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
멜라니 사프카의 '가장 슬픈 일(The Saddest Thing)'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누군가는 사프카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흐느끼는 이 노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는 깊은 곳에 배어 있는 삶의 한 같은 것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포르투갈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파두'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바다에 나가 사라진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슬픔 같은, 처연한 삶의 한이 배어 있다.
대학 시절 우연히 '파두의 여왕'이라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즈(Amalia Rodrigues)의 노래를 들었을 때 느꼈던 온 몸의 전율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의 목소리와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에는 어린 시절 거리에서 과일을 팔며 집안 살림에 도움을 줘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자라며 겪어온 민초들의 가난과 한이 배어 있다. 특히 고음을 올라갈 때의 그의 바이브레이션에서 전해지는 한은 절제되어 있기에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그의 노래 중에서 특히 좋아하던 노래가 'Povo que lavas no rio(강가에서 빨래하고 있는 민중들)'이다.
강가에서 빨래하고
나의 관에 당신의 도끼로
조각을 하고 있는 당신 민초여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의 신성한 땅을 사줄지 모른다네.
그러나 당신의 삶을 그러지는 못한다네.
좋아하는 파두의 발생지인 리스본에 왔으니 파두 공연을 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인터넷에서 볼만하고 평가가 좋은 파두 공연을 예약해 극장에 갔다. 역시 파두의 명성답게 극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가득 차 빈자리가 없었다.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파두'라고 쓴 멋진 무대에 특이한 모양의 포르투갈 기타를 든 악사 두 명이 나타나 연주를 시작했다. 가슴이 뛰었다. 기타 연주에 이어 한 여자가수가 등장해 파두를 불렀다. 여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잘 생긴 남자가수가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가 혼성으로 파두를 부르기도 했다. 다채로운 레퍼토리에 시간이 금방 갔고 관객들의 기립박수 속에 쇼는 끝났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광과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실망스러웠다. 아말리아의 음반을 들은 때와 같은 감흥이 없었다. 오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내가 평소에 듣던 아말리아와 같은 국보급 가수들에 비해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인가?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노래의 실력이나 수준이 아니었다. 공연이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노래 속에서 파두 특유의 한도, 혼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두의 형식은 잘 배워 흉내 내고 있지만 파두의 영혼은 사라진 기분이었다. 레게의 리듬과 형식을 배워왔지만 밥 말리(Bob Marley)를 비롯한 레게의 저항정신은 사라진 김건모의 '핑계'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은 가지고 있다네.
자신의 운명을 결정 할 권리를
이 같은 결정에 있어서 편파성이란 없다네.
무기를 들고 팔에 팔을 끼우고
이 작은 투쟁을 싸워 나갈 것이라네.
왜냐 하면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이하 생략)
밥 말리의 '짐바브웨'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처럼 원래 레게는 '변혁의 노래', '한과 해방의 노래'이다. 레게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얘기로 / 난 핑계를 대고 있어 /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 입장 바꿔 생각해봐 / 니가 지금 나라면 웃을 수 있니'라는 '핑계'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핑계'가 '짐바브웨'보다 열등한 음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원래의 한과 변혁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밥 말리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파두가 변한 것이 이제 포르투갈도 민주화가 되고 먹고 살만해져서, 가난과 억압 속에서 겪었던 한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인가? 그런지도 모른다. 현대 파두에서 아말리아의 노래에 배어 있는 한을 기대하는 것은 장윤정의 트롯에서 이미자의 노래 속에 깔려있는 한과 슬픔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이 점에서 파두 공연은 마드리드에서 본 스페인의 플라밍고 공연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스페인에서 본 공연에서는 플라밍고 춤 하면 떠오르는 육감적인 젊은 여인과는 거리가 먼 50대의 중년 '아줌마 댄서'가 나왔다. 그러나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그 표정과 동작,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스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백 년의 집시의 한이 응축된 것 같은, 그러면서도 이를 초월한 것 같은 표정과 동작이었다. 반면에 파두 공연은 가슴으로, 아니 온 몸으로, 삶을 실었다기보다 목과 머리로만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망감을 보상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파두 박물관로 달려갔다. 주제 사라마구기념관을 지나 조금 가자 왼쪽 언덕 쪽으로 리스본대성당이 보이고 오른쪽에 '파두 박물관'이란 큰 간판이 붙은 아담한 이층짜리 박물관이 나타났다. 표를 사고 들어가자 이층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모아놓은 큰 벽이 보였다. 올라가 보니 유명한 파두 가수들의 공연 사진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한 방에도 이 같은 사진이 있는데 거기에는 각 가수마다 번호가 적어 있고 사진 밑에 적어 놓은 그 번호를 찾아보면 그 가수의 이름을 알 수 있게 해놓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기계에 그 번호를 누르면 그 가수의 노래가 나와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좋은 아이디어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포르투갈 사람들은 누구나 아말리아 로드리게즈를 그냥 아말리아라고 부른다)는 오른쪽 끝에 제일 크게 따로 사진을 뽑아 놓았고 번호도 제일 끝 번호인 77번이다. 역시 '파두의 여왕'다운 특별대우다. 좋아하는 몇몇 가수들의 번호를 눌러 노래를 들었다. 역시 어제 들었던 공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깊이가 있고 평소 좋아하던 파두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우리 가요 박물관을 이처럼 만들어 놓아 가수들의 번호를 누르면 대표곡들을 들을 수 있게 해놓으면 좋을 것이다.
파두는 도시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리스본의 서민동네에서 생겨났다. 원래는 플라밍고처럼 춤도 추는 방식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춤은 사라지고 지금같이 노래만 부르는 형식이 되었다. 장소도 실내, 실외, 투우장, 커피숍, 레스토랑, 홍등가 등 다양한 곳에서 불렀고 주로 고단한 도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후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면서 파두는 노동자 계급의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950년대 아말리아를 통해 세계적인 음악으로 급성장했다.
박물관은 이 같은 역사를 설명하고 희귀한 옛날 음반 등을 전시해 놓아 파두의 변천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포르투갈을 암흑으로 몰고 간 1927년 쿠데타는 파두도 여러 가지로 바꾸어 놓았다. 우선 파시스트 정권은 파두 가사에 대한 사전 검열제도를 도입했다. 검열에 의해 금지된 가사들을 진열해 놓은 방을 보고 있자 유신 시절이 생각났다. 이장희가 작곡‧작사를 하고 조용필이 부른 '불 꺼진 창'이란 노래는 "왜 불이 꺼졌느냐"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포르투갈의 검열도 마찬가지로 웃겼을 것이다. 독재 정권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내가 좋아했던 파두 곡들이 모두 파시스트들의 검열을 거쳐 통과된 것들이었다니 괜히 기분이 찜찜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이 같은 검열제도 이외에도 다양한 규제를 도입했다. 모든 예술가들은 정부에 등록해 면허증을 받게 했고 복장 등 파두 공연의 필수요건들을 규제했다. 이에 따라 무명의 민초들이 가사를 짓고 노래를 만들어 구전으로 전해지던 파두의 민중적 전통은 사라졌다. 대신 유명 시인들에게 가사를 부탁하고 전문적인 작곡가들이 곡을 써서 직업적 파두 가수가 이를 부르는 파두 제조시스템이 도입됐다. 또 민초들이 아무데서나 만나 부르던 파두의 전통은 사라지고 파두 공연은 적절한 복장과 시설을 갖춘 파두 극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국가통제의 파두의 직업화, 전문화가 생겨났다.
지하에는 독특한 모양의 포르투갈 기타를 진열해 놓았다. 포르투갈은 영국과 밀접한 교역관계를 유지해 왔다. 18세기 초 스페인의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포르투갈은 우여곡절 끝에 영국 편을 들고 메투엔(Methuen)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에는 포르투갈이 영국산 직물에 대해 면세를 해주는 대신 영국은 포르투갈산 와인에 비해 낮은 관세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등 두 나라 간의 교역에 서로 특혜를 줬다(이 조약의 의미와 이 조약이 포르투갈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도우루 계곡 : 포르투갈 와인의 젖줄> 편에서 이야기하겠다). 기타도 영국의 기타가 도입되어 19세기 말부터 독특하고 화려한 장식의 포르투갈 기타가 생겨나 파두 공연에 등장했다고 한다. 화려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포르투갈 기타의 울림통이 일반 기타처럼 원형으로 되어 있다면 한 기타는 울림통에 두 뿔이 달린 도깨비 모양으로 생겨 눈길을 끌었다.
관람을 마치고 파두 박물관을 나서려고 하자, 어디선가 아말리아의 '고독'이 들려오고 있었다.
슬픈 사랑, 누군가의 사랑
우리가 또 다른 사랑을 포기했을 때,
아냐, 나 자신을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누구도 거리에 버려지지 않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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