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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저항했느냐'가 강간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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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저항했느냐'가 강간죄의 기준?

[토론회] 성폭력 판단기준,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2019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 성별 권력관계에 기반한 성차별적·성불평등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는 여기에 응답해 다수의 법안을 내놓았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안은 모두 계류 중이다. 20대 국회를 종료를 사실상 한 달 여 앞두고 여성계는 '강간죄 구성요건 변경'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지난 3월 1차 의견서를 시작으로 지난 11일 5차 의견서를 제출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성폭력 판단기준,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209개 시민단체 연대체인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를 비롯해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과 정의당 여성본부 및 심상정·이정미 정의당 의원,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주최했다.

'얼마나 저항했느냐'가 기준이 되는 현행 강간죄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폭행과 협박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 여성계는 "강간죄의 기준이 얼마나 심한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고있다"며 "피해자들은 법적·사회적으로 폭행과 협박의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을 요구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가짜 피해자'로 의심과 비난을 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170개 성폭력 상담소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24만 1343건의 성폭력 상담이 이루어졌다. 전체 성폭력 피해자들 중 몇 퍼센트가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하고 수사기관에 고소하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대검찰청의 2018년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성폭력은 3만 2824건이 고소됐고 검찰은 이중 46%만 기소했다. 2018년 통계도 비슷하다. 총 4만 432건의 성폭력범죄 중 35.6%인 1만 4404건만 기소됐다. 불기소 이유 중 가장 많은 것이 '혐의 없음'이었다.

다시말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로 해석해야 타당하지만 대부분은 '꽃뱀' 논리로 이어진다. 이런 성폭력 범죄의 협소한 정의는 피해자에 대한 불신으로, 무고의 '역고소'로 이어져 피해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다는 것이 여성계의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경환 변호사는 "폭행과 협박을 좁게 해석하는 현행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며 "'피해자의 저항 여부 및 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이는 처벌의 공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강간 통념을 유지·강화한다"며 "'비동의' 요건을 신설하고 폭행·협박 외에도 '위력'을 추가하는 등의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3일 국회에서 강간죄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조성은)

'동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제 흐름에도 맞아

강간죄의 기준을 '동의 여부'로 변경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UN은 이미 2010년 강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의 행사'가 아닌 '명백하고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UN 여성지위향상국(CEDAW) 위원회는 지난해 3월, 한국 정부에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EU도 2011년 이스탄불협약을 통해 비동의적인 성적 행위를 강간 등의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 서명한 회원국들은 강간죄 등 형법을 개정할 의무를 가지며 현재 유럽 46개 회원국이 서명하고 34개국이 비준했다.

유럽인권재판소 역시 "유럽인권협약에 의해 국가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모든 성적 행위를 기소하고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폭행 및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강간을 판단해야 하는 점을 확인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영미법 체계와 대륙법 체계가 다르지만 강간의 기준을 ‘동의’에 두는 흐름은 같이 한다"며 "성평등 지수가 높은 스웨덴의 경우 2017년과 2018년 법개정을 통해 성범죄의 기본 구성 요건을 '자발적으로 성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로 변경했다"고 덧붙였다.

오승이 인천지방법원 판사는 "성폭력의 기본개념을 다시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학계와 판례는 성폭력이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런 관점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법익을 고려할 때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지난 9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변경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열기 앞서 4차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프레시안(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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