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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여자와 B형 남자는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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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 여자와 B형 남자는 안 맞다?"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21> 혈액형의 ABC

이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려나요? 아직까지 비는 많이 오진 않지만, 하늘은 잔뜩 흐립니다. 하루 종일 뉴스에서는 장마 하늘보다 더 우울한 뉴스까지 쏟아내니 기분이 아니 우울해질 수 없습니다. 저마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는지 따지면서 기사들을 한 움큼씩 쏟아내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지요. 자국민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서글플 뿐입니다.

어쨌든 제가 찾아낸 질문은 이겁니다.

***"저는 A형인데요, 그 애는 B형이래요. 어디서 보니까 A형 여자와 B형 남자는 성격상 잘 안 맞는다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 '피'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봅시다.

피는 예로부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귀한 액체라는 이미지 때문에, 신성시되기도 하고 터부시되기도 했던 체액입니다.

우리 몸에서 피가 일정량 이상 빠져나가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대개 피는 전체 몸무게의 13분의 1 정도인데, 이 중 4분의 1에서 3분의 1 이상을 잃으면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체중이 65kg이라면 전체 혈액은 약 5kg 정도가 될 테고, 이중 1.5kg~2kg의 피를 잃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과다 출혈을 했을 때,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몸의 기가 빠져나가거나 생기가 고갈되거나 이런 이유가 아니라, 바로 질식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보면 혈액은 크게 4가지 성분―즉 혈장이라는 액체 속에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둥둥 떠다니는 그림 기억나시나요?―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중 적혈구는 산소 운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적혈구는 핵이 없어 가운데가 폭 들어간 원반모양으로 생겼습니다. 마치 구멍이 뚫리다 만 도넛 같은 모양이죠. 이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는 일종의 색소를 가지고 있고, 그 헤모글로빈은 중심에 철(Fe) 분자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철 분자를 품은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해서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과다 출혈이 일어나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이 기능이 떨어지게 되겠지요. 몸 구석구석의 세포들이 산소를 받지 못하면 우리 몸의 세포들은 숨이 막혀 죽어버리게 됩니다. 이 과정이 합쳐지면 결국 생명까지 위태롭게 되는 것이죠.

사람 피가 빨갛게 보이는 건 적혈구 때문이고, 적혈구가 빨간 건 헤모글로빈 안의 철 분자 때문입니다. 철이 산소랑 결합하는 현상은 '산화' 현상이기 때문에, 철 분자는 녹이 슨 것과 같이 되어 색이 빨갛게 변하는 것이죠. 그래서 산소를 풍부하게 품은 동맥피가 산소를 조직세포에 전달해주고 다시 폐로 돌아가는 정맥피보다 더 선명하게 빨간 색을 띱니다. 낙지나 문어 같은 종류는 산소 전달 분자로 철 대신 구리(Cu)를 쓰기 때문에 이들의 혈액은 파란색이지요. 학교 다닐 때 실험시간에 본 산화구리 용액이 파란색이었던 걸 기억하시나요? 어쨌든 살아있는 낙지나 문어의 눈을 보면 파란 핏줄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적혈구 얘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적혈구가 혈액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를 밖에서 넣어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도 그만큼 오래전부터 해 왔고요. 처음에는 동물의 피를 넣어봤지만, 환자는 다 죽었고, 사람의 피를 넣어준 경우는 어떤 때는 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죽기도 하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19세기 말에 어떤 사람이 실험을 했는데, 어떤 이의 피를 다른 사람의 피와 혼합하면 굳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피에는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를 찾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죠.

그래서 드디어 1900년, 란트 슈나이더가 사람의 적혈구에 A, B 두 가지 항원과, 혈장 속에 이에 대응하는 항응집소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서, 이를 A, B, AB, O형의 네 가지 타입으로 나누게 되었지요.

우리는 보통 네 가지 종류의 혈액형(A, B, O, AB 항상 대문자로 표기)을 갖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혈액 중, 적혈구 표면에 붙어 있는 당단백질의 종류에 따른 것으로 적혈구에 붙은 이름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이름표는 A, B 두 가지가 있는데, A만 가지면 A형, B만 가지면 B형입니다. 하나도 안 가지고 있으면 O형, 둘 다 가지고 있으면 AB형이지요. 이렇게 표지를 가지고 있는 적혈구를 응집원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들 A와 B는 서로 사이가 나빠서 섞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따라서 A형 혈액을 가진 사람은 핏속에 B형과 결합하면 이를 굳게 하는 b(소문자로 표기)라는 물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응집소입니다. 즉 A형 혈액을 가진 사람은 A 응집원과 b 응집소를 가지게 되죠. 다른 혈액형을 볼까요? B형이라면 B 응집원과 a 응집소를 가지겠죠. 그럼 O형과 AB형요? O형은 응집원은 없고 a, b 응집소를 모두 가지며, AB형은 A, B 두개의 응집원을 가지나 응집소가 없어요.

수혈할 때는 같은 혈액형끼리는 피를 주고받을 수 있고, AB형은 모두에게 받을 수 있지만 같은 AB형에게만 줄 수 있고, 반면에 O형은 같은 O형에게서만 수혈을 받을 수 있고 모든 혈액형에게 수혈해줄 수 있다는 사실, 들어보셨겠죠?

이것은 위에서 얘기한 응집원과 응집소 때문이에요. 응집원은 거기에 맞는 짝의 응집소를 만나지 않으면 응고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응집소가 없는 AB형은 누구에게서나 수혈받을 수 있지만, 응집소 두개를 모두 가진 O형은 같은 O형끼리 밖에는 수혈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적혈구에는 4백 종류 이상의 항원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면역 자극이 약해 큰 문제를 일으키기 않습니다. 이중 20여개 정도는 수혈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Rh+/- 혈액형군, Lewis 혈액형군, Li 혈액형군, P 혈액형군, MNSs 혈액형군, Kell 혈액형군, Duffy 혈액형군, Kidd 혈액형군 등입니다.

어쨌든 혈액형이 다르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적혈구에 어떤 종류의 당단백질이 붙어있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두개의 당단백질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성격이나 운명이 바뀐다는 것은 어째 너무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런 종류의 분류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별자리, 혈액형, 띠, 탄생석 등으로 오늘의 운세를 보거나, 궁합을 맞춰보는 건 농담처럼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것에 너무 심취해 모든 것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경계해야지요.

분류라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들을 나름대로의 특징과 판단기준에 따라서 나눠 좀더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살아가다보면 목적을 위한 분류가 아닌, 기존에 나뉜 분류에 사실을 끼워 맞출 때가 있습니다.

혈액형 분류는 사실 인과관계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분류에 속합니다. 그런데도 의외로 이 혈액형에 집착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서 놀랐습니다. 심지어 알 만큼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대와 내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분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아니, 그 사람에게 수혈 받을 것도 아니면서 왜 혈액형이 다른 것으로 고민하지요. 혈액형은 단순히 내 적혈구 위에 존재하는 당단백질의 존재 유무일 따름입니다. 혈액을 수혈 받거나, 가계도를 그릴 때를 제외하고는 별달리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존재라,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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