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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대사건, 너무나 쉽게 잊혀가..."

[삼보일배 1주년 토론회] "삼보일배 고행은 계속된다"

"비록 두렵고 긴장되지만, 저는 이 긴 여정을 단순한 마음으로 떠나겠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죄 없는 생명들이 죽어가고 참 평화가 몹시 절실한 때이니 더더욱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새만금 갯벌에서 10여년이 넘게 벌어지고 있는 저 소리 없는 총성과 떼죽음, 그리고 제발 전쟁을 중단해 달라는 이라크 양민들의 피 어린 호소를 함께 가슴 속 깊이 품고 이 길을 떠나겠습니다.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라 합니다. 길고 긴 여정이며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 따라 내 온 몸을 낮추어 보이지 않는 생명의 소리들, 고통 받는 그들의 소리를 듣겠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파괴되고 있는 자연, 전쟁과 온갖 폭력 속에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나의 땀 한 줌, 나의 기도 한 마디가 죽어 가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들과 공감을 이루고 나눠질 수 있도록 간절히 마음 모으겠습니다."(문규현 신부, "삼보일배를 떠나며" 중에서)

2003년 3월28일부터 5월31일까지 65일간 진행된 '온 세상의 생명, 평화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가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끝난 지 1년이 됐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만금 간척사업은 계속되고 있고,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추악하고 더러운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새만금 삼보일배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환경 연구소'가 주관하고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와 '새만금생명학회'가 주최한 "삼보일배 그 후 일년-생명과 평화의 길" 토론회가 정동 프란치스꼬 교육회관 4층 강당에서 28일 오후 열렸다.

***"삼보일배 대사건 너무나 쉽게 잊혀간다"**

이날 토론회는 65일 동안 삼보일배를 직접 수행한 성직자들을 뒷바라지한 장지영 환경운동연합 부장의 생생한 증언으로 시작됐다.

장지영 부장은 "삼보일배 대장정이 끝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생각만 하면 가슴 속 아련하게 느껴지는 뭉클함은 금방이라도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며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생명, 평화를 위해 온 몸을 던져 아스팔트 위에서 처절하게 기었던, 그 모습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자기반성과 참회의 대열에 동참하게 했던 삼보일배 대사건이 너무나 쉽게 잊혀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장지영 부장은 "(삼보일배 진행팀은) 사실상 네 분을 제물로 삼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산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며 "진행팀은 항상 네 분 성직자 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면서 안타까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그토록 힘들게 삼보일배 고행하시는 모습에 곁에서 지켜보던 순례단 진행팀원 대여섯 명이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찍지도 않는 사진기를 얼굴에 대고 가린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 달 반 넘게 삼보일배를 지켜봤지만 네 분이 이토록 힘겨워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갈 텐데, 이분들에게 큰 탈이나 나지 않을까 매우 걱정입니다."(2003년 5월13일, "삼보일배 47일째 하루소식 중에서)

장지영 부장은 "삼보일배는 ▲현대인들에게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자성의 계기를 만들었고, ▲종교계, 정치권, 시민ㆍ환경ㆍ여성ㆍ노동ㆍ농민운동계 등 종파와 사상, 지역을 초월해 연대했으며, ▲2003년 7월15일 서울행정법원의 새만금 사업 집행정지 결정, ▲삼보일배의 국제적 이슈화 등의 성과를 남겼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자기 성찰적 저항의 큰 힘을 보여준 사건"**

장지영 부장에 증언에 이어 삼보일배의 다양한 의미를 짚어보는 발표가 계속됐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는 "삼보일배는 구도자들의 단순한 종교적 사건이 아닌 다른 시위처럼 의도하는 것, 보여주는 것이 명백한 사회문화적 사건이었다"며 "다른 시위문화와 달리 저항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자기 성찰적이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향 교수는 "삼보일배는 자기 성찰적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음과 마음에 호소를 해 오히려 공격적인 주장보다도 더 큰 힘을 나타냈다"며 "세속(世俗)과 탈속(脫俗)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세속에서 보여준 문화적 충격"이라고 그 사회문화적 의미를 짚었다.

이새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삼보일배는 새만금 문제와 이라크 전쟁을 해결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른 것과 달랐다"며 "새만금 문제와 이라크 전쟁을 지탱하고 있는 권력 관계를 폭로하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 삶의 양식을 비판하고, 스스로의 삶을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이시재 교수는 "내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남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삼보일배의 정신을 사회운동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화, 정보화, 지구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운동도 자기반성적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삼보일배 1년, 성직자들은 지금...**

삼보일배 1년이 지난 지금,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삼보일배의 주인공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규현 신부는 삼보일배가 끝나자마자 7월부터 부안에서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생명평화 탁발 순례를 진행중인 수경 스님은 최근 제주도를 돌고 부산으로 들어와 전국 순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경일 교무는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과 함께 익산 지역에서 환경단체를 준비 중이고, 이희운 목사는 생명평화의 선교를 위해 20년 계획으로 인도로 떠날 계획이다.

장지영 부장의 말대로, "네 분 성직자 모두 삼보일배는 끝났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삼보일배 고행을 하고 있다." 학살당하고 고문당하는 이라크 인을, 각종 개발사업에 파괴돼 가는 생명의 가치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삼보일배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할까?

"삼보일배는 끝났으나 다시 시작입니다. 막막하게 시작했던 삼보일배 여정을 은총과 기쁨으로 채우고, 단순함과 충만함 속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눈앞의 결과로만 따지자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일, 하지만 보이지 않게 또 길게 보면 우리는 어떠면 얻을 것을 다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생명과 평화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로 작정한 여러분 덕입니다."(문규현 신부, "삼보일배는 끝났으나 이 사랑의 여정을 계속 갑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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