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불바다' 경고가 무성했던 2년 전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재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를 일축하듯, 북한은 이날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밝혔다.
서해발사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관련된 곳이다. 지난 5일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 재개 준비로 추정되는 활동이 포착됐다는 외신보도 이틀 뒤에 북한이 확인해 준 것이다.
앞서 미국 CNN방송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엔진시험' 재개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상업용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5일 촬영한 동창리 발사장의 위성사진에서 '엔진시험대에 전에 없던 화물 컨테이너가 보이는 등 새로운 활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위성발사대와 ICBM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쓰이는 엔진의 시험을 재개하려는 준비작업일 가능성이 있으며, 엔진시험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시험과 같은 수준의 도발행위는 아니지만 활동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변화로 미사일 시험발사의 전 단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ICBM 도발'로 미국에 '원치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 폐쇄에 동의했다"면서 이를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석달 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영구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을 목전에 두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강도를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언급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의 수준에 따라 지난 2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완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허물어지는 중대한 젼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면서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당 중앙위원회 보고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됐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험이 인공위성의 발사체나 ICBM용 고체연료 엔진의 연소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형 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이 시험 사실을 발표했고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이 북한이 그동안 유예해온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음을 암시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시험 당일 낸 성명에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 어젠다'를 위해 '시간벌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며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언급한 '국내 정치적 어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행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일 리태성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에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며 미국의 선제적 결단을 촉구한 이후 북미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외무성 담화에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2년만에 '로켓맨'이라고 부르고, '필요시 군사력 사용'을 언급하고, 다시 이튿날인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북한은 "만약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그 어떤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임의의 수준에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고 반격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성 북한 대사의 성명을 의식한 듯 즉각 반응을 보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내가 다가올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며 두 차례나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도 없는 대선 문제를 갑자기 꺼낸 것은, 김성 대사의 성명이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를 미국 대선의 성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경고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ICBM 발사나 핵실험 중단을 외교정책의 성과로 내세워 왔다. 따라서 트럼프는 북한이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ICBM이나 핵 실험을 재개할 경우 대선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거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라면서 "나와 김정은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약간의 적대감이 있다"며 "그것에 대해선 어떤 의심도 없다"고까지 말해 북한의 도발이나 긴장 고조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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