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vs. 스크린쿼터, 1%의 진실을 찾아서**
5월3일자 <뉴스위크> 국제판 기사 '블록버스터의 나라 – 어떻게 서울이 할리우드를 물리치며 한국을 아시아의 스타로 만들었나'가 국내의 각 매체로부터 관심을 끈지 채 이틀도 안돼, 이번엔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측이 발표한 조사자료가 도하 각 신문의 문화면 헤드를 장식했다. 그 기사는'스크린쿼터 열흘 줄어들면 한국영화 시장 3천84억 축소'란 제목을 갖고 있다.
두가지 기사를 잇따라 접해야만 했던 일반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 한국영화는현재 욱일승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쿼터라는 '보호무역정책'이 없으면 일순간에 무너질 만큼 허약한 구조인가. 스크린쿼터 관련 기사는 <뉴스위크> 기사에 대한 일종의 물타기인가. 그렇다면 <뉴스위크>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를 폐지 혹은 축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만들어 낸 고도의 전략인가. 우리는 이 두 기사중 어느 것을 취하고 또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가 아니면 둘 모두에서 부분적 진실을 파악해내야 하는가.
<뉴스위크> 국제판 기사는 한국영화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장미빛 환상으로 채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의 눈, 특히 할리우드 영화가 거의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시장점유율이 자신들의 것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경이로운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뉴스위크>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가 1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아 가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배 이상 앞지르고 있는 점이나 ▲<엽기적인 그녀> <장화, 홍련> <올드 보이> 등 이제는 오히려 할리우드가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고 있는 점 ▲일부 한국 스타들이 아시아권에서 한류 열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점 등을 내세워 한국영화산업의 강세를 보도하고 있다.
물론 <뉴스위크> 기사는 이와 함께 한국영화산업 내부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서도 비교적 비중있게 언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뉴스위크>는 ▲한국영화 10편중 7편이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고 ▲마케팅 비용이 평균 12억원선을 넘고 있으며 ▲극장에서의 영화 회전율이 낮은 점, 곧 개봉 성적이 나쁜 작품의 경우 지나치게 빨리 간판을 내려버리는 점 등을 꼽고 있다.
그렇다면 <뉴스위크> 기사는 나름대로 작금의 한국영화산업 현황에 대해 균형있는 시각을 갖추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사를 국내 영화관계자들 어떻게 읽어 내고 있으며 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뉴스위크> 기사는 요즘의 한국영화에 대해 여러가지 사실을 나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서 잘되는 점도 있고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도 있는데 그중에서 잘되는 점을 좀더 부각시켜서 이를 기사화한 셈이다. 따라서 <뉴스위크> 기사는 한국영화계에 관한 한 새롭고 특별한 코멘트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미국의 주요 시사지가 언급했다해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더욱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내 영화관계자들, 특히 영화저널들은 <뉴스위크>의 이번 기사를 근거로 한국영화산업이 바야흐로 확고한 세계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확대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위크> 기사에서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후자 곧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언급 부분이다. 한국영화가 지난 4~5년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한국영화가 이제 무소불위의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진실'을 확보한 것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국내 영화산업의 현황을 나타내는 객석점유율, 관객수치 등에 있어 그 수치가 만들어 내는 환상과 미몽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뉴스위크> 기사가 후반부에 언급한 대로 한국영화의 자국내 시장점유율은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 53%대를 기록하고 있을지언정 그것의 수익률은 10편중 3편, 곧 30%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객석점유율은 50%를 훌쩍 넘고 있는데 수익률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익금의 배분구조, 혹은 그 수익을 창출해 내는 시스템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영화산업 내부에는 국내 경제의 여타 부문과 마찬가지로 '파레토의 20 vs. 80 법칙'이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화계 빈곤층이 나날이 확산 일로에 있어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가져간 2천5백만에 이르는 관객은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아홉살 인생>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마지막 늑대> <라이어> 등의 영화가 확보해야 할 손익분기점의 관객들이었다. 2편의 영화의 성공을 위해 8편의 영화가 희생됐으며 이는 결국 산업 발전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도 심각한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는 현재 이같은 문제의 해결을 제쳐 두고 '스크린쿼터 제도의 사수'라는 정치적 아젠다만을 지나치게 앞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쿼터 제도로 인해 한국영화가 시장 내에서의 자기 몫을 마련하게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 그것이야말로 영화문화적 자주성을 지켜내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제도가 올바로 활용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한 분석 작업과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지난 4~5년간 자국 시장을 지켜내는 마지노선으로서의 객석점유율 40%선을 지켜내는 데 있어 효율적인 장치로 사용됐지만 그것의 열매가 20%의 영화들에게만 돌아가게 했다는 점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때다. 이는 곧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거대자본의 독과점 행태를 막기 위해 내부의 독점기업을 키워낸 결과다.
실제로 국내 영화시장은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거대 메이저 3사와 이들이 운영하는 프리머스와 CGV,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가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제도의 본래적 목적은 영화문화의 다양성에 있는 것이지 몇몇 한국 영화사의 독점적인 위치를 길러냄으로써 시장점유율만을 높이는 것은 아니었다.
강경론자들이 운영하는 스크린쿼터 제도의 병폐는 한국영화가 외국영화와 공존,공생해 가는 합리적인 틀조차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니 레인즈 같은 영국의 영화평론가는 이를 두고 "쿼터제가 내쇼널리즘을 넘어서서 쇼비니즘을 향해 가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을 정도다. 토니 레인즈의 이 같은 지적은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전체 시장의 99%를 차지하면서 일본영화를 포함해 프랑스 등 유럽영화, 캐나다, 호주, 동남아 영화들이 국내에서는 설 땅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같은 할리우드 영화 혹은 한국영화라 하더라도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비상업적인 장르의 영화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예컨대 같은 할리우드 영화라 하더라도 4월 둘째주에 개봉된 <투스카니의 태양>같은 경우는 서울 강남의 한 극장에서 새벽 4시반과 아침 10시반 등 두차례의 상영에 그치고 있으며, 필립 노이스 감독의 <콰이어트 어메리카>같은 경우 서울 청계천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B급 상영관에서 개봉 첫날 첫회만 상영하고 간판을 내렸을 정도다. 짐 셰리단 감독의 걸작 드라마 <인 아메리카>는 국내의 경우 개봉도 못하고 곧장 DVD로 출시됐다.
그렇다면 이제 국내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은 한국영화산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맞출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산업의 다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중심축을 옮겨 와야 한다.
<뉴스위크>의 화려한 수사학의 기사든 스크린쿼터연대의 보고서를 기초로 한 강경한 어조의 기사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두 기사 모두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해 일부의 진실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한국영화는 현재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발전의 해법은 우리영화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와 유럽, 일본 등 아시아, 제3세계권 영화가 공존하는 황금분할의 시장구조를 구축하는 데서 찾아질 것이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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