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회고전의 성공, 죽은 자의 망령이 한국영화계를 살린다?**
매사에 꼼꼼해서 보고싶은 영화를 놓치는 적이 별로 없는 방송인 류시현씨도 최근엔 영화보기에서 낭패를 경험했다.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렸던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에서였다. 지난 잘 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2주간 열린 오즈 회고전에서 류씨는 오랫동안 보고싶어 했던 <동경 이야기>를 이번에도 끝내 보지 못했다. 오즈 회고전의 인터넷 예매는 늘 동이났으며 <동경 이야기>의 경우 일요일에도 아침 9시 전부터 줄을 서야 했다. 류씨는 대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꽁치의 맛>같은 다른 걸작들을 경험했다. 영화를 본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소극장 문화, 예술영화전용관 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건 분명히 국내 영화계에 있어 청신호다."
***예술영화전용관도 이제는 돈을 번다?**
류씨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즈 회고전만을 생각하면 독립영화니, 예술영화니, 저예산영화니 하는 비상업영화들도 이제 대박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퍼텍 나다의 정유정씨에 따르면 이번 회고전에는 상영 2주간 7천여명의 관객이 몰렸으며 객석점유율은 75%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다 극장의 객석수는 총 147석. 오즈 영화들은 주중엔 4회씩, 주말엔 5회씩 상영됐다. 점유율 75%는 나다의 기획전 가운데서도 유례없는 호황을 보여주는 수치다. 장 뤽 고다르나 잉그마르 베르히만, 프랑수와 오종 영화제 등 그간 인기를 모았던 나다의 기획전들도 점유율면에서는 이번보다는 못미치는 것이었다. 이번 회고전이 보여 준 긍정적인 신호 가운데 또 다른 것 하나는 관객 연령층이 폭넓어졌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번 행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 극장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노년층 관객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띄었다는 점이었다"면서 "오즈 감독의 잠재적 매니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극장가 주 소비층을 이루는 20대 관객들에게서는 "이렇게 입장권을 구하기가 어려운 영화는 처음이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파리만 날렸던 예술영화전용관이 관객들로 북적인 것은 이번 오즈 회고전이 시작은 아니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살아나는 조짐은 지난 3월에 개봉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때부터 비쳐지기 시작했다. 남한내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 과정, 그 개인적 투쟁기를 10년의 추적으로 기록한 이 전대미문의 다큐멘터리는 일반대중들로부터 쉽게 호응을 얻기 어려운 진지하고 이념적인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국내 8개 예술영화전용관에서 6주간 롱 런했다. 영화 <송환>이 모은 전국 총 관객수는 2만5천명. 영화계에서는 이 수치를 두고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블록버스터의 흥행수치인 2백50만명과 맞먹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송환>이든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작품이든 이들 영화가 갑자기 인기를 모으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작품이 좋기 때문이다. 수작이자 걸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영화만 잘 만들면 모든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일정한 수익성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반대였다. 영화제 수상작의 경우,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영화의 경우 대중적으로는 늘 실패해 왔다. 그렇다면 이번 오즈 회고전도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야 했던 것이 역설적으로는 정상이었다. 그 같은 역설이 역설이 아니게 되기까지 국내 독립영화계, 예술영화 전용관 업체들간에 일정한 시스템과 마케팅 매뉴얼이 좀더 급진전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국내 예술영화전용관들 가운데 9개 업체는 지난 2003년 '아트 플러스'라는 이름의 공동 배급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서울에서는 하이퍼텍 나다와 씨어터2.0, 뤼미에르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광주의 광주극장, 부산의 DMC부산, 목포의 제일극장, 대구의 필름통, 제주의 프리머스, 경기도 안산의 씨네마이즈 등이 이 협의체의 또다른 멤버들이다. '아트 플러스'는 국내 예술영화 제작 및 배급의 활성화를 위해 공동 마케팅과 공동 배급을 주요 과제로 하는 일정한 '영화운동 전선'을 구축해 내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그간 국내 예술영화, 저예산 독립영화 발전의 최대 취약점은 제작보다는 배급쪽에 있어 왔다.
아무리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 등 공적 기구를 통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또 제작비를 후원한다 한들, 그래서 예술영화가 어렵긴 해도 한편 한편 만들어진다 한들, 이들 영화를 상영할 공간, 곧 극장이 없는 한 이는 헛된 노력에 불과한 것이다. 끊임없이 전국 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 체인망 설치가 논의돼 온 것은 그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긴다 해도 극장 하나하나 마다 단위별로 운영되던 시스템이어서 상업영화권에 맞서는 배급력을 갖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이퍼텍 나다 등 예술영화전용관을 표방하는 극장들이 '아트 플러스'란 이름으로 하나의 공동 배급 시스템을 엮어 낸 것은 이들 극장에서 상영될 영화들이 좀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만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송환>의 성공은 '아트 플러스'와 같은 공동 배급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 조처였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었으며 '오즈 회고전' 역시 예술영화전용관들이 보다 공세적인 프로
그램 전략, 마케팅 기법이 구사돼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네큐브가 '아트 플러스'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
하지만 오즈는 오즈일 뿐이다. 몇편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비상업영화의 성공이 국내 예술영화전용관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송환>에서 '오즈'까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비상업영화들 곧 <미소>라든가 <욕망>, 일본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의 상영 등등이 성공적이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서울 강남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 씨어터2.0의 경우 비교적 주목할 만한 비상업영화들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중이든 주말이든, 낮이든 밤이든 줄기차게 매회마다 10여명 안팎의 관객들만 찾아오고 있어 영화계에서는 유명무실한 극장이라는 지적을 듣고 있다. 비단 씨어터2.0만이 그렇다면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 있다. 하이퍼텍 나다를 제외한 다른 극장들 모두가 대체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전용관 문제에 있어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나치게 일률적이고 단순한 잣대로 지원책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이퍼텍 나다와 함께 예술영화전용관 가운데 또 다른 메이저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의 김은경 이사는 최근들어 '아트 플러스'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다소 편치않은 심기를 드러낸다. 씨네큐브는 '아트 플러스'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김은경 이사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그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예술영화전용관에게 매년 4천만원에서 7천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다소 불합리한 조건이 붙어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년 3백65일 가운데 3/5 이상을 '예술영화'만을 상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극장은 또 1백46일동안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제의 적용을 받는다. 이 두가지 제약을 뚫고 가기위해서는 최소 1백일 이상 한국영화 가운데 예술영화를 찾아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상식적으로 그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가?"라고 김 이사는 반문한다. 한국영화 가운데 어떤 영화가 예술영화인가 혹은 저예산 영화인가 또는 독립영화인가, 그 구분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구별의 주체는 누구인가. 얘기는 여기서 좀더 확장시킬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예술영화인가 상업영화인가, 김기덕의 <사마리아>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저예산 예술영화인가 아니면 상업영화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예컨대 올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재개봉 상영관 가운데 씨네큐브에 관객이 가장 많이 몰리고 있다. 씨네큐브 내 또 다른 소극장인 아트큐브에서 상영중인 곽재용 감독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다른 극장에서 개봉 첫주말 80만 관객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 내의 <올드보이>에게는 크게 밀렸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사마리아> <올드보이> 등이 씨네큐브 같은 극장에서 4주간 6주간 지속적으로 상영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멀티플렉스에서 짧은 시간내에 관객을 모으고 1주 혹은 2주만에 종영되는 것이 좋은지는 영화문화와 영화사업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아트 플러스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규정된 예술영화만으로는 극장 프로그램을 짤 수가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김은경 이사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문제를 좀더 광의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점은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손쉽게 찾아지는 법이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이유는 국내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보다 폭넓게 구사하려는 것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가 '자행하는' 상업영화 중심의 와이드 릴리즈 방식(대규모 배급방식)에 맞서는 행동이라면, 멀티플렉스의 시장독점 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 모두 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영화를 두고 딱히 이러저러한 것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영화진흥위원회가 비교적 젊고 개혁적인 인사로 구성돼 있긴 해도 여전히 관료들의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씨네큐브가 상업영화관이라고? 그것 참 우스운 얘기다. 하이퍼텍 나다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관객이 찾아 오기 어려운 난해한 독립 예술영화만 걸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참 기가 막히는 얘기다. 예술영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문제를 좀더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고 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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