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입맛을 사로잡는 포항 구룡포 과메기의 인기와 함께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포항의 한 과메기 업체 대표의 인생스토리가 주목 받고 있다.
포항 구룡포 석병리의 한 공장, 새벽 4시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포항 구룡포 과메기 전문생산 업체인 ‘미도수산’의 이경식(55)대표다.
바쁘게 과메기 선별작업 중이라 점심때가 돼서야 이 대표와 마주 할 수 있었다. 과메기를 반찬삼아 맛난 점심을 먹은 후 그의 20년 과메기 인생스토리는 시작됐다.
프레시안 : 어떻게 과메기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이경식 :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사실 전 건설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업도 괜찮게 흘러갔고 금전적인 부분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1999년 모든 분들이 알다시피 당시 IMF가 시작되며, 저 또한 밀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쫓겨나듯 경주 안강읍에 조금만 월세방을 얻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었죠. 그러던 중 죽도시장에 아는 지인 분이 과메기 장사라도 해보라는 권유에 시장 한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난전에서 과메기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죽도시장 안에서 과메기 천막장사가 쉽지 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이경식 : 많이 힘들었죠. 보이지 않는 텃세도 있었고, 차비도 아까워 천막에서 먹고 자고 3년을 살았습니다. 겨울엔 과메기를 팔아 돈을 벌었고, 여름엔 생선배달을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2003년 포항 대진리에 작은 덕장을 얻어 과메기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미도수산’의 출발이었습니다.
프레시안 : 포항 대진리에서 시작한 ‘미도수산’의 성공담, 어떻게 흘러왔나요?
이경식 : 2003년 당시 저희 과메기가 상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때 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가난의 늪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2004년 우체국쇼핑에 정식 공급업체로 선정되며, 매출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이후 구룡포 ‘미도수산’ 과메기로 인기를 얻으며 2005년부터 까르푸와 GS마트 등 대형마트까지 납품이 이어지며 매출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후 2011년 구룡포 석병리에 제1공장을 신축하며, 현대화 시설을 갖춘 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뒤인 2017년 제1공장 바로 옆에 제2공장을 신축하며, 현재 2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과메기로 승승장구 하셨는데 그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경식 : 죽도시장에서 3년간 과메기 천막장사를 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을 속이지 않고 좋은 상품을 손님들에게 팔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단골이 늘어나고, 그분들의 신뢰를 깨기 싫어 직접 과메기 생산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또한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과메기를 생산하며, 부족한 설비와 장비들을 하나씩 갖추어 현대화하며,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맛과 좋은 원료구입, 청결 그리고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촉촉한 것과 촉촉하지 않은 것 등 과메기를 5가지로 차별화시킨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신뢰와 세심함, 인기를 얻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경식 : 현재 큰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열심히 기술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과메기로 인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하나가 있다면 ‘미도수산’ 과메기가 지금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인정을 받으며 소비자가 원하는 1등 과메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구룡포 과메기를 통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미도수산 이경식 대표.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전국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많은 분들이 더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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