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의 '손(手)'을 이 곳에 안치하니 제 임무의 절반은 수행한 기분입니다."
고(故) 백남준의 장조카이자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의 디렉터인 하쿠다 켄 씨가 3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백남준의 49재가 열리는 삼성동 봉은사를 찾았다.
그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쳐 들고 봉은사 경내에 들어선 물건은 백남준이 2004년 만든 작품 '내 손(my hand)'이었다.
백남준이 한국에서 구입한 인주를 오른 손바닥에 가득 묻혀 하얀 캔버스 위에 찍은 작품으로 오른편 하단에 백남준의 영문, 한문, 한글 서명이 선명하고 2004년이라는 제작연도와 둥근 도장까지 눌러 찍었다.
하쿠다 켄 씨는 백남준은 중풍으로 왼쪽 몸이 마비됐지만 오른손은 항상 자신의 영혼이 담긴 손이라고 말해 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오른손은 고인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즐겨썼던 손이며 그의 영혼이 담긴 손"이라며 "18일 열리는 49재까지 백남준의 영혼으로 여기고 그를 아꼈던 한국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이 작품을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내 손'은 봉은사 법왕루에 분향소와 함께 설치되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개방된다.
하쿠다 켄 씨는 고인이 봉은사와 특별한 인연은 없고 평소 사찰도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불교 신자였고 불교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고 전하며 "'TV 부처'나 'TV를 위한 선(禪)' 등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이 남기셨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5시30분부터 열리는 49재 행사에는 "세계적 작가였지만 엘리트주의자가 아니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일반인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퍼포먼스가 마련되며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퍼포먼스 작가들과 친구들이 내한해 공연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백남준이 서명한 마지막 작품인 '엄마'도 49재와 함께 귀국해 행사가 끝나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소개한 '엄마'는 "19세기에 한국인들이 즐겨 입었던 살구빛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름다운 오브제로 한복 치맛자락에 고인이 서명한 매우 감성적이고도 심플한 작품"이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에 봉은사 측과 49재와 퍼포먼스 준비 상황을 논의한 뒤 다시 출국, '엄마'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한 뒤 15일께 고인의 유분 및 다른 유족들과 함께 다시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그는 한국 국적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측에 15일 방한에 대한 협찬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만간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리기 때문에 일정은 없다"며 "올 9월께는 백남준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독일의 하노버에서 전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쿠다 켄씨와 차담(茶談)을 나눈 봉은사의 원혜 주지스님은 "백남준씨의 예술혼을 49재를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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