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부모는 자랑스러워하며 뿌듯해 했지만, 그 이면엔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자율고에 입학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눈물짓고 있다. 자율고의 이면이 이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언론 보도(<경향신문> 26일자 '사교육 필요 없다더니…자율고 몰입 교육 눈물 쏟는 학부모')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한 자율고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딸을 입학시킨 ㅈ씨(여)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따로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진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란다. 그 학생은 중학교 성적을 기준으로 약 300명 중 20등이 조금 넘었는데, 입학 후 첫 시험 결과는 250등 뒤였다고 한다. 고교 입학 후 첫 시험에 배우지 않은 내용들이 나왔다는 것인데, 고등학교를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고교 1학년 과정 전체가 시험 범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율고 교사와 교장의 태도가 더 걸작이다. 교사와 교장은 "진도를 따라가려면 과외를 받는 수밖에 없다"며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은 전학가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교육 당국은 자율고를 도입하면서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가량이지만 교육의 질이 높아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한 학년 과정을 한 학기 내에 끝내겠다"는 이 학교의 방침처럼, 선행 학습은 학교 측에서 내놓고 조장하는 것이다. 자율고는 3년 뒤의 명문대 입학률에 매달리며 사교육을 전제로 교과 과정을 운영한다.
그 학부모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수업료를 내지 않으니 딸을 입학시켜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율고의 교육 과정 자체는 이미 과외를 받지 않는 학생이나 선행 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고려 없이 짜여 있었다. 철저한 선행 학습에 의지해 명문대를 한두 명 더 보내는 것으로 족하는 것이다.
▲ 선행 학습은 학교 측에서 내놓고 조장하는 것이다. 자율고는 3년 뒤의 명문대 입학률에 매달리며 사교육을 전제로 교과 과정을 운영한다. ⓒ연합뉴스 |
필자의 가족도 선행 학습의 피해자 중 하나이다. 1998년 늦가을 무렵이다. 큰 아이가 한 외국어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 당시 그 외고는 소위 '명문대'로 알려진 A대학을 가는데 불리하다며 재학생들의 집단 자퇴가 잇따르고 있었다. 경쟁률도 2.5대1에 불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 아이는 지원한 외고에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장학생 후보에도 들어갔다. 엄마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과외도 학원도 거의 해본 적 없는 큰 아이가 외고에 합격한 것도 기뻤거니와, 장학생 후보가 된 것도 솔직히 기특했다.
그런데 이 학교가 딴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합격자 중 입학 성적이 상위 30퍼센트에 드는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한다고 했는데, 한 번 더 시험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11월에 합격자 발표를 하고 이듬해 2월에 시험을 봤는데, 시험 범위가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전체에서 출제된 것이다.
선행 학습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큰 아이는 모르는 문제가 잔뜩 출제된 시험에서 결국 탈락했다. 너무나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큰 아이가 입학 후부터는 성적이 떨어져 30퍼센트 수준을 유지하다 마는 것이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결국 마지막 시험인 수학능력시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냈다. 수능시험은 큰 아이가 모든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치룬 가장 '마지막 시험'이었던 것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학부모들이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학교 구성원 누구 하나도 '선행 학습'이란 이 왜곡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몸부림 치고 있다.
▲ 학교 구성원 누구 하나도 '선행 학습'이란 이 왜곡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몸부림 치고 있다. ⓒ연합뉴스 |
그 교장 선생님은 나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 분이다. 약 2년 전 그 선생님은 서울 노원구 B고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 학교는 역사가 짧은데다가 주변에 사립고가 많아 지역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그저 '변변찮은 공립고' 정도로 인식될 때였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명문 공립고로의 비상'이라는 발전 계획과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내놓으며, 교장실에 야전 침대를 갖다놓고 학교에서 거의 365일을 지냈다고 한다. 그 결과 대학 입학율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나 지병이 있었던 그 선생님은 그 과정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55세에 운명을 달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그 선생님의 사망을 '공무상 재해'로 인한 '순직'으로 보고, 조만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서울시내 교장, 교감 선생님들 중 이렇게 과로에 시달리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일부 사립고 교장과 교감은 수능 시험날과 수능 예비 소집일만을 제외하고는 360여일을 늘 학교에 출근한다. 퇴근도 밤 10시가 넘는다고 한다. 아이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고생인 것이다.
모두가 무의미한 줄은 알지만, 대한민국의 '사람 측정'의 유일한 기준인 '수능 성적'과 '대학 입시'에 '올 인'한 결과다. 현재 학교 구성원들은 고교 선택제 도입으로 인근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랴, 대학 합격률에 집착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 역시 진정한 배움으로부터 외면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여러 부문에서 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속으로 곯고 있는 교육 부문도 심상치 않다. 아마 '민심 배반'의 가장 큰 원인은 교육 문제에서 비롯됐으리라.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성 300플랜'을 내세우며 자율고 100개를 만든다고 했다. '사교육 없이 공교육으로만 대학 보낸다'는 취지로 전국에 만들고 있는 자율고로 한국 교육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정책'도 덜하지 않다.
더구나 일제고사 성적 공개 및 대학 수능 성적 공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그 폐해는 비단 교장과 학부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최대 피해자는 학생일 수밖에 없다.
어제 오늘 심장 조영술을 받는다며 병실에 누운 '리틀 이명박', '교육 소통령'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고교 선택제를 강행했다. 고교 선택제와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은 10대를 의미 없는 배움에 몰고 가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10대를 '탕진'하는 정책인 것이다.
이에 자율고 학부모는 울고, 명문고 교장은 과로사하고, 대다수 학생은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다. 고교 선택제, 자율고 정책에 대해 교육 운동 단체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잔인한 정책'의 부작용을 처절히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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