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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잃어버린 그림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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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잃어버린 그림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9〉

샘처럼 솟아나서 조수처럼 일렁거린다.
손은 춤사위 발은 춤도둠
후미진 구석마다 바람이 일면
보이지 않던 그대는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시나
옥중 춘향이 임 만난 듯
얼굴만 봐도 웃음 절로 난다
손만 잡아도 눈물 글썽
살아온 세월이 설움처럼 밀려오네
해방으로 자유로 평화로
3·1 만세굿처럼 님 부르며 춤추던
하얗게 부서진 이름이여
파도처럼 눈부신 영혼들이여

그리워서 그렸던 그림 '해방의 십자가'를
찾습니다.

그림은 본래 그리워하는 것을 그리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다'는 그리운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도 되고
손으로 무엇인가 그리는 것도 됩니다.
원래 한 뜻에서 왔습니다.
'그리다'의 명사형이 그림이라면 그림은 분명 그리움과 같은 뜻입니다.
한 두 살짜리 유아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세상 밖에 보이는 사실을 보고 그리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리움을 그립니다.

어른들도 처음처럼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나로부터 나오는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엄마 아빠 친구 꽃 나비 나무 강 물고기 개 새 인형 비행기 구름 별...
그림은 나로부터 일어나는 꿈같은 희망세상입니다.
보이지 않던 천진난만한 다함없는 무궁세상입니다.

어른들의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던 숨은 세계가 그리움 끝에 그림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꿈, 바램, 희망, 신난다는 것들….
좀처럼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입니다.
어른들은 마음 저 깊은 곳에 감춰진 것들. 희망, 자유, 평화, 해방, 호혜, 사랑.

그림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그림 또한 '해방'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그림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1983년 한여름 사흘 낮밤을 세워서 꿈결처럼 그렸던 내 청춘의 그림입니다.
광목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아크릴릭으로 채색한 그림인데 크기가 무려 가로 3.5미터에 세로 5.5미터나 되는 그림이랍니다.
제가 그린 그림 천여 점의 그림 중에서 가장 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큰 족자처럼 둘둘 말아서 보관할 수 있지만 족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소시 적 절에서 배우던 탱화에서 걸 탱자 따다가 걸개그림이라 이름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 그림부터 '걸개그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 작품 이름을 '해방의 십자가'라 불렀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준비위에서 기획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예수의 생애와 역사를 우리의 현실에 맞게 새로 해석해서 그려보자고
주최 측의 의도를 소중히 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총 5점의 그림이 있었는데,
'예수의 탄생',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고통 받는 민중과 함께' '예수의 죽음' '해방의 십자가.'
앞의 네 점은 2x3m 그림이고 '해방의 십자가'는 초대형이어서 경동교회 실내의 앞 벽면 십자가를 다 덮고도 남던 큰 그림이었답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은 걸자말자 입방에 오르내렸습니다.
총회가 끝나고도 기독교장로회가 이 그림들에 대한 찬반 양론으로 갈렸습니다.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종교계에 그림을 가지고 신학논쟁이 붙은 사례는 아마 이것이 처음일 겁니다. '이게 무슨 성화냐. 기독교를 모독했다' '성스러운 교회에 울긋불긋한 웬 절그림 같은 그림이냐' '기장에 빨갱이 해방신학이 들어온 명백한 증거다' '신성한 예수를 모독하지 말라' 등등.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화란 시대마다 역사적으로 변천해 왔다.' '색깔이 울긋불긋해서 오히려 축제 분위기를 살렸다.' '기독교가 오늘날 민중의 고통과 함께하는 예수 초대교회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예수야말로 이 땅에 다시 오더라도 가장 낮은 곳에 임할 분이시다.'
합의되지 않은 논쟁이 평행선을 그으며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논쟁사는 합의를 모색하거나 해결점을 찾으려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로 돌아서는 게 특징입니다.

이 말 많던 그림은 3년후 1986년 어느 시위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애주 나눔굿 춤판에서도 보았고 백기완 출판기념회서에도 본 듯하였는데 그 이후 못 보았습니다.
빌려가고 돌려주고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없어져버렸습니다.
사진 한 장 겨우 남아 흔적을 알려줄 뿐이니 큰 그림의 거대한 기운은 사진으로는 못 느낍니다.

이 그림 찾으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어디 있는지 모두 모른답니다.
경찰이 압수해 갔는지, 시위 집회장소에서 분실했는지,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 모두 모르쇠 놓습니다.
'최초의 걸개그림'은 이렇게 쓰레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서대문 감신대학교 강당에서 몇날 며칠 밤 꼬박 새워서 미술동인 '두렁' 후배들과 혼신으로 그린 다섯 점 걸개그림입니다.
지금이라도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사실, 이제 말하겠지만 저와 함께했던 미술동인 '두렁'은 한국 걸개그림운동의 산실입니다.
1980년대 초반 엄혹한 시절 민주화운동 현장에 걸었던 걸개그림들은 대부분 우리들이 그렸습니다.
민족미술협의회가 창립하기 이전 '애오개 문화마당'에서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시대까지 두렁은 같이 갔습니다.

그 걸개그림들은 시위현장에서 빼앗기거나 잃어버리고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림 빼앗은 경찰서에 갔다가 역시 모르쇠 타령만 듣고 왔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있어서 옛날 자료나 미술품을 기증받는다는 요청도 받지만 그림들을 거저 얻을 생각만 먼저 합니다.
정부가 출연한 재단이라면 우리가 힘이 없어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를 같이 풀 생각부터 해야 하는 게 순서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까맣게 잊었는지 몰라도 두렁과 나는 잊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깥세상에서는 아직도 기억하는 한국 '민중신학' 발 '해방의 십자가'로 포스타나 책 속에서 떠돌고 있답니다.

3·1절입니다. 봄이 오면 일어나는 파릇한 새싹처럼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참 묘하게도 우리 민족은 대보름부터 시작해서 매달마다 하나씩 거대한 현대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겨레의 꿈들' 같습니다.

동학, 3.1, 4.19, 5.18,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우리 '겨레의 꿈들'입니다.
동학의 첫 봉기는 백산에서 2월 대보름 굿판에서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내림으로 천지개벽굿을 봄마다 쳐들여 왔습니다.
겨레의 숨겨진 세계상, 그 집단무의식의 꿈- 신화, 해방, 자유, 평화의 의지가 감춰진 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드러나는 세계로 화들짝 나타납니다.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이분법이 아닌 '해방문화'입니다.

'해방의 십자가'는 꿈을 그린 그림류입니다. 보이지 않던 세계, 꿈의 자기조직화로 나타나는, 사회적 해방만이 아니고 근원적 인간해방이기도 한 분화되지 않은 신화세계입니다.
도로 깊디깊은 바다 속으로 잠겨버린 집단무의식처럼 어쩌면 이 그림도 잃어버린 게 아니고 어디론가 잠겨버렸는지 모릅니다.

한국문화의 가장 뚜렷한 정체성은 평화와 생명을 사랑하고 자연과 영혼을 나누는 '해방의 문화'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무의식 속에서 '해방의 문화'가 잠자고 있어 문화창조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류를 일구는 줄기찬 동력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라졌다고 위안하다가도 '해방의 그림'에 대한 그리움은 속핏줄처럼 한줄기로 남았습니다.
후미진 구석 지나다 거기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도 잃어버린 그림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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