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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국격(國格)'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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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국격(國格)'을 생각하자"

[데스크 칼럼] 연이은 지도층의 '국격 손상'에 개탄하며

"사람에겐 인격(人格)이 있어야 하듯, 나라에는 국격(國格)이 있어야 한다."

며칠전 한 사적 모임에서 만난 거시경제전문가이자 중국전문가인 한 선배가 한 말이다. 그는 최근 주한 중국대사관이 고압적으로 대만정부 출범식에 우리나라 여당의원들의 참석을 막고 이에 해당의원들이 순응한 사실을 예로 들며 "중국은 원래 우리나라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원들이 그런 저자세로 접근해선 안된다"면서 이른바 '국격론(國格論)을 폈다.

***피식민지시절 國格을 지킨 김산**

흔히들 "나라가 부강해야만 자주가 가능하고 국격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이라크 추가파병이 논란이 되면서 파병 찬성론자들이 자주 펴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선배는 "국격과 국력은 무관하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는 그 예로 일제강점기의 혁명가 김산을 예로 든다.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은 피식민지가 된 조국의 해방을 위해 14살 어린나이에 3.1운동에 참여했고 <독립신문> 발행에도 참여했으며 무정부주의자 시절을 거쳐 사회주의자가 되면서 중국 대장정에도 참여했고, 독자적 조선군을 조직하다가 중국공산당의 음모로 피살된 비운의 혁명가다. 김산의 풍운아적 삶은 그가 피살되기 전해인 1937년 님 웨일스를 만나 구술한 <아리랑 노래(Song of Arrirang)>에 감동적으로 기록돼 있다.

"김산의 <아리랑>을 보면, 김산이 신문기자인 님 웨일스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중국과 조선의 차이'를 설파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당시 님 웨일즈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거의 모르던 처지였다. 대국 중국의 변방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 님 웨일즈를 향해 김산은 조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봐라, 중국인들은 양손을 소매에 넣고 허리를 구부리고 구부정하게 다니질 않나. 그러나 내나라 조선에 가봐라. 모두가 허리를 곧곧이 펴고 당당히 두팔을 흔들며 활보한다. 내나라는 그런 나라다.'

님 웨일스는 김산의 이같은 당당함에 완전매료돼, 그녀의 남편 에드가 스노우가 마오저뚱의 일대기를 쓰는 동안에 그녀는 김산의 일대기 <아리랑 노래>를 쓰기에 이르른다. 암울한 일제강점 시절 김산은 나라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타국에서 당당히 '국격(國格)을 지킨 것이다."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김산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이 선배는 중국정부의 고위층 지우등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들이 13억 인구의 경제대국임을 앞세워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듯한 분위기만 풍기면, "야, 13억 인구를 가진 대국이라는 나라가 5천만도 안되는 우리나라한테는 축구만 하면 판판이 깨지냐"고 즉각 면박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 대꾸할 말을 잃은 그들은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지면서 "야, 축구 얘기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슬그머니 대화를 돌린다고 했다.

이 선배 또한 자신의 현위치에서 당당히 '국격'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연이은 '중국쇼크' '일본쇼크', 그리고 '미국쇼크'**

국격이란 이처럼 나라의 힘이 작든 크든 간에, 심지어는 나라가 피식민지가 된 상황에서도 결코 훼손되거나 상실해서는 안되는 절대가치다. 사람이 아무리 어렵게 살지라도 인격을 상실해서는 안되는듯 말이다. 특히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지금 너무나 많은 공인들의 '국격 포기'를 보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주한 중국대사관의 오만과 의원들의 순응이 그런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국민분노가 폭발하자, 중국대사관측은 곧바로 태도를 바꿔 해당의원들을 재차 불러 식사대접을 하면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쩔쩔 맸다고 전해진다. 중국측은 또 이같은 사실을 폭로한 전직 의원을 거명하며 의원들에게 "오해를 풀고 싶은데, 한번 자리를 주선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국민의 분노로 의원들이 손상시켰던 국격이 어렵게 지켜진 것이다.

'중국파문'이 발생한지 며칠도 안지난 18일 비슷한 사태가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일본파문'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서울 도심에서 주최한 자위대 창설 50주년 만찬에 여야의원 5명과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문제가 된 것은 종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각 정당에 공문을 보내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이며, 더욱이 주한 일본대사관이 전날인 17일 독도유람선 취항을 문제삼아 우리 정부에게 "독도유람선 운항허가는 일본영토 침해"라며 운항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망언을 한 직후에도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행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었다.

더없이 개탄스런 '국격 손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국격'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지금 다수 국민이 무엇보다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국격 손상' 사태는 이라크 추가파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같은 참괴함은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세력에 피납돼 '참수' 위협을 당하는 극한상황까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차질을 우려한 미국이 이 사실을 닷새간이나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극에 달하고 있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은 '국격없는 일개 동원대상'에 불과함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같은 행태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않다. 특히 의회가 경우가 그러하다. 의회는 지난해 1차 파병때와 마찬가지로, 2차 파병때도 '국격'을 크게 손상시켜왔다. 굳이 지난해 정부의 파병결정을 백지화시킨 터키국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국회의원들은 처음에는 파병반대 목소리를 높이다가 막판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양상을 되풀이했다. 1차 파병안을 통과시킨 지난 16대 국회도 그러했지만, 초선들의 대거진출로 기대를 모았던 17대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팔루자 학살-이라크 포로 강간-학대 사실이 폭로되면서 전세계가 경악하고 이라크인들의 분노가 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의 초기 파병반대파 의원들은 "이제는 과거와 달리 파병할 명분이 생겼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했다. 또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면서도 우리나라의 이라크 파병에는 찬성하는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모두가 미국의 비웃음거리일뿐이다.

이들에게는 애당초 세계인의 눈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비칠지, 이라크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애당초 관심밖인듯 비칠 정도다. 오직 미국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만이 관심사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애당초 '국격'이란 개념조차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물론 한국의 대미의존도는 각분야에서 지대하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을 죽이려 들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수십가지는 된다"고 말못할 속내를 토로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초 노대통령 취임직후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두 등급 떨어질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할 때다. 우리에게 '국격'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보다 턱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조차 한결같이 미국의 파병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며 사용했던 "NO"라는 단어는 지금 우리에게 한낱 사치품일뿐인가.

지금으로부터 67년전 중국대륙에서 김산이 외쳤던 '국격'의 당당함이 더없이 그립고, 더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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