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국방 책임자들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둘러싸고 현저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특히 지소미아 종료일(23일)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 협정 연장을 요구하는 미국의 노골적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로 득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5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를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연합방위태세를 굳건하게 유지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정 장관이 밝혔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은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는 미국 측 입장이 반영된 내용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지소미아 유지 부분이 오늘 본 회의의 주제는 아니었다"면서도 "에스퍼 장관과 개인적인 의견 교환은 있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종료일까지) 아직 기간이 남아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일본과 한국 정부에서 좋은 방향으로 협의가 잘 진행돼서 앞으로 지소미아가 지속, 유지되면 좋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지기 전인 6월까지는 지소미아 유지 방침이 분명했지만 "그 이후 일본이 '안보상황의 문제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했다. 그 이후 우리 정부에서도 많은 심사숙고 끝에 종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들이 서로 같이 진행돼야 된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가 병행돼야 지소미아를 연장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한 발언이다. 정 장관은 "에스퍼 장관과 미국이 일본에 적극적인 노력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지소미아가 종료된 뒤의 상황에 대해선 "현시점에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반면 에스퍼 장관은 "지소미아가 만료되거나 한일 관계가 계속 갈등하고 경색될 경우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며 "공통의 위협과 도전과제에 같이 대응하고 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이보다 더 강력한 이유가 있을까 싶다"고 종료 철회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는 전시상황을 생각했을 때, 한미일 간에 효과적으로, 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중요하다"면서 "지소미아가 갱신이 안 되고 만기가 되도록 그냥 방치를 하게 된다면 (한미일 정보공유의) 효율성이 약화되는 면이 있다. 한일 양측에 이견들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특히 "(한미 동맹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안정, 번영·증진을 위해 계속해서 양국이 어깨를 나란히 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동맹의 범위를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가 중국 견제 목적으로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범주로까지 확장시켜야한다는 요구로, 지소미아 연장을 이와 결부시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양국 장관은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해 나가면서 우주, 사이버,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도 지속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한미의 국방협력은 평화유지 활동, 인도적 지원 및 재난구호, 대해적 작전 등 기타 역내 안보구상 노력을 포함해서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에 더해서 우주, 사이버 영역에서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전장에서 동맹군이 결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응 능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한미동맹이 동북아와 범세계적 영역에서 공동 국가안보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에스퍼 장관과 함께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부자 나라, 방위비 분담금 더 내라"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도 양국의 입장 차이는 평행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50억 달러로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시키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강경한 입장이 드러나고 있어 우리 정부의 방어전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불투명하다.
정경두 장관은 "에스퍼 장관과 나는 SMA가 한미연합 방위능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이 공평하고 상호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제10차 방위비 분담특별조치협정 만료 이전에 제11차 협상이 타결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하되, 공평하고 합리적 수준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액이 결정돼야 한다는 한국 측 입장을 강조한 발언이다.
반면 에스퍼 장관은 "한미의 연합방어능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서도 논의를 했다"고 밝히며 "연말까지 대한민국의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11차 SMA를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증액'에 방점을 뒀다.
그는 "한미 동맹은 매우 강력한 동맹이며 대한민국은 부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조금 더 부담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조금 더 부담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특히 "GDP 비율로 따졌을 때, 미국은 우방들을 지키기 위해 국방비로 상당 부분을 지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이 지출한 분담금의 90%는 한국에 그대로 다시 들어오는 예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분담금 용처와 관련해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직원 9200명의 급여 중 약 75%가 분담금에서 나온다. 한국 납세자의 돈으로 한국인의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또 "미국측은 방위비와 관련해서 우방국과 동맹국들에게 기여도를 조금 더 높이라는 쪽으로 얘기해왔다"며 "같은 메시지를 유럽과 다른 국가들에게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경두 장관은 "기본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들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성격 규정을 하며 "한미동맹이 보다 발전되도록 공평하고 합리적인 분담금이 책정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 서로 공감하고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양측의 생각들을 잘 일치시켜서 한미가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협상을 진행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정 장관은 또 미 측에서 내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에 47억 달러를 요구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양측이 전반적으로 현안을 가지고 논의하고 있는 과정이어서 명확하게 확인해 드릴 수가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한미 연합공중훈련 명칭 변경해 축소 조정 검토
한미 연합훈련은 명칭을 변경해 축소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한미 연합훈련 문제와 관련해 "현재까지는 비질런트에이스 훈련에 대해서 조정된 방식으로, 명칭도 변경을 하면서 계획을 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방과 군사당국은 외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문제가 없도록 훈련을 조정해서 해나가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에스퍼 장관도 한미 연합훈련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히며 "훈련의 목적은 외교적인 노력을 지원하고 더 강화시키고 증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한미 군사당국의 이 같은 입장은 미국 측이 12월로 제안한 북미 실무협상 성사를 위해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밖에 전시작전권 전환과 관련해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 8월에 시행한 미래연합사의 기본운용능력(IOC) 검증결과를 한미가 공동으로 승인했으며, 이를 토대로 2020년에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을 추진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우리 군 주도의 미래 연합방위체제 구축에 필요한 우리 군의 핵심 방위역량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면서 전작권 전환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군 사령관으로, 조건에 기초로 한 전작권 전환을 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고, 계속 긴밀한 협조를 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퍼 장관은 "미국의 지속 능력을 제공하면서 대한민국이 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국의 보완 능력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에스퍼 장관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협조를 강화하자는 취지의 논의를 했다"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집행하는 것과 관련해 변함없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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