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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자유화, '축복'인가 '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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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자유화, '축복'인가 '덫'인가?

이강국의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3>

***II. 금융세계화의 경제학**

***1. 자본자유화, 축복인가 덫인가?**

***경제학 따라잡기**

오늘은 좀은 딱딱한 경제학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를 포함한 경제학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제학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 딱딱한 수식들로 이루어진 모델과 복잡한 그래프, 그리고 산더미와 같은 데이터와 해석도 힘든 계량분석의 결과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하품이 나오는 것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긴 보통 사람들은 해독도 하기 힘든 그런 작업을 할 줄 안다는 것 자체가 경제학자들의 밥벌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연재에서는 복잡해 보이는 경제학의 연구들을 가능한 쉽게 말로만 소개하도록 할 것이다.

먼저 자본이동의 자유화 혹은 금융세계화의 영향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과 논쟁들을 살펴보고 다음에 무역자유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앞서 얘기했듯 세계화는 국제무역의 증가, 직접투자에 기초한 생산활동의 세계화 그리고 국제적 금융자본운동의 확대 등 여러 측면들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세계화는, 즉 상품과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경제활동이 전세계적으로 통합되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은 엄청난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고 수출을 늘려가며 맹렬한 기세로 성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등의 나라들은 IMF의 권고에 따라 충실하게 무역과 금융을 개방했지만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오히려 위기에 시달려 왔다. 개방의 효과는 이렇듯 뚜렷하지만은 않게 보이며, 경제성과에는 온갖 요인들이 경제성과에 영향을 미치므로 개방정책 자체만의 효과를 살펴보기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래도 학자들은 때로는 서로 논쟁하면서 자본자유화의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적 분석과 실증연구들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일견 생각해보면 수출과 같은 국제무역은 시장을 넓혀주고 외국자본은 국내의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개방과 자유화, 세계화는 당연히 선으로 보이며 시장이 꿈꾸는 멋진 신세계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경제학 교과서의 많은 모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또한 많은 이들은 시장의 확대와 자유로운 자본이동은 경제적 효율성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행복한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을 별다른 고민없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개방과 자유화를 중요한 요소로 하는 IMF의 구조조정 정책을 지지하는 강력한 논리였으며, 위기 이후 IMF의 충고를 충실히 들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하긴, 수출만이 경제성장을 떠받치고 국내투자를 위해 외국자본에 목을 매는 요즘의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세상이 교과서대로만 굴러간다면 세계는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되었어야 하며 세계화에 대한 그렇게 많은 논쟁과 비판 그리고 투쟁이 나타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떠들썩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시장에 대한 믿음이라는 교리(dogma)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일까? 아래에서는 최근의 경제학 논의들을 따라잡아 보자.

***자본자유화와 경제성장**

우선 자본시장의 개방과 자유화(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그리고 국제적 자본이동을 지지하는 주장들, 즉 자본자유화의 이득(benefit)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기서는 금융개방이 이를 도입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에 대해 살펴볼 것이며 주로 개도국들의 경우를 다루게 된다. 우선, 가장 간단하게 개도국의 경우 금융시장이 발전하지 못해서 국내투자의 재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므로 외국자본의 유입은 국내의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Fischer, 1998) 외국자본이 공장을 건설하는 직접투자가 가장 도움이 될 것이며 은행대출이나 포트폴리오 등의 금융투자도 생산적인 투자로 잘 이어진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많이 사서 주가가 높아지면 기업들은 투자를 더 늘이려 할 수도 있으며 소비도 진작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주가가 기업투자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불확실하며 불안정의 심화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자본시장 개방과 국제적 자본유입은 국내자본시장의 유동성을 높여서 흔히 자본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된다.(Henry, 2003)

투입되는 자본이 생산에 기여하는 한계생산성이 체감한다는 신고전파의 전통적 생산함수를 가정하면, 노동자 일인당 자본량이 작은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자본의 수익률이 더욱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방과 세계화가 이루어지면 국제적 자본은 수익률이 더 높은 개도국으로 이동할 것이며 이는 개도국 뿐 아니라 외국자본에게도 좋은 투자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전세계적인 자본이동의 확대는 전문용어로 세계자본시장의 이른바 "시점간 자원배분문제(intertemporal misalignment)"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 자본이동은 국제적 투자자에게 위험을 분산(diversify)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제공한다.(Edwards, 1995; Guitan, 1997) 독자들은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앞서 살펴보았듯 국제적인 자본이동은 개도국보다는 오히려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개도국 중에서도 몇몇 나라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신고전파의 생산함수는 너무 단순하며, 자본이동을 분석하는 데에는 성장잠재력이라든가 위험, 기술, 교육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신고전파의 생산함수에 기초한 경제성장모델에 따르면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더 빨리 성장해서 결국에는 모든 국가들의 경제적 수준이 비슷해지는 이른바 "수렴(convergence)"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불행히도 현실은 결코 이 단순한 이론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학자들은 현실에서는 여러 조건들이 비슷한 경우에만 수렴이 나타난다는 "조건부 수렴(conditional convergence)"이라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수익체증이라든가 인적자본과 기술혁신 등의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new) 혹은 내생적(endogenous) 성장이론(growth theory)들을 발명해 내어 국가간의 수렴이 나타나지 않는 슬픈 현실을 설명하고자 했다. 아무튼 대부분의 성장이론은 해외자본의 유입은 국내 투자를 증대시키고 혹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어떻게든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자본시장 개방과 효율성**

물론 단순히 투자만 증가한다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최근에는 경제성장에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 자체보다 생산성이라든가 효율성 등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된다. 실증적 논란의 여지는 크지만, 국제적 자본이동은 이러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외국기업들이 국내에 직접투자를 하는 경우 선진국 기업의 발전된 경영기법과 기술이 전파되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외국기업과의 경쟁이 과거에 보호를 받아 비효율적이었던 국내 산업의 경쟁력도 경쟁을 통해 더욱 향상될 수 있다.(Blomstrom and Kokko, 1998) 이러한 논의들은 수출을 통해 국제시장에서 활발하게 경쟁하던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인 비효율성을 보여준 수입대체공업화 국가들의 경우에 더욱 적절할 것이다. 물론 외국자본이 국내산업의 발전에는 신경쓰지 않고 이윤만 빼가려고 할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개방과 경쟁은 효율성에 훌륭한 자극이 된다.

한편 금융시장의 개방과 세계화는 개도국 금융시장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진 않지만 많은 연구들은 대출금 증가 혹은 주식시장의 발전 등으로 측정되는 금융부문의 발전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Klein and Olivei, 1999) 그리고 자본자유화는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므로 이러한 경로를 통해 결국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은행들이 개도국에 진출하면 선진적인 금융상품과 경영기법을 전파할 수 있고 외국은행들은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개도국의 금융기관들도 경쟁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이는 금융시장이 더 잘 작동하도록 만들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다. 또한 외국 금융자본의 진출은 선진적인 기준의 도입 등을 통해 금융규제와 감독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글로벌 스탠다드(glboal standard)의 도입 등으로 투명성이 높아져 기업경영이 효과적으로 감시되고 투자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주장된다. 이렇게 개방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정부가 주도하는 은행중심적인 시스템보다 더욱 우월하다는 것은 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지지했던 전가의 보도와 같은 주장이었으며, 맞든 틀리든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하다. 자본시장의 개방은 결국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체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기는, 9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이나 동아시아식의 은행중심적 시스템이 기업감시나 장기적 투자의 촉진 등에서 볼 때 미국식 시스템보다 우월하다고 주장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또 언제 이런 주장이 쑥 들어갈지는 모르겠다.

나아가, 개방으로 인한 자본이동의 가능성은 심각한 재정적자나 인플레이션 등 방만한 거시경제정책에 제한을 가해서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을 규율(discipline)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처럼 건전하지 못한 재정, 통화정책이 계속된다면 평가절하의 우려로 인해서 결국 대규모의 자본도피와 금융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즉 세계화된 자본시장은 나쁜 정부들을 벌을 받게 해서 각국 정부가 건전한 거시경제적 펀더멘털(fundamentals)을 만들도록 감시하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자유화는 정부가 이런 건전한 거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으므로 국제적 자본의 국내투자를 더욱 촉진할 수 있다고도 주장된다.

아무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굴러간다면 자본자유화와 국제적 자본이동은 전세계의 금융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해주고 투자와 생산성을 높여서 전세계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Eichengreen et al., 1998)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세계화가 진전되기 이전에는 선진국들도 강력한 자본통제를 고수하였고 개도국은 최근까지도 자본이동에 대한 상당한 제한들을 가하고 있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자본통제는 외국자본의 이용가능성을 제한하고 국내적으로 비효율성을 노정시키므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적자본이 온갖 잔머리와 첨단기술을 동원해서 통제를 회피할 것이므로 효과적일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금융세계화와 자본시장의 개방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국제기구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자 이만하면 믿음이 생기시는지?

***언제나 불완전한 금융시장**

나중에 실증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자유화와 금융세계화의 장밋빛 약속은 현실에서는 썩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천한 인간의 능력이 혹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약속 자체가 문제였던 것일까. 이제 자본자유화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이론과 주장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자본자유화를 지지하는 주장들의 가장 큰 난점은, 이들이 기초하고 있는 시장에 대한 상당한 믿음과는 다르게 금융시장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하는 이가 투자받는 이의 상태를 결코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에서는 정보가 불완전하며, 투자자들은 자주 비합리적인 행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정보가 심각하게 불완전하다면 시장에선 별별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주보고 있는 똑같은 식당도 우연히 어느 한 집에 첫손님이 들어가면 나중의 다른 손님들은 계속 그 집에만 들어갈 지도 모른다. 정보 문제가 아주 심각하면 상대방의 정보를 잘 모르는 시장참가자들은 손해를 입기 마련이며, 교과서에 잘 나오는 중고차 시장이나 보험 시장 뿐 아니라 금융시장에서도 끔찍한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중고차의 보증이나 건강보험과 관련된 건강진단 나아가 금융시장의 규제와 감독 등 온갖 노력들이 기울여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스티글리츠 등에 의해 발전되어 온 정보경제학은 금융시장에서는 정보문제로 시장금리가 균형수준보다 낮으며 신용할당(credit rationing) 등과 같은 현상이 일반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정보(asymmetric information) 문제는 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 나타난 급속한 금융혁신은 금융시장의 위험을 더욱 심화시켰다. 전세계를 몰려다니는 국제금융자본이 투자대상이 되는 개도국의 정보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위기 이전 동아시아 국가에 엄청나게 밀려들어왔던 국제금융자본과 IMF가 동아시아 경제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니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니 하며 비판한 것은 이미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위기가 터진 후였을 뿐이다. 사실 1997년 중반까지도 IMF는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찬양하였고 패닉에 휩싸이기 전까지는 국제금융자본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한때는 금융시장조차도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파마(Fama) 등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의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 시대를 주름잡았지만 최근의 경제학은 적어도 금융시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쉴러 등이 흥미롭게 지적했듯이 금융시장은 언제나 과도한 기대와 변동 그리고 온갖 비합리적인 행태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서는 월요일에는 흔히 주가가 높고 심지어 보름달이 뜨면 주가가 오르기도 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으로 과도한 믿음을 보여준다. 또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더한층의 가격상승을 기대하여 오히려 가격이 오른 증권을 사는 "모멘텀 투자(momentum investment)" 혹은 "포지티브 피드백 전략(positive feedback strategy)"을 흔히 보여주며 이는 그 증권의 가격을 더욱 상승하고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금융시장은 언제나 극단적인 비관과 과다한 낙관 사이를 위험하게 오가며 그 곳에는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도 쉽게 광적인 투기자들로 급변한다는 것은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의 "행동금융학(behavioral finance)"이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이러한 행태는 금융시장에서 버블이 심화되고 급속하게 붕괴하는 과정을 설명해주며, 이는 급속한 붐과 붕괴가 반복하여 나타나는 이른바 붐-버스트(boom-bust) 사이클로 표현된다. 이러한 불안정한 사이클은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며 금융시장을 개방한 개도국들을 과다한 자본유입에 취한 일시적 호황과 유출로 인한 심각한 위기에 시달리도록 만든다. 과음이 나쁜지는 술이 술을 마실 때는 결코 알 수 없는데, 국제금융시장도 이와 유사해서 멕시코 위기 이후 '데킬라 효과' 혹은 '부채 숙취(debt hangover)'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현실에서도 금융자유화와 개방 이후 여러 개도국에서 부분적으로 버블이나 잘못된 과잉투자로 이어진 과잉대출(overborrowing) 신드롬--이 단어는 웬지 개도국의 차입자만을 탓하는 느낌이다, 실은 대출해준 이도 책임이 있으며 이는 과잉대부(overlending)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이 빈번히 나타났다. 이는 때때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도 관련이 있었고 많은 경우 금융위기로 이어진 바 있다. 특히 국제자본은 이 과정에서 펀더멘털과는 별 관련없이 다른 이들의 행태에 영향 받아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소위 "무리짓기 행태(herd behavior)"를 보여주었으며 개도국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기도 한다.(Lux, 1995; Bikchandani and Sharil, 2001) 좀은 장기적이고 쉽게 발을 빼기 힘든 직접투자의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덜하겠지만, 특히 포트폴리오투자나 단기대출과 같은 단기적인 국제금융자본의 경우 이는 특히 심각할 것이다. 물론 통계로 잡히는 직접투자에서 그린필드 투자의 비중은 크지 않고 주로 자산이나 지분의 인수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직접투자도 그리 믿을 만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자본자유화의 비용과 위험**

자본시장의 불완전성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유화의 이득에 관한 주장은 공염불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이른바 "차선의 이론(second-best theory)" 등에 따르면 다른 모든 시장들이 완벽하지 않다면 한 시장의 자유화가 전체 경제의 효율성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국가간의 조세차이나 무역장벽이 있는 현실에서는 자본자유화의 이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국제무역의 대가 바그와티는 "자본의 신화(Capital myth)"라는 신랄한 논문에서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과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언제나 열광(mania)과 위기의 경향으로 가득차 있으므로 무역자유화의 이득과는 달리 금융자본의 개방과 자유화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Bhagwati, 1998)

나아가 국내적 금융시스템과 국제적 금융시스템이 금융개방으로 인해 불일치를 일으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경우 장기적인 시야에서 오랫동안 국가가 관리해오던 은행중심적 시스템이었는데 급속한 금융개방으로 인해 주로 단기적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시장중심적인 국제금융시장에 통합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적 자본의 행태는 동아시아의 과거의 금융시스템 하에서 투자를 지탱해 왔던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국내은행들과 무척 달랐기 때문에 위기가 촉발되었다는 재미있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Rajan and Zingales, 1998). 사실 동아시아 경제는 높은 국내저축에 기초하여 기업의 부채도 높았고 이것이 투자와 성장을 촉진하는 소위 고부채 모델(high debt model)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자본흐름이 통제되는 경우에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였지만, 자본시장이 대책 없이 열리게 되자 무척이나 위험해졌다는 것이다.(Wade and Veneroso, 1998)

그밖에도 외국자본의 국내산업 진출과 지배로 인한 국내기업의 약화라든가 금융산업 지배 등으로 인한 악영향과 비용은 개방의 이득을 능가할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재벌과 같이 독특한 소유구조로 인해 외국자본의 유입이 국내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경우 국내기업들은 이를 우려하여 투자를 줄이고 경영권 확보와 외국인 주주들을 위한 배당에만 신경을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최근 브릿지증권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외국자본이 엄청나게 높은 배당을 요구하고 심지어 무상증자나 유상감자 등의 꼼수까지 동원하여 단기적으로 투자수익을 회수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면 자본시장 개방이 국내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또한 위기 이후의 멕시코나 한국처럼 외국자본이 국내의 은행을 지배하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금융중개기능(financial intermediation function)을 약화시키는 경우는 자본자유화가 금융의 발전을 통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반박하는 듯 하다.

이 모든 주장들을 종합해 볼 때, 흔히 주장되는 자본자유화 혹은 금융세계화의 이득을 주장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자유화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Stiglitz, 2000) 특히 직접투자에 비해 포트폴리오투자와 같은 금융자본의 세계화는 상대적으로 그 위험이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오죽하면 스스로 국제자본시장의 큰 손인 소로스마저도 금융세계화의 위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국제금융시스템의 개혁을 부르짖고 있겠는가. 또한 자본자유화와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면, 자유화의 효과를 분석할 때에도 현실의 여러 맥락들과 각국의 독특한 제도적 특징들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경제학은 원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견해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며 어떤 주장도 좋은 점만 보려 하면 좋은 점만 보이고 흠을 잡기 시작하면 나쁜 점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잡힌 시각과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또 미치고 있는 자본자유화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오늘은 재미없는 경제학 이야기들만 장황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제학이 별로 재미있지는 않더라도 실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학문임에는 틀림없다. 존경하는 어느 삐딱한 경제학자는 경제학은 '밥'을 만들고 그걸 나누는 방식과 관련된 공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음 연재에서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자유화의 위험을 웅변하는 금융위기의 경험들과 이를 분석하는 모델들을 먼저 소개할 것이다. 경제학자들과 국제기구들도 현실과 이론상의 난점들을 모를 리가 없고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다 설득력 있는 주장들은 단순히 자본자유화만 맹목적으로 밀어부칠 것이 아니라 자본자유화의 성공을 위해 온갖 조건들이 필요하며 개방도 주의깊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러한 최근의 주장들과 주류의 주장과는 반대로 자본통제를 지지하는 논리들도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참고문헌

Fischer, Stanley. 1998.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and the Role of the IMF, Princeton Essays in International Finance. No. 207.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 자본자유화를 지지하는 IMF의 입장

Henry, Peter Blair. 2003.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the Cost of Capital, and Econoimc Growth. NBER working paper 9488.
: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투자를 증대시키는 자본자유화의 효과

Edwards, Sebastian. ed. 1995. Capital Controls, Exchange Rates, and Monetary Policy in the World Ec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 자본자유화를 지지하는 주류경제학의 연구들

Guitian, Manuel. 1997. Reality and the Logic of Capital Flow Liberalization. In Ries, C. P. and Sweeney, R. J. eds. Capital Controls in Emerging Economies. Westview Press.
: 자본자유화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논리들의 소개

Klein, Michael W. and Giovanni Olivei. 1999.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Financial Depth and Economic Growth. NBER Working Papers 7384
: 금융발전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자본자유화의 효과

Blomstrom, Magnus and Ari Kokko, 1998. Multinational corporations and spillovers. Journal of Economic Surveys 12
: FDI의 스필오버 효과에 대한 연구의 정리

Eichengreen, Barry J., Michael Mussa; Giovanni Dell'Ariccia. 1998. Capital account liberalization : theoretical and practical aspects. IMF occasional paper 172.
: 자본자유화와 관련된 여러 이론적 현실적 쟁점들의 분석

Lux, Thomas. 1995. Herd Behaviour, Bubbles and Crashes. The Economic Journal, 105
: 무리짓기 행위에 대한 이론적 모델

Bikchandani, Sushil and Sunil Sharma. 2001. Herd Behavior in Financial Markets. IMF staff papers 47(3).
: 개도국의 경우 더욱 심각하며 금융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는 금융시장의 무리짓기 행위

Jagdish Bhagwati, 1998. The Capital Myth: The Difference between Trade in Widgets and Dollars. Foreign Affairs. 77(3).
: 상품과는 다른 금융자본 자유화에 대한 비판

Rajan, Raghuram, G. and Luigi Zingales. 1998. Which Capitalism? Lessons from the East Asian Crisis. Journal of Applied Corporate Finance 11(3)
: 동아시아 위기를 금융시스템간의 충돌로 이해

Wade, R and Veneroso, F. 1998. The Gathering World Slump and the Battle Over Capital Controls. New Left Review, No.231
: 동아시아 고부채모델과 자본자유화의 문제점

Stiglitz, Joseph. 2000 Capital Market Liberalization, Economic Growth and Instability. World Development, 28(7).
: 경제성장과 불안정에 미치는 자본시장 자유화의 영향, 맹목적 자유화 지지를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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