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분쟁의 최종심 역할을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11일 0시(현지시간)부로 '셧다운'됐다. 상소기구의 기능이 정지된 것은 1995년 출범 이후 처음이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은 상소기구 기능정지를 몇 시간 앞둔 10일 저녁 WT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일(11일)부터 WTO는 새로운 분쟁에 대해 심리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소기구 기능 정지로 WTO 무역분쟁 해결이 끝나는 게 아니다. 회원국들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미국과의 협의를 서두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WTO 무력화를 주도한 당사국이 바로 미국이라는 점에서 협의를 통한 긍정적 해결은 쉽지 않다. 상소기구의 기능 정지는 미국이 지난 2년간 임기가 만료된 상소위원 후임 선출을 막으면서 불거졌다. 7명이 정원인 WTO 상소위원은 16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선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상소기구의 판결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상소위원 임명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WTO가 2001년에 가입한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묵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WTO는 재판부 구성에 필요한 최소 인원인 3인으로만 최종심리를 해왔다. 하지만 10일 상소위원 2인의 임기마저 종료되면서 자동적으로 상소기구의 기능이 정지된 것이다.
WTO는 현재 상소기구에 계류 중인 무역 분쟁 가운데 심리 절차가 시작된 3건 만이라도 결론을 내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의 거부로 이마저도 무산됐다.
다자간 무역협정의 근간인 WTO가 무력화되면서 보호무역주의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일각에서는 WTO는 오래 전부터 분쟁 해결이라는 제기능을 못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역 분쟁 당사국이 상소한 날로부터 60∼90일 이내 심리를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평균 심리 기간은 395일에 달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WTO의 무력화로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WTO 분쟁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22일 우리 정부가 제소 절차를 중단했으나 갈등이 재연될 경우 1심 소위원회에 회부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는 1심 판결이 불리하게 나올 경우 상소기구가 마비된 상태라 불복할 통로가 막히게 됐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본은 WTO 상소기구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혁 방안에는 반대하면서, 상소기구 재가동은 필요하다는 이중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 등에 대한 통상 전략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일본 경제산업상은 11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앞으로 새로 상소하는 안건 등 분쟁 사안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상고 기구 기능의 조기 회복을 위해 WTO 회원국 전체가 시급히 (사태 해결에) 착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