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와 내륙이 연결되는 견내량을 바라보는 첫 마을.
<프레시안>이 경남 통영시 용남면 선촌마을을 찾았다. 마을 앞바다 견내량(見乃梁)은 거제도로 귀향살이 온 한양 양반이 대들보 하나만 걸쳐도 건널 지척의 거리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한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견내량 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법정 해양보호생물인 해초 ‘잘피’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해양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잘피가 자라는 견내량 바다를 보호해온 화삼어촌계에 최근 경사가 있었다.
마을어촌계가 지난달 25일 열린 제11회 SBS 물환경대상 시상식에서 시민사회부문 반딧불이상을 수상했다.
화삼어촌계는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한 주민주도형의 해양환경보존 활동의 공을 인정받아 이번상을 수상했다. <프레시안>은 이례적인 수상을 한 화삼어촌계장을 만나기 위해 이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 입구에는 어촌계의 수상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있었다. 화삼어촌계장을 만난 곳은 환경운동연합 통영사무소로 의외의 장소였다. 어촌마을 해안도로에 둥지를 마련한 지욱철(55) 통영거제환경련 공동의장이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통영바다를 사열하듯 떠 있는 양식장 스치로폼 부자를 알루미늄 부자로 대체할 수 있는 스치로품 저감방안을 기자에게 한참을 설명했다. 이런 고민들이 미세플라스틱 문제나 해양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욱철 어촌계장 : 환경운동 잘하려고 어촌계장이 됐다. 환경련 활동가 되기 전에는 통영에서 인문학 강의를 했었다. 시민운동은 활동성이 중요하다. 통영거제환경련 특히 통영에서는 해양환경보호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어촌계장에 도전한 것 역시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프레시안 :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을 이 마을에 둔 특별한 이유는.
지욱철 어촌계장 ; 이 마을에는 법정보호종인 잘피 서식지가 있다. 해양환경보호가 필요한 시발점이 이곳이었고 지난 2014년 사무실을 마련했다.
프레시안 : 해양환경보호 활동을 위해 어촌계장을 맡아야 겠다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나?
지욱철 어촌계장 : 이곳에서 잘피 보호 운동을 시작했다. 오염도 조사와 서식면적조사, 잘피종 조사, 생물조사 등을 하다보니 해양쓰레기 문제가 심각했다. 어민이 쓰다 버린 로프나 그물들은 조류에 밀리면서 뭉쳐진다. 그것이 바다 속 곳곳을 무덤처럼 덮어버리기 때문에 잘피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서식면적이 줄어들었다. 쓰레기부터 처리해야 했다.
프레시안 : 어촌계장이 되려는 것과 해양쓰레기가 관계가 있나?
지욱철 어촌계장 : 처음에 아들과 함께 둘이서 해양쓰레기 청소에 나섰다. 그러다 통영고에 ‘1급수 사람들’ 동아리가 생겨났다. 이제는 동원고, 충렬여고 등 몇 백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변했다. 초창기 정화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1년 2년 꾸준히 활동해온 학생들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됐다. 이런 변화를 통해 확신이 생겼지만 주민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주민참여 없는 해양환경정화사업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어촌계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잡고 기르고 보호하는 어업 아니면 어촌의 미래가 없다
프레시안 : 어민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욱철 어촌계장 : 잘피 서식지 람사르 등재를 준비하면서 사이트를 만들려고 하니 어민들이 난리가 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민들이 참여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 뛰어든 선거였지만 2014년 어촌계장 선거는 1표 차이로 탈락했다. 2016년 선거에서 당선됐다.
지금 어촌은 고령화로 어업하는 사람이 적다. 어업도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지금은 또 다른 페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잡고 기르고 보호하는 어업이 아니면 어촌의 미래가 없다. 이런 페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하고 고민한 것이 새로운 어업의 동력을 필요한 어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바다는 있는데 바다에서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서 기대나 희망을 걸었다고 본다.
프레시안 : 많은 정화 활동이 일회성 또는 생색내기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욱철 어촌계장 : 과거의 정화활동이 일회성이다 보니 형식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이는데만 치우곤 했다. 쓰레기는 또 밀려든다. 어민들은 왜 우리가 이런 것 까지 치워야 하나라는 인식도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동네는 쓰레기가 거의 없다. 쓰레기 밀려오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태풍이 와도 거의 없다. 두고 볼 수 없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하게 됐다.
프레시안 :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마을에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지욱철 어촌계장 : 아이가 집을 어지럽히면 엄마가 치운다. 엄마는 습관적으로 아이가 어지럽히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법이나 수영하는 것을 몸으로 배우면 절대 잊지 않는다. 우리마을은 습관적으로 치우다 보니 이제는 어지러운 꼴을 보지 못하게 됐다.
계속 치우다 보니 불법소각이 없어지고 불법 투기가 없어졌다. 안 치우면 가슴에 돌하나 올려둔 것처럼 답답하다고 말한다. 어망에 쓰레기가 걸려있으면 전에는 버렸는데 지금은 양심에 걸린다고 한다. 어민들이 배에다 쓰레기를 싣고 들어온다. 통발어민들도 쓰레기 봉투를 받아가서 담아서 온다. 바뀔까 안 바뀔까 실험적인 시도였는데 85살 된 할머니도 바뀌었다. 우리동네에는 집 앞에 쓰레기가 없어졌다.
프레시안 : 화삼어촌계와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이 지난 2018년부터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해양정화사업을 제안해 펀딩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지욱철 어촌계장 : 초창기 해양쓰레기 청소에 참여한 학생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민들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여겼다. 어민들을 바꿀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하다 이 사업을 제안하게 됐다. 어민들을 바꾸는 계기가 된 실험적인 운동이 지금 확연한 성과로 확인되고 있다.
편딩이 성사되고 난 후 통영시가 알루미늄 땟목을 각 수협이 공동으로 크레인을 지원하는 등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60톤의 해양쓰레기를 수거했고 올해도 40톤 이상을 수거했다.
프레시안 : 이런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이 생태계와 어촌계활동에 변화로 이어졌나.
지욱철 어촌계장 : 우선 6만 제곱미터의 잘피 서식지가 2년 만에 10만 제곱미터로 확대됐다. 어류 개체수도 많이 늘었다. 잘피 숲이 산란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말 쥐치 치어는 셀 수가 없다. 볼락도 많아지고 어류의 산란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과가 눈에 띄자 주민들도 바뀌었다. 이제 화삼어촌계에서 일어난 일을 통영전역으로 확대해보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올초 ‘통영바다는 어민이 지킨다’ 는 운동이 시작됐다. 화삼어촌계의 변화가 다른 마을로, 어촌계로 확대되고 있다.
사량도에서는 환경련과 경남도가 나서 해양환경감시단을 발족했다. 사량수협의 요청에 따라 10명으로 시작됐다. 환경감시도 하고 정기적인 청소까지 나서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해양자원 보호책은 미래어업에 대한 도전
프레시안 : 행정에서도 지원에 나섰다고 했는데.
지욱철 어촌계장 : 행정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어민, 시민사회단체, 일반자원봉사단체, 경남도까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참여도 하고 통영의 바다를 살려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통영시 해양쓰레기 담당인 김정규 팀장은 직접 물속에 까지 들어가 해양쓰레기를 청소한다. 감기몸살이 걸릴 정도로 열심이다. 통영시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스치로폼 감량효과가 올해 두 배로 늘어 났다.
프레시안 : 어촌계장이 어민들을 위해 해야 하는 고유업무가 있을텐데.
지욱철 어촌계장 : 물론이다. 알루미늄 땟목도 만들고 잃어버린 면허구역도 찾고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전통 어업방식인 석방렴 복원계획을 세우고 있다. 통영을 바다의 땅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마땅한 해양자원 보호나 복원 프로그램이 없었다. 이런 것이 미래어업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잘피 서식지에 투명카약이나 수경을 사용한 생태교실운영, 오랫동안 알고 있는 전통어업지식을 활용하는 어부체험장, 이와 연계한 체류형 민박 등도 가능하다. 어민들에게 환경을 보호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보호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 된다는 것을 순천만 사례를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지욱철 어촌계장 : 육지에 쌓인 쓰레기가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든다. 선촌마을에서는 환경부에서 예산을 받아 육상에서의 쓰레기 치우는 사업도 했다. 지금은 치우는 정도가 아니라 각 집 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진짜 종류별로 분리수거하는, 자원 순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온 동네가 습관적으로 청소하는 운동이 몸에 베여있다. 쓰레기와 전쟁이다. 이런 운동이 지금 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
투쟁 대신 소통하며 합리적 대안 찾은 모델
프레시안 : 환경운동의 페러다임,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지욱철 어촌계장 : 과거 환경운동의 패러다임은 투쟁이었다. 문제는 이것으로 바뀌는 사례가 적다. 대부분 실패하더라. 그 이유는 당근책만 제시하고 결국 국가가 원하는,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국가가 예산을 쥐고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돈을 배분하고 있다.
모든 사업이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시스템만으로 변화를 이끌 수 는 없다. 가장 힘 있는 집단인 행정부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목표지점에 가장 잘 도달하려면 결국 정부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환경운동의 페러다임도 소통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런 신호탄이 된 것이 화삼어촌계 사례라고 본다. 시대적 요구인 해양쓰레기 줄이기와 미세프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접근에 마을어촌계가 그 사업에 뛰어든 결과다.
프레시안 : 화삼어촌계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가.
지욱철 어촌계장 : 시민운동은 함께 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서 갈 수 있도록 연찬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이대로 간다면 급격한 변화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 그때는 정부나 기업이 모든 힘을 합쳐도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환경운동도 인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가치철학의 정립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주민과 하는 해양쓰레기 포럼도 구상하고 있다. 멸망으로 가는 폭주기관차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 환경운동이고 사회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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