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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영화가 이보다 비극적일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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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영화가 이보다 비극적일 수가...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9> '김선일씨 쇼크'로 영화계도 휘청

***'김선일씨 쇼크'로 국내 영화계도 타격받다**

영화 제작사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며칠 전만 해도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나우필름의 창립작품 <인어공주>가 개봉 전 시사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톱스타 전도연이 1인2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이 영화는(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과거 자신의 전작인 <내 마음의 풍금>에서의 캐릭터와 <접속>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멜로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해 내는 연기 저력을 과시해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2~3개월간 '졸작들의 행진'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국내 영화계를 새롭게 반등시킬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을 정도다.

<인어공주>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보다 일주일 앞서 25일에 개봉된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도 여름 극장가의 다크 호스로 집중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는 여자>는 장진 감독이 이번만큼은 수작을 만들어 냈다는 입소
문과 함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파죽지세 행보를 주춤거리게 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 여름의 국내 극장가는 일찌감치 드림웍스 제작의 <슈렉2>를 중심으로 컬럼비아 트라이스타의 <스파이더 맨2>, 워너 브라더스의 <해리 포터 –아즈카반의 죄수>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싹쓸이 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준동 사장의 기대는 다소 일찍 터뜨린 샴페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 역시 서울 등 대도시권을 제외한 지방 극장들의 흥행 상황을 조금 더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그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작품이 올 여름 한국영화의 구원 투수 역할을 해낼 것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문제는 현재의 야구장 상황이 너무나 복잡한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적절하다면, 현재 야구장에 가는 길은 잔뜩 구름이 끼어 있으며 교통상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자칫 관객들이 경기 관람 자체를 포기할 기미가 적지 않은 것이다.

매년 늘 그렇긴 했어도 올 여름 시장은 유난히 흥행에 미칠 정치사회적 변수가 연속해서 터지고 있다. 직격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테러조직에 의한 김선일씨 피살 사건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국론 분열 상황이다. 실제로 <인어공주>의 이준동 사장으로 하여금 잔뜩 기대를 모으게 했던 시점은 김씨 피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며 이 참혹한 사건 이후 <인어공주>의 예매율은 급격하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어공주>는 30일 개봉을 앞두고 약 열흘 전부터 예매에 들어 간 상태며 현재까지의 예매 상황은 국내 최다 멀티플렉스인 CGV 매출 현황만 놓고 봤을 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스파이더 맨2>의 20%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파이더 맨2>의 티켓은 2천여장이 팔려 나갔다. 예매가 2천여장이라면 개봉후 3백~4백만의 관객 동원은 무난한 상태임을 보여 준다. <인어공주>는 시사회 반응에도 불구하고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이의 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국내 정치사회 상황이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느냐고 말이다. 똑 같은 조건을 두고 어떤 영화는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떤 영화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는 건 언뜻 보면 형식논리상으로 모순이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하지만 바로 그런 점들이야말로 영화사업이 생래적으로 갖고 있는 불확실성의 문제다." <인어공주>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유니코리아의 박민정 팀장의 분석은 이렇다.

"<스파이더 맨2>나 <해리 포터>같은 영화는 인지도가 워낙 강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인어공주>나 <아는 여자>같은 류의 영화들은 후반 마케팅, 그중에서도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한 기사 노출이 흥행에 관건이 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면 영화관련 뉴스는 뒤로 밀리거나 아예 없어진다. 개봉되기 직전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사전 인지도가 높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타격이 적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개봉중이거나 개봉 준비중인 할리우드 영화들은 각 극장들 박스 오피스에서 현장 판매든 예매든 현재 불이 난 상태다.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쉽게 선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이들 블록버스터들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마케팅의 문제뿐이겠는가. 김선일씨의 사건 같은 경우는 그 어떤 영화라 해도 사건의 갖는 비극성을 담아낼 수가 없다. 한국은 메가톤급 사건이 줄을 잇는 사회다. 늘 영화와 같은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들이 매번 현실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얻어야 할 드라마틱한 설정을 이미 현실을 통해 체험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라면 아무래도 영화에 대한 흥미가 절대적으로 반감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위기감이 극대화되는 시기에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갖는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급격하게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때가 어느 땐데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극장가가 겪고 있는 일은 지난 3월 12일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이 통과됐던 때를 비교해 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같은 날 개봉됐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경우 시사회에서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데다 와이드 릴리즈 방식(대규모 배급방식)이어서 스크린수도 비교적 전국적으로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면에서는 철퇴를 맞았다. 이후 4월과 5월로 이어지는 국내 극장가는 비수기였다는 측면, 한국영화들의 기대이하의 수준을 드러냈다는 점 등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긴 했어도 전체 매출 규모가 1/3 수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을 나타냈다. 탄핵 정국에서 4.15 총선까지 이어진 사회적 위기 상황 역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기간동안 주말 이틀에 전국 극장이 동원하는 관객수는 성수기때의 80만~90만 선에서 30만~40만 선까지 수직 하락한 바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
국영화의 흥행지수는 최근 1~2년간의 성적중에서 최하위의 수치를 나타냈다.

전도연의 <인어공주>와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가 모처럼 국내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파장과 영향력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끔찍한 현실을 잊기 위해 대신 영화만 보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위기가 너무 심각한 상태다. 무엇보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고려할 때 그 같은 얘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도 영화에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를 올바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전문위원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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