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에 1개(One) 이상의 협약을 비준하는 것을 ILO 187개 회원국 모두(All)의 목표로 삼자."
ILO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벌이고 있는 ‘One for All’ 캠페인의 내용이다. 아직 올해가 다 가진 않았지만, ILO는 회원국들의 비준 내용을 매일같이 업데이트 하고 있다. 11월 17일 현재 43개의 회원국에서 66개의 협약 및 프로토콜(보충협약)을 비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내용 바로가기 ☞ : 클릭)
어떤 나라에서 어떤 협약 비준했나
ILO의 100주년 캠페인 페이지에서 올해 새롭게 협약 또는 보충협약(프로토콜)을 비준한 43개 국가 명단과 비준 내용들을 표로 정리해 보았다. 말라위, 코트디부아르, 마다가스카르, 베트남, 모로코, 수단, 모리타니, 우즈베키스탄, 캐나다, 러시아, 몰타 등 11개국에서 2개 이상의 협약을 비준해 ‘One for All'을 넘어 'Multi for All' 반열에 올라섰다.
이들 국가의 명단을 보는 순간 “민주주의와 인권은 경제력이나 경제규모와 무관하다”는 명제가 진실임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유럽연합(EU)에 속한 국가는 영국·독일·벨기에·아일랜드 정도가 보일 뿐이다. (영국은 아직 브렉시트 완료 전이므로 일단 EU에 포함시킴)
천만 촛불의 힘으로 부정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치러진 2년 전 대선에서, 4개의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고 약속한 한국 정부의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한 개의 협약도 비준하지 못한 ‘약속 위반’ 대열에 서기 일보 직전이다. 3개의 협약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긴 했으나, ILO 협약정신을 짓밟는 무시무시한 개악안을 함께 던져놓은 상태이다.
최근 만들어진 협약들 비준 중인 ILO 회원국들
43개국이 비준한 협약의 대부분이 세자리수, 즉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협약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90호 협약이 올해 100주년 총회에서 의결된 것이니 가장 최신 협약은 189호(가사노동에 관한 협약, 2011년 제정)이며 스웨덴과 마다가스카르가 비준을 완료했다.
숫자를 표기하지 않은 ‘어선원 노동 협약(Maritime Labour Convention)’은 2006년에 제정된 것으로 이미 100여 개 국가가 비준을 완료했으며 올해 수단, 세네갈, 아이슬란드,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5개 국가가 추가로 비준했다. 그런데 이들 협약보다 더 최근에 만들어진 협약이 있다.
비준 내용에서 두 자릿수로 자주 나타나는 ‘29호 프로토콜’이 그것이다. 강제노동 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 29호 협약은 193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최근 자본주의 추세를 반영하여 급속히 증가하는 노동력 이주와 결부된 강제노동을 예방하기 위한 내용으로 29호 협약에 대한 프로토콜, 즉 ‘보충협약’의 성격으로 201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올해 만들어진 190호 협약을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협약인 29호 프로토콜을 지난 11개월 사이에 비준한 국가는 무려 14개에 달한다 : 말라위, 마다가스카르, 우즈베키스탄, 캐나다, 러시아, 몰타, 오스트리아, 벨기에, 레소토, 수리남, 짐바브웨, 스리랑카, 독일, 아일랜드
오래된 협약을 비준한 국가로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특히 베트남은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결사의 자유 98호 협약을 비롯해 3개의 협약을 비준했다. ILO가 매일 업데이트 하고 있는 캠페인에 동참한 나라들의 현황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와 중남미, 유라시아 대륙이 푸르게 되어 있는 반면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한반도는 캠페인에 불참하고 있다.
베트남 외에는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한 국가가 왜 이렇게 없냐고? 그건 ILO의 189개 회원국들 중에서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한 나라가 150~160개국으로 대부분 비준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 협약 2개를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 수는 (베트남의 협약 비준으로) 이제 20개 밑으로 떨어졌으며, 그 불명예스러운 명단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다.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
프로토콜(보충협약)이 만들어진 ILO 29호 협약은 한국 현대사와도 중요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시기 조선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노동자들을 강제노역으로 동원했던 사건에 대해 ILO가 강제노동을 금지한 29호 협약 위반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도 선언하지 못한 일본의 위법행위를 ILO가 29호 협약 위반으로 본 것.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이 사안과 관련해 매년 ILO 전문가위원회의 감시·감독을 받고 있다. 1930년에 만들어진 이 협약을 일본 정부는 즉시 비준했기 때문에, 위안부·강제징용 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그 시기에 이 협약은 일본에서 효력을 발생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ILO 전문가위원회는 매년 “보상(배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제대로 된 보상(배상)을 실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사실상의 경제전쟁으로 규정하고 규탄해온 문재인 정부, 그런데 ILO가 일본의 위반행위라 판단한 근거인 29호 협약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전범국가인 일본도 비준한 협약, 그래서 일본은 매년 ILO의 감시·감독을 받고 있는데, 정작 피해국가라 할 한국 정부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서 일본을 비난한다. 이거야말로 내로남불 아닌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 당장 결사의 자유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금지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해야 한다. 29호 협약을 비준해야만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 당당해질 수 있다. 지금은 한국이 29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ILO에 일본을 제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줬다 뺏는 문재인 정부, 개악법안 철회해야
올해 하나 이상의 협약을 비준한 43개 국가들은, 문재인 정부처럼 협약 비준 문제를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넣었을까? 그렇지 않다. 협약 비준은 사회적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협약을 지키려는 ILO 회원국의 당연한 의무이다. 촛불 시민과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문재인 정부는 ILO 미비준 핵심협약 4개를 조건 없이 비준하면 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항상 ‘반(反)개혁’이 따라붙는다. 뭔가 개혁하는 것처럼 눈속임수를 쓸 뿐, 이내 개혁조치를 무력화시킬 반동적 조치를 밀어붙인다.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 대선 때 내놓았던 개혁 약속들 모두 곧바로 이어진 반(反)개혁 조치로 무력화된다. 문재인 정부는 ILO 협약 비준도 똑같이 다루고 있다.(아래 표)
이제 ILO 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 남았다. 다른 회원국들은 29호 협약의 보충협약을 비준하고 있는데 한국은 본 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은 벌써 플랫폼 노동에게 결사의 자유를 부여하고 단체교섭·단체행동의 권리 보장에 착수했는데, 한국은 자본가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ILO의 권고사항인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도 미루고 있다.
왜 부끄러움은 항상 우리들의 것이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부끄러움을 알기는 할까?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개악법안을 철회할 것인지, 반대로 부끄러움은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노동개악을 밀어붙일 것인지, 생방송으로 펼쳐지는 100분 쇼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인사이드 경제>도 모종의 준비를 해야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