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장에는 그를 기르는 엄청난 크기의 탑이 세워져 있다. 꼭대기에는 한 손에 책을, 다른 한 손에 사자를 품고 있는 그의 동상이 자신이 재건한 리스본 시내를 흐뭇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탑의 하단에는 리스본 재건 작업을 상징하듯이 부서진 배를 바로 세우는 근육질의 장사로부터 소를 끌며 쟁기질을 하는 농부 등 민초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형상해 놓았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띈 것은 엉뚱하게도 설립 문구였다.
1934년 5월 13일 설립되었다면서 그 밑에 장군들의 이름이 이어진다. '포르투갈 대통령 안토니오 오스카 카르미오(Antonio Oscar Carmona) 장군'이란 이름이 제일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1932~68년까지 '에스타두 누부(Estato Novo, 새로운 국가)'라는 이름 아래 포르투갈을 구석구석까지 통제했던 악명 높은 독재자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onio de Oliveira Salazar)를 발탁해 수상에 앉힌 인물이다.
이어서 장군들의 이름이 줄줄이 새겨져 있다. 1934년이면, 군사쿠데타 10년 뒤에 만든 것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뒤 광화문 한 가운데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운 것과 비슷한 것이다. 포르투갈의 오랜 군사독재의 부끄럽고 어두운 흔적이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마르케스 데 폼발 동상의 뒷면 구석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광장을 떠나 리베르다르 대로를 걷다보면 놀라운 광경이 나타난다. 대리석을 잘게 잘라서 이것들을 바둑무늬 식으로 깔아, 넓은 인도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곳곳에는 이 인도에 검은 색 돌로 기하학적 문양들을 장식해 놓았다. 인도를 이렇게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다. 언제 만든 것인지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대탐험으로 넘쳐났던 포르투갈의 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지인 리베르다르 대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옛 리스본의 흔적과 낡은 리스본의 언덕길을 만나게 된다. 특히 눈에 뜨는 것은 예전의 황금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 역시 대리석을 잘게 잘라 박아서 만든 차도와 인도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 다녀 대리석이 닳아서 반들반들하다. 리베르다르 대로야 '리스본의 광화문로'나 '강남대로'라고 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런 주변부의 언덕길까지 모두 대리석으로 도로들을 만들다니, 얼마나 돈이 들었을까 상상이 안 간다.
이 도로는 그 요철이 매우 높고 깊어서 이 같은 언덕길을 걸을 때면 발목을 접질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하이힐을 신었다가는 깊은 요철에 구두굽이 끼어 꼼짝 할 수 없는 도로이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자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을 볼 수가 없었다. 리스본은 도시 자체가 언덕이 많은데다가 도로까지 이처럼 요철이 심한 대리석 바둑무늬 도로이기 때문에, 하이힐을 신기가 어려운 도시다. 궁금해서 리베르다르 대로의 쇼핑거리를 지나갈 때 구둣가게를 유심히 살펴봤다. 하이힐이 거의 없고, 가끔 하이힐이 있는 것도 그 굽 끝이 매우 넓어 요철에 끼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우리는 전차에 대한 향수와 로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전차가 이제는 사라진 옛 교통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두환 시리즈인 <장군의 아들>과 같은 영화에 나오는 서울의 전차를 보면 묘한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까지도 서울에 전차가 있었으니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전차가 다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전차에는 빨리 빨리 돌아가는 현대 문명, 그리고 현대의 교통수단과 다른, '느림의 미학'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유럽에 가면 아직도 전차를 운행하는 여러 도시들이 있지만, 리스본은 특히 '전차의 도시'이다. 거리 어디에서나 천천히 달리는 전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낡은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전차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리스본에서 특히 이색적인 것은 평지가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전차다. 리스본이 언덕의 도시인만큼 언덕을 오르는 전차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인데, 언덕을 오르는 전차 정류장에는 이를 타보기 위한 관광객 등이 긴 줄을 서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리스본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베르트랑(Bertrand) 서점이다. 1732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근 300년 운영하고 있어 기네스북에 '현존하는 서점 중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등록된 곳이다. 1732년이면 영조 초기이니, 영조 시대에 문을 연 서점이라는 뜻이다. 물론 원래 문을 열었던 서점은 1755년 지진으로 부서져 옆으로 이사를 했고 이후 몇 차례 재건축 등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영조 시대에 문을 연 서점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서점으로 가는 길은 리스본의 문화의 중심지로, 길거리에는 거리 공연을 하는 팀들이 넘쳐 난다. 베르트랑 서점은 겉은 평범한 서점이지만 출입문에 붙어 있는 기네스북의 증명서가 서점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인터넷 상거래가 지배하는 시대에 꿋꿋이 비즈니스를 이어가는 저력이 부러웠다.
포르투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이 둘이 있다. 하나가 지난 3세기 동안 포르투갈 주요 문인들과 학자들의 사랑방이었던 이 책방이다. 다른 하나는 <해리 포터> 때문에 인기 관광명소가 된 포르토의 렐로(Lello) 서점이다. 렐로 서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화려하고 이색적인 모습인 반면에, 베르트랑은 단충에 단순하고 긴 회랑형으로 되어 있다.
여러 책들이 꽂혀 있는 긴 회랑을 끝까지 따라가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탁월한 시인이었던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방'에 이르게 된다. 그는 100개가 넘는 '이명(그는 필명이란 말 대신 '다른 이름'이란 뜻의 '이명'이라고 불렀다)'을 쓰며 각 이름마다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스타일의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죽은 뒤 트렁크에서 근 3만 장에 달하는 원고가 발견돼서 그 중 간추린 원고로 출간한 것이 <불안의 서>라는 책이다. 이곳의 벽에는 페소아의 모습과 시 등이 그러져 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즐길 수 있다. 일행들과 차를 마시며 페소아의 문학에 취해보았다. 그는 말한다. "문학은 삶을 무시하면서도 용납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탈주자다
내가 태어난 뒤
그들은 나를 내 속에 가두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떠났다.
나의 영혼이 나를 찾고 있다.
산과 계곡을 건너.
나는 나의 영혼이
나를 찾지 못하기를 바란다.
-나는 탈주자다-
한국에서 리스본이 뜨게 된 데에는 텔레비전의 '먹방' 프로그램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먹방 스타들이 리스본에서 먹방 시합을 하는 프로그램이 기여했다.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엄청나게 큰 푸드 코트에서 먹방 스타들이 자기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사가지고 와서 먹는 내기를 하는 프로였다. 리스본의 먹거리 명소인 타임아웃마켓이란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거기를 찾아갔다.
건물에 들어가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광경이란! 이층에서 내려다본 식당의 전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세계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이처럼 한 공간에 아무런 칸막이 없이 하나로 열린 공간 속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골라 한꺼번에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은 본 적이 없다.
식당으로 내려가자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살펴보기 위해 직사각형 모양의 식당의 사면 벽을 따라 설치된 자그마한 식당들을 한 바퀴 도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한 바퀴 돈 뒤 각각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사서 헤어졌던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찜해 놓은 식당을 찾아가 주문을 해 음식을 받아서 다시 돌아와 모이니 근 30분이 걸렸다.
각종 해물을 넣은 해물밥에 가리비구이, 포르투갈산 굴이 모였고 화이트 와인도 준비했다. 음식을 사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었다. 다시 사방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다먹어가 곧 일어날 것 같은 손님 옆에 서 있는 눈치작전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먹을 수 있었다. 사서 고생한 식사였지만, 한번은 체험해볼 만한 이색적인 식사였다.
리스본에서 보고 싶었던 곳들은 대강 봤기 때문에 언덕길을 목적지 없이 걸어봤다. 좁은 언덕길과 낡은 집들, 그리고 낙서들을 보며 한참을 걷고 있자 왜 사람들이 리스본의 매력에 빠져드는지 이해가 됐다. 길 하나하나가 역사 그 자체고 예술 사진이다. 세계적으로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리스본의 뒷거리 역시 거리벽에 페인트로 칠한 낙서투성이다. 헌데 거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오랜 독재 기간 동안 주요 뉴스미디어와 통신수단을 국가가 통제했다. 때문에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당시 시민들은 대안적인 통신수단으로 벽에 글을 써서 소통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전통이 있는데다가 청년실업이 기승을 부리면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불만과 저항을 낙서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리스본의 매력에 취해 한참을 걷고 있는데 많은 낙서 중에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낙서가 있었다. "관광=좀비의 침공"이라는 낙서였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세계 주요 관광도시들이 관광객들이 넘쳐나면서 집값과 물가가 급등하고 자신들의 생활 세계가 무너지면서 주민들이 관광객들에게 적대적 자세를 보이거나 관광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는 많이 읽었다. 베니스의 경우 주민 등의 저항으로 급기야 2020년 여름부터 관광객들에게 관광세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관광객 비판을 직접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었다.
오는 길에 들린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도 "현상수배 : 프랑스 명소에서 프렌치 프라이(감자튀김)를 손으로 먹는 관광객을 5000 유로에 수배합니다"라고 쓴 포스터를 보고 씁쓸했는데, 여기에서는 아예 관광객들을 좀비의 침공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 계속 쳐들어오는 좀비라니!
사실 이들이 왜 관광객들에게 화를 내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각 나라, 각 도시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지만, 현재의 관광시스템이 관광산업 종사자들, 특히 소수의 관광업자들의 배만 불리고 현지 주민들은 오히려 물가 상승 등으로 고통만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 같은 현재와 같은 관광이 아니라 현지 일반 주민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고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관광에 대해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만이 관광객들이 좀비를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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