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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패했다. 하루속히 철군하자"

[살롱닷컴 '미국내 철군론' 심층분석] 진보-보수 모두 '철군론' 급증

미국의 권위있는 인터넷 정치평론사이트 살롱닷컴이 10일(현지시간) 장문의 기사를 통해 미국에서 최근 급속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이라크 철군여론'을 집중 소개해 주목된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눈앞에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더없이 중요한 판단근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첼 골드버그 기자는 '철수할 때인가?(Time to get out?)'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여론의 움직임에 대해 "지난 4월 이라크 주민들의 저항과 5월에 터진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면서 "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이라크 전쟁은 구제불능의 실패이며 미국과 이라크의 손실을 줄이려면 철군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 행정부가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직 철군을 요청하는 여론이 임계치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한다면 2004년 미 대선 구도와 미국의 이라크 개입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이라크 상황이 서너달만 악화되면 케리 후보는 물론 부시 대통령조차도 철군론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 이미 미-영군 일각에서 이라크 수니-시아파와 철군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은밀한 타진작업이 시작됐다는 전언도 전했다.

다음은 살롱닷컴의 기사의 전문 번역이다.

***"이라크전은 구제불능의 실패, 철군해야"**

이라크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철수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한달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이라크의 낡은 체제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뭔가 더 나은 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이라크에 주둔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득세했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좌파와 진보적 우파가 이라크 점령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해도 대부분의 주류 진영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애초 전쟁에 반대한 사람들까지도 "좀더 인내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이라크 주민들의 저항과, 5월에 터진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좌우진영 가릴 것 없이 "이라크 전쟁은 구제불능의 실패이며 미국과 이라크의 손실을 줄이려면 철군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 행정부가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철군을 요청하는 여론이 임계치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한다면 2004년 미 대선 구도와 미국의 이라크 개입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 듀크대의 피터 피버 정치학 교수는 "좌우 진영의 변방에 있던 목소리가 중심 무대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면서 "이라크를 떠나라는 요구가 체제의 중앙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피버 교수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 안보정책 및 무기군축 책임자로 일했다.

철군에 대한 논란이 더 이상 금기가 되지 않으면서 비판론자들은 이라크 침략이 아무리 어리석은 짓이었어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벌인 일을 마무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점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4월30일자에 "미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상당히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예전에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런 주장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깨뜨리고 그걸 샀다. 중간에 달아날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떠나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에 머무는 것은 희망없는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 이라크에 대해 내가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 거론되고 있는 모든 계획들이 부적절하다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고 말한다.

지난 4월7일 상원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로버트 버드 의원이 철군을 주장했다. 그는 "엄중한 현실은 바그다드 함락 1주년을 맞아 미국은 이라크에 추가병력을 보내는 궁리를 해서는 안되고 철수 전략을 짜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버드 의원의 입장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매우 의미 있는 발언이었다. 피버 교수는 "버드 의원은 언제나 철군을 주장하는 데 앞장 섰다"면서 "그는 조기철수를 주장해온 오랜 경력이 있으며 현역 하원의원과는 상당히 격이 다른 현역 상원의원이라는 점에서 그 신뢰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는 실패했다. 빨리 빠져나와야 대가 최소화"**

1주일 뒤 상원외교관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피터 갤브레이스 박사는 뉴욕서평에 발표한 '이라크에서 탈출하기'라는 논문에서 "미국인들은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우파 진영에서는 윌리엄 E.오돔 육군중장이 이라크의 상황에 희망이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국장을 지내고 보수적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에서 국가안보연구 책임자를 지냈다.

지난주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실패했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냐다. 빨리 나오면 더 적게, 늦게 나오면 더 많아진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지난 수요일 그는 <나이트라인>에서 "이 시점에서 실패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철수하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오늘 이라크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유엔에 가서 유엔군을 승인하는 유엔결의안이 나오도록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동맹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면 이 과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유엔군에 책임을 넘기고 6개월 정도에 걸쳐 미군을 철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누가 단계적 철수를 촉구하는 용감한 최초의 언론인이 될 것인가"**

(극우인) 패트릭 부캐넌이 발행하는 잡지 <미국 보수주의>는 더 단호한 입장이다. 최신호 커버스토리를 쓴 크리스토퍼 레인은 "이라크 주둔군을 국제화하건 병력을 증강하건 효과가 없을 것"이라면서 "철군은 그저 몇가지 나쁜 대안 중 차악의 선택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좌파의 반전 주장과 구별이 가지 않는 한 기사에서도 레인은 "이제 미국의 정치인이라면 국민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면서, 그 질문은 "미국이 이라크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라크 주둔미군에게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 실책 때문에 죽어갈 마지막 병사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썼다.

<에디터 & 퍼블리셔>의 편집장 그레그 미첼은 "언제 이라크 철수를 촉구할 메이저 신문이 나올 것인가"라는 최근 칼럼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독자들에게 물었다. 이 잡지의 독자 중에는 언론 산업 종사자가 많다.

그는 "누가 병력 증파가 아니라 단계적 철수를 촉구하는 최초의 언론인이 될 것인가"라면서 그는 "베트남 전쟁 때는 용기있는 한 목소리(1968년 2월27일 월터 크롱카이트를 기억하라)가 다른 사람을 고취시켰다"고 덧붙였다.

***좌우진영, '이라크에서 벗어나기' 본격 모색**

물론, 같은 이라크 철군을 주장하더라도 사람마다 갖는 의미가 다르다.

레인 같은 사람들은 "즉각적인 철수와 함께 이라크 주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일하건 투쟁하건 맡기자"고 한다. 다니엘 파이프스를 포함한 몇몇 우익 인사들은 한 때 개혁된 이라크가 낙후된 중동 전역에 민주적 가치를 전파할 것이라는 구상에 찬성했으나 지금은 미 행정부가 이라크를 관리할 수 있는 유능한 친미 인사를 임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갤브레이스 같은 진보인사는 이라크 주민들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를 위해 그는 3개 국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시아파,수니파, 쿠르드족이 느슨한 연합형태로 각기 독립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내 견해는 이라크는 단일 국가로 재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6일 <네이션>지는 '이라크에서 벗어나기'라는 지상포럼을 실었다. 이 포럼에는 놈 촘스키, 하워드 진 좌파 저명인사를 비롯해 레이 클로즈 전 CIA 사우디 아라비아 지부 책임자,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스쿨 공공 및 국제문제 학장 앤-마리 슬로터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이라크 주권 이양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라크 재건에 다른 국가를 포함시킬 것을 약속했는데, 포럼 참석자들의 계획도 한 가지 중대한 차이점을 빼고는 여러 점에서 케리 후보의 제안과 비슷했다.

케리 후보는 유엔 참여를 요청하면서도 이라크 안정화를 위해 미군 병력을 증파할 것을 제안했다. 반면 <네이션>의 필자들은 대체로 미군이 실패한 점령군의 원죄가 없는 다른 나라들에 이라크를 맡길 것을 주장했다.

****키슬링 "미군 퇴각하며 유능한 이라크 해방자 지명해야"**

<네이션>에 실린 계획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난 2월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항의하면서 사임한 외교관 존 브래디 키슬링의 제안이다. 그는 이라크로부터 미군을 축출하는 영광을 누릴 이라크인을 지명해 스스로 패퇴하는 모습을 연출하라고 제안했다.

키슬링은 "의기양양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아마드 찰라비에게 이러한 임무를 맡길 수 없을 것이지만 퇴각하는 미군은 이라크 해방자를 지명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우리는 유능한 이라크 애국자를 선택해 그의 경쟁자에게는 피를 흘리게 하는 대신 그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아무리 철수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한다고 해도 희생자와 혼란이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압도적으로 많은 이라크 주민들이 미군을 축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주변에 몰려들 것이며 선거를 통해 그가 거둔 비교적 출혈이 적은 승리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해법은 각론에서 차이점을 보이지만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더 꼬여갈 것이라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 레인은 "이제 미 행정부가 취할 선택은 예전에 텔레비전에 나온 오일 필터 선전과 비슷하다"면서 "미국인들은 지금 대가를 치르던지 나중에 더 비싼 대가를 치르던지 선택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군 비판론자, "철수는 빈 라덴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

비판자들은 "철군 옹호론자들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패배할 때 치를 대가에 대해 적절한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철수 반대론자인) 피버 교수는 "이라크와 관련된 비용을 정직하게 다룬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베트남 전쟁 때도 빠져나왔지만 우리(미국)는 냉전의 승리자였다'는 식의 엉성한 논의만 많은데, 이런 식의 분석은 매우 일천하고 몰역사적"이라고 꼬집었다.

피버 교수는 이라크 주둔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미국이'종이 호랑이'가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중도 철수의 비용은 (저항세력에게) '미국의 군사력을 패배시킬 필요 없이 단지 삶이 불쾌해질 정도로 충분한 숫자의 미국인을 죽이고 미국인의 의지를 꺾으면 되는 일'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은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항해 쳐놓은 대전략에 깔린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피버 교수는 또 이라크에서 미국이 철수하게 되면 전쟁 전보다 더 이라크가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한 국가를 테러리스트 조직에 장악된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중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라크의 미래에 대한 일부 주장은 이라크를 그런 식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미군을 본국으로 철수시키자는 것은 이라크에 주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버 교수는 "이라크가 내전으로 가게 되면 미군은 철군 압력에 놓이게 될 것"이라면서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그 사태에 비껴서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철수론자들은 우리가 이라크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유고슬라비아가 국제경제에서 사라지는 것과 페르시안 걸프가 국제경제에서 사라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철수론자들, "부시, '제2의 존슨'이 되려 하나"**

그러나 철수론자들은 "상황이 나아질 전망도 없는데 미국인들에게 나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진보적 싱크탱크인 케이토 연구소에서 외교정책 및 안보연구 책임자인 테드 갤런 카펜터는 신속한 철수를 주장하면서 "미국이 더 오래 머물수록 상황이 더 나아진다고 믿을 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철수론자들은 (피버 교슈의) '종이 호랑이'나 '테러리스트 온상' 같은 주장을 모두 일축했다. 이라크에서 철수할 때보다 이라크에 머물면 테러리스트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카펜터는 "철수를 하면 우리의 신뢰에 손상이 갈 것이지만, 명백히 실패한 임무 때문에 수천명의 병사들을 희생시킨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비틀거리며 이라크를 빠져나오는 것보다는 손실이 더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존슨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1964말~1965년초 같은 선택에 직면했다. 베트남에 더 깊이 개입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일정부분 실패한 것을 깨달은 임무를 끝낼 것인가. 존슨 대통령은 전자를 택했다. 그의 선택으로 외교정책의 실패는 완전한 패배로 이어졌다. 이라크에 계속 주둔하려 한다면 마찬가지 꼴을 당할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카펜터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면서 "생각들이 바뀌고 있으며 적어도 이라크 문제가 흐르는 방향에 대해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오돔 예비역 장군 같은 사람들이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을 보라.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골수 보수파이자 매파였는데, 이같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라크전 지지여론 급속히 소멸**

이에 대해 (철수반대론자인) 피버 교수도 "미국인들의 정서가 바뀌면 이라크에서의 패배 가능성이 갑자기 가시화되면서 전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최근 미국여론 동향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철수론자들은 희망이 없고 우리가 지고 있으며 손실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면서 "이러한 태도는 여론의 지지에 매우 유해하고 특히 희생자들에 민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피버 교수는 "우리가 이기고 있거나 이길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희생자가 나오는 것이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희생자가 나오는 것에 매우 민감해진다"고 덧붙였다.

이미 전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재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난 5월2~4일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이라크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CBS 뉴스와 <뉴욕타임즈>가 지난 4월23~27일 실시한 공동여론조사는 이 질문을 다른 식으로 물었다. "이라크 전쟁의 결과가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초래된 미국인의 생명손실과 기타 비용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5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부시-케리 아직까지는 철군에 반대하고 있으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 커지면서 존 케리 후보와 조지 부시 대통령 모두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지금까지는 이들 모두 철수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자신의 직을 걸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전쟁지도자로서의 이미지 외에는 별다른 정치적 자산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어 마치 일종의 마술 주문처럼 "끝까지 버티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케리 후보도 국가안보 문제에 유약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미군 증파를 요구하고 6월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주권 이양도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철수요구가 점증하게 되면, 이들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더라고 입장을 바꿀 것으로 예상한다.

'안정되고 버젓한 이라크 건설'이라는 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는 않겠지만 수용가능한 결과에 대한 기대치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감소하면서 점점 낮춰질 것이다.

전쟁에 대한 회의가 부시 대통령의 인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최근 갤럽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다. NBC 뉴스과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실시한 공동여론조사에서는 49%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자격이 없다고 답한 반면 45%만이 재선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여론전문조사기관 조그비 인터내셔널의 존 조그비 사장도 "이번 대선은 존 케리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거둔 수치는 현직 대통령에게는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케리 후보의 지지도가 크게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몇 개월간 부시가 처한 곤경을 고려할 때 그의 수치가 더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에머리대에서 투표행위 연구를 하고 있는 정치학 교수 앨런 애브러모위츠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라크 상황 악화에 따른 진짜 충격은 몇 개월 사이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면서 "본격적인 영향이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는 "통상적으로 볼 때 외교정책이 실패했다고 정말로 극적이지 않는 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극적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면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이란 인질 사태 대책으로 불리한 영향을 받을 때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 인질 사태 초기에는 카터의 지지도가 올라갔으며 그에게 큰 문제가 되기 전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3,4개월간 이라크에서부터 부정적인 뉴스가 계속 나오고 폭력 사태가 더 벌어지고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이 계속된다면 부시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그비, "케리, 부시와 차별화된 정책 압박받을 것"**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라크 사태가 빠르게 악화되면 케리 후보에게도 위험이 제기된다.

지난 4월30일 케리 후보는 웨스트민스터 대에서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구상에 대해 연설했다. 연설에서 케리 후보는 단기간 미군을 증파하는 한편, 나토 회원국과 다른 동맹국들에게 추가 파병 등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당장의 목표는 이라크 재건 사업을 국제화하고 더 많은 외국군과 위험을 분담하고 우리 미군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임무를 성공시키고 미국의 점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케리 후보의 주장은 미군 증파를 요청하는 취지는 좋을지 모르지만 이라크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화 문제'만 해도 다른 나라들이 혼란스러운 이라크에 자국의 군대를 보내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행가능한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피버 교수는 "케리 후보라고 부시의 현 정책과 뚜렷이 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케리가 민주당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매우 현명하고 또 다른 훌륭한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면서 "부시 진영이 정말 잘못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정권만 잡으면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이 믿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시가 일으킨 전쟁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에 선거판도가 좌우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 후보의 지지율에 변화가 없다면 케리에게 안전한 전략 대신 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라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조그비 사장은 "어느 시점에서 케리는 전선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면서 "'이 전쟁은 잘못됐으며 나는 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해야 그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조그비 사장은 "그것이 현재의 입장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는 그렇게 해야 한다"면서 "그곳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가 그쪽으로 변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전쟁에 대한 회의가 계속 일어난다면 케리 후보는 부시 지지자들로부터도 표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NBC 공동여론조사는 공화당원 가운데 무려 40%가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 케리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그비 사장은 케리 후보의 현재 입장을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그비에 따르면 케리 후보는 지난 4월30일 연설에서 15개월 전부터 나온 해법을 제시했다. 케리는 "동맹국들을 참여시켜야 하며 유엔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금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이려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있다. 유엔이 개입하도록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케리 '이라크 탈출전략' 발언 시작해야**

그러나 조그비 사장은 "케리 후보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하고 철수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가 '이제 빠집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케리를 '무척추 동물'에 비유하고 있는 백악관의 공격수들은 케리가 이라크에 대한 입장을 바꾸려한다면 그에게 화살을 퍼부을 것이다.

조그비는 "그렇다면 케리의 메시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라면서 "그것은 부시가 '참담한 실패자'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 실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랍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모든 동맹국들과 함께 다리를 건설해 주어야 한다. 쉬운 해결책은 없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조그비의 처방은 케리가 탈출전략에 대한 발언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전쟁 종식에 대한 비전을 비록 희미한 것일지라도 제시하라는 것이다.

케리가 이라크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지름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면, 그는 (제3 대선 후보인) 네이더 후보에게 틈을 열어주게 된다. 그는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케리 지지표를 끌어가 중상을 입은 부시의 리더십에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 후보다.

그러나 많은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은 네이더가 지난 대선 때보다 훨씬 좋지 않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

진보적 시민단체 '미국의 미래운동'의 공동대표인 로버트 보로사지는 "네이더후보는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시가 제기하는 위협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선 결과를 보면 네이더가 4년전보다 훨씬 좋지 못한 득표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 안보분석가, "철군 협상 은밀히 진행중"**

보로사지는 케리에게 조그비와 매우 흡사한 조언을 한다. 그는 "(한국전쟁때의) 아이젠하워식으로 갈등을 종식시키고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자세로 향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민들은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점령 상태를 끝낼 방법을 찾고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점령을 지속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파괴를 부르지 않고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보로사지는 "실제 계획은 나중에 나올 수 있다"면서 "아이젠하워의 공약도 단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것뿐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합의조건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결국 대통령 후보 중 이라크에 머물기 원하는 사람은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제인스 자문그룹의 안보 분석가 찰스 헤이먼은 미국과 영국이 함께 신속한 철수계획을 마련하려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헤이먼은 "내일 아침 철군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 정부가 유엔과 일부 저항그룹 양쪽, 수니아파 시아파 양쪽 모두에게 은밀한 대화통로를 열어두고 있다는 일부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훨씬 이른 철수도 고려하는 일종의 정치적 협정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헤이먼은 "누구도 지금같은 상황을 바라고 있지 않다"면서 "만일 우리가 대화로서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전투로 활로를 찾으려는 것보다 훨씬 좋을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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