하였으며, 프로그램 간, 방송사 간에도 차이가 있었다는 지적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해당 방송사는 보고서에서 지적된 여러 사례가 방송사들이 스스로 제정한 방송강령을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방송에서 사용된 어휘와 표현 또한 문제이다. 이는 공정성 차원과는 다른 문제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돼있는 상태에서 방송이 선정적이고 격한 어휘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언어문화를 심각하게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탄핵 정국과 같은 중대한 시기에 국민의 냉철한 사고와 판단을 방해한다는 점을 제작자와 진행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4. 방송의 자유와 공정성 기준**
방송사도 언론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제작자들은 사회 현안에 대하여 언론 전문가로서 방송할 자유가 있다 (방송법 4조 1항). 따라서 만일 온 국민이 특정 현안에 민주주의의 존폐가 달린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 방송사는 평상의 공정성 기준을 초월하여 대의에 편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 편성의 자유는 국민 전체 이익과 방송인의 투철한 전문직 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지 스스로 제정한 방송강령까지 위배하는 행동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행사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비록 수적으로 열세하지만 국민의 상당수가 다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방송사는 방송자유의 이름으로 그들의 의견을 반민주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태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모든 국민의 지원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이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방송의 공정성 기준은 절대 불변이라기보다는 개개 사회의 특성과 그것이 처한 시대적 성격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이 매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방송의 공정성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미디어 구조의 틀 속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방송 구조는 지상파 방송이 지배하고 있으며 지상파 3사의 보도 기능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여 지상파 방송의 방송 내용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었다면, 그 요구가 개별적이든 포괄적이든 그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평가는 누구라든 마땅히 해야 한다. 또한, 탄핵방송의 편향성 여부에 국민의 관심이 컸던 만큼, 학계나 방송위원회가 어떤 형태로든 종합적인 결론을 내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은 나무보다는 숲의 형세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법 적용이 국민의 알권리를 압도할 수는 없다.
언론학회 보고서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겠지만, 필자가 심의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필자는 215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 결과가 나왔다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즉,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탄핵 방송에 문제가 있었음을 널리 알리고, 정치와 방송, 그리고 여론의 역학 관계를 반추할 기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그 기여도는 매우 크다고 평가한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논의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크게 보면, 이번에 탄핵방송을 둘러싼 논란은 의회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민주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상황에서 전개된 한 사건이다. 따라서 이번 논란의 의미는 좀 더 거시적이고 대승적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학문적 분석을 내놓은 학자들을 못한 일을 한 것처럼 매도하거나, 그 동안의 논의가 불필요했던 것처럼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논란이 없이 어떻게 선진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방송이란 항상 순간에 대응해야 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독특한 직종이다. 따라서 탄핵 가결과 같은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방송인들은 임기응변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인의 진정한 능력은 위기 때 발휘되는 것이고, 그 결과 방송의 수준은 평가되는 것이다. 탄핵과 같은 비상한 사건에 직면했을 때, 방송인들은 그 비상성과 중대성을 감안하여 성급한 해석이나 대응, 즉흥적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영상 한 컷과 말 한마디가 엄청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탄핵방송이 방송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고 유례없이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된 데 대하여 분노하는 제작자들은 종사자들은 탄핵방송이 방송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고, 유례없는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된 데 대하여 분노하는 제작자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만큼, 탄핵 방송에 잘못된 점이 과연 없었는지, 변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우리 사회에서 과연 방송이 수행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해 줄 것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곡하게 당부한다.
필자는 이것이 이번에 많은 국민들이 TV 방송 3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인들이 이 같은 메시지에 긍정적으로 호응할 때 한국의 방송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는 진일보 할 것이다.
이창근 방송위원회 제1보도교양심의위원회 위원·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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