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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의 부작용을 넘어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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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급성장의 부작용을 넘어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좋은 도시를 위하여] 연재를 시작하며…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2019년은 나에게 '한국 지역 도시의 해'였다. 인천, 평택, 천안, 대전, 부여, 익산, 전주, 광주, 나주, 속초, 구미, 대구, 그리고 부산 등을 다녔다. 주로 지난 5월 출간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독자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고, 몇몇 도시들은 개인적으로 다니며 둘러본 곳들이다.

도시를 향한 관심은 중학교 시절부터 비롯했다. 특히 한국의 지역 도시에 관한 관심은 1980년대 한국과 처음 만난 뒤 인연이 깊어지는 만큼 점점 커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곧 막을 내릴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랫동안 외면받았던 여러 도시들의 원도심과 상대적으로 낙후한 주거 지역은 '재개발'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회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언젠가부터 '도시 재생'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큰 예산을 편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 이탈리아 밀라노의 원도심 재개발 지역. ⓒ로버트 파우저

2019년 한 해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의 여러 지역 도시를 다니면서 나는 내심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도시 재생의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나는 원하던 걸 얻었을까? 아니었다. 거꾸로 질문만 잔뜩 생겨버렸다.

첫 번째 품게 된 질문은 '도시 재생이란 과연 무엇인가'였다. 어떤 사람에게 도시 재생은 오래된 건물과 집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첨단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와 빌딩을 지어 올리는 걸 의미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역사적인 경관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곳에 사는 사람이 편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거 조건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업 공간의 세련된 유입을 통해 오래되고 낙후한 지역을 사람들이 북적이는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도시 재생일 수 있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당연히 복잡하다. 도시 재생이라는 주제를 두고 사람들마다 떠올리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이해가 맞물리고 의견이 부딪치면서 갑론을박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정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미래를 위해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는 이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되, 적어도 도시 재생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세워 둬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가 생각하는 도시 재생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확한 정의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복잡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보다는 '왜'를 고민해야 한다. 도시 재생을 둘러싼 수많은 의견들이 대두되는 복잡한 상황의 해결책이 아닌,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이다. 누구를 위한 도시 재생인가? 이 답을 찾는 것이 급선무로 여겨졌다.

자동적으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낙후하고 살기 불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주거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재개발을 둘러싼 찬반 논쟁에서 찬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주민들의 뜻을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관철하기 위한 명분으로 적극 활용한다. 오래되어 낙후한 거주 조건을 다 밀어내고 그곳에 최첨단의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일은 얼핏 좋아 보인다. 주민을 위한 도시재생이니 안 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난감하다. 그 지역에 사는 '주민만'을 위해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의 핵심 지향점은 무엇이어야 할까? 공익이다. 한 지역의 주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시민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의 주민만을 위한 도시 재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도시 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대상 지역에 살고 있는 '오늘'의 주민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동시에 '내일'의 주민,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이익이 곧 공익이다. 어디 정부만일까. 도시 재생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염두에 두는 것 또한 바로 공익이다.

이렇게 보자면 도시 재생의 철학적 기둥은 공익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또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는 공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가? 도시 재생의 필요성, 즉 도시 재생을 왜 하는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성립되어 있는가?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세계적으로는 어떨까? 도시 재생보다는 도시 확장이 아직은 더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두드러진 도시 재생의 출발점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했다. 바로 전쟁과 재난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파괴된 도시의 회복을 위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일본의 거의 모든 주요 도시는 크게 폭격을 당했고, 이들 국가는 각고의 노력으로 도시를 재생, 재건했다. 어떤 도시는 이전의 모습을 다시 복원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어떤 도시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과 옛 모습의 복원 사이의 수많은 도시 재생 사례들이 등장했다. 재난을 겪은 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복구 과정에서 이런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재난과 전쟁의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민과 시민 모두의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공감대의 손쉬운 형성 사례는 또 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장이나 철도 부지를 주거 또는 상업 공간 등을 위한 목적으로 재생하는 일이야 빈터를 활용하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손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는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서울의 경의선 숲길 역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전쟁과 재난의 피해가 아닌, 오래된 시간을 통해 낙후하고 쇠퇴한 도시마다의 원도심은 어떨까. 한 도시의 역사적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원도심은 랜드마크와는 다른 의미로 도시의 얼굴이자 대외적인 이미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재생의 중요한 대상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낙후한 원도심을 재생하는 사업은 한동안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특별한 이견 없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도시 재생의 결과를 놓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원도심 재생이 비교적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곳도 있긴 하지만, 공익보다는 일부 부동산 개발사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갔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곳도 있었다. 도시 재생을 둘러싼 여러 과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미국 사회 전체가 지켜본 셈이다. 도시 재생을 위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1950~1960년대 들어 미국에서는 기존의 슬럼화한 주거지를 전면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이 도시 재생의 주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만만치 않았다. 도시마다 이 같은 시도가 기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지역과 시민 사회의 비판이 고조했다. 도시 재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공적 자금을 투여해서 밀어붙이려던 계획은 전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른 뒤 많은 예산이 공원이나 도로 등 기본 인프라를 지원하는 쪽으로 수정 편성되었다. 정부와 민간이 의견의 충돌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 도시 재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셈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도시 재생 이전이나 이후나 그 지역에는 같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도시 재생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감소 추세이던 도시의 인구수가 회복하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이는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 C 등 대도시에서 먼저 두드러졌다. 고소득자와 고학력층이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로워진 지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이 밀려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미국에서 도시 재생을 둘러싼 여러 의견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어떤 지역의 도시 재생을 위한 사회 전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매우 오랫동안 협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미국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도시 재생의 과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들어 한국의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재생을 둘러싸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거쳐 온 수십 년의 여러 과정이 최근 몇 년 한국 도시 재생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매우 특수한 조건 때문이다. 바로 급성장이다.

유럽이나 북미, 그리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미 19세기에 인구 100만 명 넘는 도시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본격적인 도시화는 20세기 중반에 시작, 1960년대 가속화한 이래 21세기 문턱까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도시화가 진행되고, 주민과 시민이 수십 년에 걸쳐 도시를 재건하고 재생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문제에 직면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가 낳은 주택난과 교통난 등 급성장의 부작용에 대응하기에 바빴다. 국가와 시민 모두 '살고 싶은 도시', 이른바 '좋은 도시'를 돌아볼 여유를 갖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옛날이라고 할 수 없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다 사회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이전에 미처 돌아보지 못한 여러 부작용의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도시 재생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 재생은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그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전제된 뒤에야 개별 도시의 지역적 특색에 맞는 정책적 대응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과연 정부의 주도로만 이루어져야 할까? 세금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민간의 투자와 협력이 필수조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대의 형성이다. 도시 재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론, 근본적으로 모든 시민을 위한 좋은 도시, 모두가 살고 싶은 도시란 무엇일까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부터 도시 재생의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좋은 도시'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서울은 물론 한국의 여러 도시들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다. 졸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에 실린 대전과 전주, 대구에 관한 글 역시 나의 이런 오랜 관심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의 도시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느냐는 것은 내게도 매우 중요하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도시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좋은 도시란 무엇인지,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길을 함께 찾아가 보려 한다.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인 여러 논의에 이 연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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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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