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 주권이양 사흘만인 7월1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이 법정에 섰다. 이라크 임시정부와 미국은 무슨 까닭에 후세인을 서둘러 법정에 세웠을까. 이라크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그곳 지식인들은 “미 부시 대통령과 그 하수인인 이야드 알라위(이라크 임시정부 총리)는 후세인을 가능한 한 빨리 법정에 세워, 그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들 것”이라 내다봤다. (아래 글은 필자의 <한겨레신문> 7월3일자 기사를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 것임).
***미국의 세가지 노림수**
전 바드다드대 법대학장 수헬 파틀라위(63)를 비롯, 이라크임시정부와 미국에 비판적인 이라크 지식인들이 꼽는 후세인 재판의 정치적 이용은 세가지 측면으로 정리된다.
첫째, “이라크 주권이양이 허울뿐인 사기극”이란 비판을 누르기 위해서다. 이라크에서 만난 지식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지난 15개월 동안 이라크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폴 브레머 3세를 대신해 7월1일 부임한 존 네그로폰테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가 ‘이라크의 새로운 총독’이될 것”이라 지적했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 군법회의가 아닌, 이라크 법정에서 전 최고권력자 후세인을 심판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라크 주권이 미군 점령당국이 아닌, 이라크인들 손에 있다”는 상징성을 후세인 재판을 통해 보여준다.
둘째, 수니 삼각지대에서 무장활동을 펴는 일부 후세인 충성파들에게 수갑찬 채 법정에 들어서는 후세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구체제로의 복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품도록 해 그들의 투쟁의지를 꺾는다. 이른바 ‘수니 삼각지대’(바그다드-팔루자-라마디-티크리트를 잇는 지역)에서 조직적인 저항을 벌여온 무장세력은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에겐 골칫거리다. 그들의 정치적 구심점인 후세인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투쟁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
(이라크 취재과정에서, 수니 삼각지대의 반미 저항세력 모두를 ‘후세인 충성파’라 말하는 것은 잘못이란 점을 확인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이라크 민족주의’ 깃발 아래 대미 저항을 펼쳐왔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이들은 이라크 인구 20%쯤인 수니파 가운데 ‘페다윈’이라 일컬어지는 집권 바트당원들, ‘무카바라트’라 일컬어지는 전직 이라크 비밀경찰, 10만명 규모의 이라크 정보부 소속 특수부대, 2만명 규모의 후세인 경호부대였던 특수공화국수비대, 그리고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출신들이다. 미 의회조사국 연구원 케네스 카츠만은 바트당 간부들이 투쟁방향을 설정하고 자금을 대는 ‘머리’ 부분이고, 구 이라크 군 출신들은 총을 들고 싸우는 ‘몸통’이라 분석한다.)
셋째, 법정에 선 후세인의 모습과 그의 ‘범죄사실’을 되풀이해 보도함으로써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미 유권자들에게 심어준다. 그럼으로써 부시의 득표력을 높인다. 미 공화당 일각에서는 올 들어 “후세인 재판을 가능한 한 빨리 열어 미 대선에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오갔다. 후세인 재판이 정식으로 열리는 때는 내년 초라 하지만, 어던 명분을 내세우든 후세인 재판이 오는 11월 미 대선 이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이라크 임시정부는 “후세인 재판은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만났던 이라크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인 이라크침공 뒤 미국이 세운 (따라서 대표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임시정권이 미국의 각본에 따라 진행하게될 재판은 합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미 법률전문가들이 이라크로 파견돼 판사들을 재교육하고 ‘지침’을 내린 사실은 후세인 재판이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진짜 법정에 설 사람은 부시”**
사담 후세인을 따르는 일부 이라크 사람들에게 후세인은 ‘석유자원 국유화(1973년)를 통해 서구 식민주의로부터 아랍세계를 지키려던 아랍민족주의자’다. 그러나 그의 철권정치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1990년 쿠웨이트 침공으로도 큰 희생이 따랐다. 그렇지만 그는 “이라크가 전쟁에서 졌기에 내가 법정에 섰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실제로 미군은 2003년 이라크 침공과정과 뒤이은 치안유지 과정에서 숱한 민간인 희생자를 냈고, 아부 그라이브 감옥 고문사건을 일으켰다. 7월1일 후세인이 법정에서 "이것은 모두 연극이다. 진짜 범죄자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런 배경을 깔고 있다고 여겨진다.
전 바드다드대 법대학장 수헬 파틀라위 박사(63)는 ‘국제법’ ‘전쟁법’ 등의 저서를 펴낸 이라크의 이름난 국제법전문가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부시가 졌다면, 진짜로 법정에 설 사람은 부시“라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며, 따라서 부시와 미군지휘관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전쟁범죄를 다루기 위한 상설 국제재판소인 ICC는 1998년 맺어졌던 로마협정에 따라 2002년7월1일 출범했다. 지구촌 분쟁지역에서 대량학살 등 전쟁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유고전범재판소와 같은 특별법정을 설치하는 데 드는 시간과 예산 등 비효율성을 막고, ‘잠재적 전범자’들에게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예방적 효과를 지닌 상설재판소다. 그러나 미 부시행정부는 국제법학자들의 비난에 아랑곳 않고, 전임자인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해 미 의회로 넘겼던 ICC 가입안을 휴지조각처럼 버리고 ICC 가입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부시행정부의 ICC 거부논리는 “미국 군인이나 정치인이 자신이 저지른 범법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공세 때문에 ICC 법정에 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해외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이 미국 법정이 아닌 곳에서 재판을 받을까 걱정되는 탓이다. 한미행정협정(SOFA) 규정을 내세워 미국은 한국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미군들을 미군 영내로 빼돌려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익히 듣고 보아온 바다.
지난 15개월 동안의 전쟁으로 이라크에선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 대부분 미군의 마구잡이 공습과 오인 사격에서 비롯된 죽음들이다. 미 워싱턴의 독립적인 연구기관인 정책연구소(Th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IPS)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지난 15개월 동안의 전쟁으로 희생당한 이라크 민간인 숫자는 9,436명에서 11,317명에 이른다. 부상자만도 약 4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민간인 희생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얼버무려왔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없었다면 그런 어이없는 희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 아부 그라이브 감옥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나들이 삼가는 이스라엘 지도자들**
위의 파틀라위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제법을 어기고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많은 민간들을 죽음으로 내몬 미 지도자들이 전범재판소 넘겨질 가능성은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지금은 어렵지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다. ‘지금은 어렵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쟁범죄자를 저지른 미국인을 국제법의 이름으로 단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은 국제법상 이른바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국제법 학자들 사이에선 “반인류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국적과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돼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 제3세계로부터 ‘21세기의 깡패국가’로 비난받는 국가의 지도자들을 전쟁범죄자로 몰아 법정에 세울 주체가 없다. 그렇기에 국제법상 보편적 사법권논리가 강대국 미국에게만은 치외법권적 예외다. 그렇지만 인류사회의 진보를 믿는다면, 법정의가 골고루 적용되는 세상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런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1998년 칠레 피노체트 장군이 영국 방문길에 그가 17년 동안(1973~90년) 군사독재를 펴며 저지른 범죄들 때문에 붙잡혀 고초를 겪은 바 있다. 2001년5월 키신저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법원은 그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피노체트 쿠데타 때 일어난 프랑스인 실종사건들과 관련, 키신저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키신저는 황급히 파리를 떠났고 그 뒤론 해외나들이를 가능한 한 삼가고 있다.
이스라엘 군부 지도자들도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로 기소될까 두려워 유럽 출장을 꺼린다. 2부작 ‘평화기획 중동’을 준비중인 KBS <일요 스페셜> (7월4일 2부 방영) 팀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확인했던 사실 한가지. 지난 2월 유럽 벨기에에서 테러 관련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돼있던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 신 베트(Shin Bett)의 책임자 아비 디히터는 망설였다. 1998년 칠레 피노체트 장군이 영국 방문길에 겪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혐의로 벨기에 법정에 기소된 상태다. “가도 별탈 없겠느냐”고 벨기에 외무부에 탐색전을 펴던 그는 끝내 출국을 포기했다.
“승자는 전쟁범죄 재판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설 수도 있다”는 말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에게 딱 들어맞는다. 군 장교로서 샤론이 저지른 전쟁범죄 기록은 길다. 그는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학살한 냉혈장교로서 이름을 얻었다. 그에게 따르는 전쟁범죄 혐의는 1982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두 팔레스타인 난민촌(샤브라, 샤틸라)에서 저지른 학살극이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샤론의 비호를 받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는 8백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죽였다. 팔레스타인 쪽 주장은 1천명을 넘는다.
***“전쟁터가 법을 결정한다”**
2002년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샤론의 전쟁범죄를 다룰 한가지 가능한 길이다. 현재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벌이는 강공책의 와중에서 일어나는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샤론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수상직을 물러난 뒤 샤론은 미국말고는 외국 나들이를 삼갈 듯하다. 1998년 영국 방문길에 혼났던 피노체트가 그에겐 거울이다. 이런 일들이 언제가 부시를 비롯한 미 정치지도자들과 군부 지휘관들에게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라크 주둔 미군 지휘관들도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힘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현실이다. 1970년대 냉전시대에 미 국무장관을 지낸 국제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를 비롯, 한 국가의 정책결정이 합리적이라 여기며 특히 힘(power)을 중시하는 이른바 현실주의 계열의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전쟁터가 법을 결정한다”(Battlefields determine the law)고 여긴다. “이긴 자가 역사를 쓴다”는 옛말과 같다. 전쟁범죄 재판을 가리켜 ‘승자의 정의에 따른 절차’라는 비판이 내려지는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은 21세기를 지배하는 유일초강대국이다. 미국인을 전쟁범죄로 몰 현실적인 주체는 없다. 전쟁범죄 단죄에 관한 한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마저도 비껴선 치외법권 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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