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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때로 한명의 영웅이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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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때로 한명의 영웅이 이끌어간다"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6> 주목되는 '박찬욱 이펙트'

***박찬욱 이펙트에 주목한다**

박찬욱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귀향 순간은 엄청난 플래시 세례와 축하 인사로 메워졌다. 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그의 영화 <올드보이>는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받았던 상 가운데 가장 큰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그의 수상이 국내 영화계내에 가져 오게 될 경제적, 산업적, 문화적인 파급 효과는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축하 멘트에 따라 붙는 미사여구만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와 폭을 파악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박찬욱 스스로도 실감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 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제 개막 직전 비경쟁 부문에서 경쟁 부문으로 올라선 것을 시작으로 내로라 하는 세계적 평론가와 감독, 배우들로부터의 찬사가 이어졌으며 그리고 결국 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영화제 11일동안 벌어진 일들은 박찬욱 본인에게도 꿈만 같은 일일 것이다.

사물을 궤뚫어 보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는 박찬욱은 영화제 개막전 자신의 영화가 ‘드라마틱하게’ 본선에 진출한 것을 두고 이렇게 촌평했다.

“칸이 드디어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껏 칸에 나간 아시아 영화의 상당수는 코스튬 드라마(Costume Drama)였다. 칸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이국적인 취향에 어울리는 영화들만을 가져갔을 뿐이다.”

그의 얘기는 듣기에 따라 매우 오만한 발언일 수 있다. 적어도 임권택 감독은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칸의 새로운 시작,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정확하게 지적한 얘기일 수 있다. 아시아 영화는 현재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한국영화가 그 중심에 서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그동안 자신들만의 ‘아시아적 가치’로 이를 재단해 왔을 뿐이다.

박찬욱의 이번 칸 수상이 갖는 진정한 의미와 혹은 그 가치는 순수하게 영화적 미학이 갖는 완결성, 완성도만으로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좋은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국제영화제는 일종의 외교전이며 전쟁이다. 세계 최대의 영화제라는 칸 영화제는 더더욱 이름값 때문에라도 그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갖가지의 정치적 책략과 술수, 음모, 그리고 수상을 위한 작전이 펼쳐진다. 칸에서의 수상은 세계적 명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산업을 확장시키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시키기 때문이다. 좁은 시각에서 보더라도 제작자나 배급업자는 이를 통해 돈을 번다. 그 누가 정치적 술수를 마다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그해의 국제 정치적 상황이 수상작 선정의 주요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황금종려상을 탄 것은 칸에 모인 수많은 영화지식인들이 부시의 전쟁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뿌리깊은 반감이 어느 정도 배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얘기는 마이클 무어와 그의 영화 <화씨 9/11>에게는 매우 부당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칸영화제의 심사위원 가운데 프랑스인은 여배우 엠마누엘 베아르 뿐이었다. 심사위원장인 퀜틴 타란티노도 이를 의식한 듯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미학적 완성도가 최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화씨 9/11>은 칸영화제 사상 최장 시간의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전쟁중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전쟁의 두 당사자 곧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이 한때 같은 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매혹적인 폭로에 그 누가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겠는가.

이렇게든 저렇게든 <올드보이>는 여러가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었던 작품이다. 적어도 수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만나거나, 줄을 서지 않았다. 당초 비경쟁으로 나가 있었던 데다 본선 진출후에도 남우주연상 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제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는 박찬욱 감독의 말은 그래서 이유가 있다. 처음에 그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와 그의 영화 <올드보이>의 제작사 쇼이스트는 로비하지 않았다. 영화제 기간내내 2백여개의 매체와 인터뷰를 해야 했던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의 한 유력 일간지 기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타락한 영화제에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영화를 들고 올 생각을 했는가?”

<올드보이>의 본선 진출 과정은 칸 국제영화제가 내부에서도 얼마만큼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경쟁작 선정의 경우 몇 명의 프로그래머가 공동으로 작업을 하되 아시아 영화, 좁게는 한국영화의 경우 조직위원장인 질 자콥이 오랜 기간 전문가 역할을 해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그의 후계자 격인 피에르 뤼시앵이 발언권을 높여 왔다. 하지만 경쟁작 목록의 최종 결정은 영화제 예술총감독, 우리 식으로는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리모가 하게 된다. 질 자콥과 피에르 뤼시앵은 각각 70대와 60대, 티에리 프리모는 40대 후반이다. 최근 칸에서는 이 양측의 대립각이 첨예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뤼시앵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을 뽑았으나, 프리모가 최종 순간에 <하류인생> 대신 <올드보이>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됐다. 세계적인 영화제에 한국 영화계의 젊은 피가 수혈됐으며 그 수혈 방식 역시 새로운 전범을 만들어 내는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영화를 칸에 보내기 위해 정부 관계자나 국내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이 특정 인물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올드보이> 수상의 경제적 가치는 실로 엄청난 수준이 될 것이다. 유럽의 많은 영화팬들은 이제 <올드보이>를 볼 것이다. <올드보이>는 이번 칸 수상을 계기로 세계 60개국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산술적으로 따져서 60개국에서 1백만명씩의 관객을 모으면 6천만명이 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찬욱이 만든 <복수는 나의 것>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해서 최민식 주연의 영화들 <파이란> <쉬리> 등등과 유지태의 영화들인 <봄날은 간다> 등등의 비디오, DVD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갈 것이다. 박찬욱과 최민식을 통해 김지운과 봉준호, 허진호 감독 등의 작품이 인기를 모으게 될 것이며 송강호 장동건 한석규 설경구 등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그 연쇄 고리들을 생각하면 경제적 측면만으로도 <올드보이>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다. 역사는 때로 한명의 영웅이 이끌어 간다.

영화도 그렇다. 한명의 감독이 이루어 낸 성과가 그 나라의 영화계를 격상시킨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이번에 바로 그 점을 해냈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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