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라크에서는 '제2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미군의 공세와 저항세력의 무장투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 국방부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계획대로 추진키로 방침을 정한 상태이다. 19일에는 지난 9일 현지조사를 위해 이라크로 출국했던 정부합동조사단이 조사를 마치고 귀국했다. 현지 치안정세와 주민여론, 숙영지 여건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의 결론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지역은 안전하다. 주민들은 한국군 파병을 염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사단 보고대로, 한국군 자이툰 분대가 파병될 대상지역인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아는 외형상 치안이 안전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쿠르드 자치지역이 다른 지역과 달리 평온을 누리고 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쿠르드 지역은 한마디로 '태풍의 눈'이다. 지금 태풍의 눈이 쿠르드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거센 바람이 쿠르드를 둘러싼 지역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두 개의 이라크' 정책의 미래, 아무도 예측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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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자이툰 부대가 파병될 지역인 술라이마니아와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지역내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2월 8일 통과된 과도헌법에 의해 지정된 쿠르드 자치지역은 술라이마니아와 아르빌과 도훅, 그리고 키르쿠크 일부 지역이다.
쿠르드 지역은 지난 91년부터 '준자치지역'으로 설정된 이래, 그리고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공때도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반면, 이 지역은 내부적으로 민족간 갈등이 첨예한 지역이다.
또한 쿠르드 자치 문제가 과도헌법에서 보다 진일보하게 인정되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에 의한 ‘봉합’이지, 그간 역사적으로 빚어온 갈등 문제가 해소되거나 이라크인들 스스로에 의해 타협과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분쟁의 씨앗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이라크내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무함마드 타키 알 모다레시는 지난달 과도헌법이 통과됐을 때 이 연방제를 두고 “대다수 이라크 국민의 뜻에 반하는 이 연방제는 강력한 시민저항을 가져올 것”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과도헌법이 이미 기정사실화한 두 개의 이라크가 어떻게 현실로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쿠르드 문제, 이라크 내부 문제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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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자치 문제는 또 주변 아랍국가 간의 여러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어, 단순히 이라크 국내 문제를 넘어선다. 즉 여러 번 한국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지적되었듯, 쿠르드 지역에서 주둔하게 되는 한국군은 미국과 이라크의 주변국과 이라크 국내정세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종속변수'인 것이다.
그래서 지난 2일 국방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주둔지가 쿠르드 지역으로 결정됨으로써 자칫 대아랍권과의 갈등요소 및 민족 분쟁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남대연 국방부 대변인의 “한국은 정치외교적으로 중립을 유지할 것이며 내정 불간섭을 바탕으로 할 것”이라는 궁색한 대답은 자못 안쓰럽다.
쿠르드 지역 문제는 앞으로 이라크가 어떤 그림으로 사회통합과 자치, 민주화가 이뤄질지 관건이 되는 지점이다. 이 지역은 이번 이라크 전쟁의 피해도 거의 겪지 않았다. 피해의 흔적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전쟁 후에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지금도 이라크 전역에서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미군과의 충돌이 없는 유일한 곳이다.
쿠르드 지역과 남쪽 아랍권 지역은 지리적으로 햄닌 산맥으로 인해 나뉘어진다. 바그다드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햄닌 산맥을 넘어서면 정반대의 지역으로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다. 한쪽은 지금 미군과 생명을 걸고 전쟁을 치루고 있고, 한쪽은 미군에 의해 오랜 숙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쿠르드 민족은 미군과 외국군대를 통해 이라크로부터 완전한 자치와 독립을 보장받기를 원하지만, 쿠르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이라크 전역은 미 점령정책과 대대적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이라크인, 美분할통치정책 반대"-"한국, 전체 이라크와의 관계 중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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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쿠르드 지역을 통한 미국의 분할통치 정책에 대해 '이라크를 두 개로 쪼개는 행위'로 보고 있다.
지난 2일 국방부의 한국군 파병예상지 발표 이틀 전인 3월 31일, 바그다드대 정치과학부 학장 리야드 아지드 하드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아르빌에서 열렸던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동맹(PUK)의 이라크 재건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이날 그는 한국군이 파병될 지역에 대해 "3천6백명이 모두 쿠르드 지역에만 주둔하지 말고 몇 곳으로 흩어져 주둔하는 것이 어떠냐"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그는 또 "이라크는 두 개의 나라로 나누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쿠르드 지역 한 곳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것이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곱씹어 보면 아주 뼈있는 충고를 넌지시 한 것이다. 쿠르드 지역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라, 그의 웃음은 한국군이 명심해야 할 무거운 충고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는 한국군이 쿠르드 지역에 주둔하여 정치외교적으로 중립을 유지한다는 건 어설픈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효과를 제기하며 국익론과 경제적 이익, 아랍권 친화정책 등의 파병 명분이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거둘지 의문이다.
국익과 경제적 이익을 거론하며 파병이 결정된 후 지금까지 실제적으로 얻을 국익에 대해선 한번도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된 적이 없다. 그리고 미군이 제시한 두 지역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 국방부로서 어떤 파병원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쿠르드, 아랍권내 제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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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지역의 자치와 독립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간 역사를 통해 보면, 쿠르드 민족의 문제는 너무도 중요하다. 쿠르드 민족이 겪은 억압과 핍박의 역사를 통해 이라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앞으로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쿠르드 지역이 핵심적인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 독립과 자치 중요성과 함께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현재 쿠르드 지역 자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다. 미국은 쿠르드 지역을 거점으로 이라크 점령 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쿠르드를 발판으로 아랍권 국가들의 관계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앞으로 쿠르드 지역이 어떤 폭풍우 속에 휩싸일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쿠르드 지역이 아랍권 내의 '제2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이며,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과연 한국군이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할지, 진지하게 되물어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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