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까지 추월 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 국민의 절대적 지지로 집권 2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3 규모인 러시아 경제를 6년뒤인 2010년까지 두배 이상으로 키우겠다며, 사실상 한국경제 따라잡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위기 적신호가 켜진 한국 경제와 달리, 고유가를 바탕으로 외환보유고를 크게 늘리고 시베리아-카스피해 유전 및 가스전 개발을 매개로 세계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러시아에게 ‘GDP 두배 키우기’란 단순한 몽상만은 아니어서 우리로서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푸틴 “2010년까지 GDP 두배 성장”**
외신들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지난 7일 집권 2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모스크바 상하 양원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을 통해 “2010년까지 GDP를 두 배로 키우겠다”며 2001~2010년에 GDP를 두배 이상으로 키우겠다던 지난해 연두 교서 연설 내용을 재차 강조해, 2기 정권의 중심축을 고도성장 정책에 맞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는 소련 해체 직후인 90년대의 혼란기, ‘기와조각과 돌을 정리하는 시기’에 이어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국가발전의 제3단계에 들어간 직후”라며 경제 성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해야만 세계경제의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며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빠른 경제 성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이어 고도성장을 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로 "러시아내 빈곤층이 전 인구의 5분의 1인 3천만명에 달하고 있다"며, 장기 대출에 의한 젊은 가정의 내집마련과 의료제도 정비를 약속했다. 그는 "빈곤은 높은 경제성장을 유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같은 고도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제 개혁과 도로, 철도망 건설 등의 인프라 정비에 나서 투자 환경을 정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은 이날 2010년까지 GDP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약속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성장률은 7.3%였고 올해 1.4분기 성장률은 8%였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10년까지 GDP를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까지 GDP를 두배로 키우기 위해선 연평균 7.2% 성장이 필요한데, 현재 추세가 유지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고유가 시대의 최대 수혜자**
푸틴의 이같은 선언은 러시아가 우리나라가 외환금융위기를 겪던 비슷한 시기에 모라토리움(지불 유예)까지 선언했던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러시아는 90년대 후반 루블화의 가치하락과 국가경제성장률 마이너스 기록이라는 급박한 위기 국면으로 인해 98년 8월 모라토리움까지 선포하게 됐으며 1천5백89억달러에 달했던 외채에 대한 이자 메우기에 급급한 처지였다.
하지만 푸틴 집권후 도래한 고유가 시대의 도래로 러시아는 급속히 무역흑자 규모를 부풀려, 지난해말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8백50억달러로 급증했고 올해내에 1천억달러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2백30억달러에 달했던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올해 유가 폭등으로 더욱더 큰 순익을 올릴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과연 2010년까지 경제규모를 두 배로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러시아 GDP의 4분의 1, 러시아 수출의 2분의 1이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값이 급락할 경우 이같은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고유가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세계 두번째 석유수출국이자 최대 원유 생산량 국가인 러시아가 고유가 유지를 위해 고도의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비OPEC 국가인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국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증산 노력을 기피함으로써 고유가를 부추키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카스피 원유로 외자 유치 노려**
러시아의 무기는 단순히 에너지 수출뿐만이 아니다. 시베리아, 카스피해에 거의 무진장으로 묻혀있는 에너지 개발을 매개로 세계자금을 급속히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대외관계와 관련해 미국이나 중국, 인도 이외에도 일본을 “러시아 최대 파트너”라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일본을 파트너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외자 유치 증대를 위한 포석인 셈이다.
아울러 현재 일본과 중국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시베리아의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대해 “기회가 무르익고 있다”고 말해, 조만간 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지금 카스피해와 시베리아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세계 주요국가들을 상대로 고도의 '등거리 외교'를 전제하고 있으며, 북핵협상 등 한반도 문제에도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 몇년 뒤 러시아 경제에 추월당할 수도**
에너지에 기반을 둔 러시아의 고성장 전략은 최근 심각한 구조적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 '이러다가 중국에 이어 러시아에게마저 추월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심어주고 있다.
2002년 기준으로 러시아의 GDP는 3천4백65억달러에 그쳐, 우리나라 GDP의 4분의 3, 미국의 30분의 1, 일본의 10분의 1,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7~8%대 고성장을 계속하면, 한국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외교에서 일정 부분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주변 4강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최소한 '강소국'의 위상을 견지하는 것이 필수다. 러시아에마저 뒤쳐진다면 한국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열강들의 주요결정 과정에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빠르면 오는 7월 예정된 노무현대통령과 푸틴 대통령간 정상회담 내용에 남다른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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