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시네마서비스의 코아비타숑, 그 동상이몽의 내막
---국내 영화산업의 지형 변화에 대한 분석 보고서**
국내 최대 메이저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가 손을 잡았다. 1년전만 해도 양쪽의 결합은 영화계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일이다. 유럽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좌우 정파의 ‘코아비타숑’에 버금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계에서 이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영화산업의 크나큰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결과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CJ엔터테인먼트든 시네마서비스든 현재 모두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양측이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월 중순에 있었던 주총에서 이미 합의는 했지만 시네마서비스가 플레너스 그룹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는 시기는 이달 말, 그러니까 아직 서류상, 법적으로 시간이 남았다는 얘기다.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아직 한달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한달이라면 영화판은 몇번이라도 뒤집어진다.”
이번 빅 딜을 주도했던 강우석 감독의 이 말은 그러나, 엄살처럼 느껴진다. CJ와 시네마서비스는 이미 매일 밤 동침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동거는 시작한 셈이기 때문이다. 강우석 감독과 그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가 플레너스에서 나오기 위해서 필요했던 8백억원 가운데 2백억원은 이미 CJ측에서 매우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출해 줄 것을 약속한 상태다.
8백억원은 플레너스 그룹에서 시네마서비스가 독립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지분비용이었다. 그중 4백억원 본래 강우석 감독의 몫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부족했던 자본은 약 4백억원. 이 비어있는 4백억원을 누가 대줄 것인 가를 두고 지난 4~5개월간 영화계에서는 물밑에서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졌다.
당초엔 또 다른 메이저급 배급사인 쇼박스가 이 돈을 들고 가 시네마서비스와 손을 잡을 것이 유력시 됐었다. 당시까지 알려지기에는 시네마서비스를 끌어 들이기 위해 쇼박스는 모든 것을 ‘발가벗고’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쇼박스로서는 그게 그리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머지 지분 4백억원어치를 매입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됐다면 쇼박스-시네마서비스는 일종의 합병이 되는 셈이었다.
플레너스 그룹이 너무 싫었던 강우석 감독으로서도 쇼박스쪽으로 거의 몸이 기운 상태였다. 단지 그의 최종까지의 고민은 이미 한번 결혼을 해 본 몸, 또 다시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는데 “영화사업은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당시 그는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
쇼박스의 허를 찌른 것은 CJ엔터테인먼트였다. CJ는 시네마서비스측에 합병이든 뭐든 다 필요없다며 2백억원을 ‘그냥’ 꿔주겠다고 나섰다. 마침 나머지 2백억원은 한때 강우석 감독과 로커스 홀딩스란 이름으로 한 배를 탔던 뉴 브릿지 캐피탈의 박병무 대표측에서 해결 방안이 나왔던 차였다. 어쨌든 CJ의 이같은 제안은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윤 추구가 최종 목적인 대기업에서 별다른 조건없이 물경 2백억원을 선뜻 꿔주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석은 여러 갈래로 나왔다. 하지만 답은 대체적으로 한가지 방향으로 모아졌다. CJ로 봤을 때 자칫 시네마서비스가 쇼박스로 인수되거나 혹은 합병이 된다면 국내 영화시장은 쇼박스-시네마서비스의 거대 독점 구조로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이 높고 또 그렇게 되면 CJ는 지금까지의 시장 지배력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여자가 딴 남자 집에 얹혀 사는 걸 보느니 필요이상의 돈이 들더라도 독립시키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CJ는 생각했던 셈이다.
자, 이렇게 해서 현재 국내 영화시장내 메이저 배급사간의 기묘한 동거, 그 지배구조의 황금분할이 이루어지게 됐다. 시네마서비스는 국내 최고, 최대의 제작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는 투자배급사이며 이 회사를 어느 쪽에서 파트너로 끌어 들이느냐에 따라 영화산업은 큰 파고를 넘나들 것이었다. 컨텐츠 파워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한 영화판에서는 늘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셈인데 CJ는 시네마서비스와의 느슨한 전략적 연대를 통해 ‘쇼박스-시네마서비스’라는 거대 독점의 출현을 막았으며 쇼박스는 쇼박스대로 언제나 ‘올 인’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서 CJ와 시네마서비스간의 ‘밀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CJ는 2백억원을 거의 무상으로 빌려주는 대신 시네마서비스 측으로부터 내년도에 세편 정도의 영화에 한해서 배급권을 양도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네마서비스는 시네마서비스대로 어느 한쪽으로도 회사를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적인 시장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번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마치 우리당-한나라당의 관계에서 민주노동당이 키 롤(key role)을 맡게 된 것처럼 시네마서비스가 쇼박스와 CJ 사이에서 줄타기에 성공한 경우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것이아먈로 자본주의의 '자동 시장조절 능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 메이저의 이 같은 기묘한 시장 분할이 항구적이거나 장기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시네마서비스가 단순한 전문제작사가 아니라 투자와 배급, 영화세트사업, 극장 유통까지를 포괄하는 스튜디오 개념의 메이저 회사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은 단지 돈 4백억원이 필요할 뿐이다. 시네마서비스는 늘 CJ와 쇼박스를 위협하는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노종윤 제작이사의 분석에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CJ와 쇼박스 역시 영화사업을 뛰어넘는 좀더 ‘그랜드한’ 종합엔터테인먼트 사업이라는 평원을 정복하기 위해 혈전을 준비중이다. CJ는 특히 최근 시네마서비스를 뺀 플레너스 그룹을 통째로 인수하며 게임사업에 뛰어들었으며 기존의 케이블TV사업을 확장해 ‘CJ미디어’를 설립,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초대형 매체 비즈니스를 기획중이다. 쇼박스는 이미 케이블사업체인 ‘온 미디어’를 통해 매체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데다 CJ의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에 맞서 메가박스의 전국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영화산업의 지형도는 누가, 어떻게 전국 통일을 이루어 낼 것인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누가, 어떻게 전국통일을 막아내는가에 달려있다. 지금이 딱 그 형국이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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