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스마트폰 화면에 발신인 이름이 흰색 글자로 떴다.
'양진호 회장 전 부인'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만행을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A 씨에게 연락 온 지 딱 30분 뒤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분명해 보였다.
"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인사를 해도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저 박상규 기잡니다. 말씀하세요."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 참았으나, 끝내 비집고 나오는 흐느낌. 양진호 전 부인 박OO 씨는 한동안 울기만 했다. 잠시 뒤, 박 씨가 울며 말했다.
"도와주세요… 이번에도 아이 뺏기면…."
박 씨가 힘들게 꺼낸 이야기는, 그가 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감옥 안에서도 예전이랑 똑같이 움직여요. 재판이 갑자기 이상해 졌는데… 이번에도 아이 빼앗아 가면 저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울음)"
1년째 구치소에 있는 양진호 아이를 빼앗아 간다니... 박 씨는 그동안 진행된 '친권-양육권' 소송 기록을 메일로 보냈다. 가사 담당 재판부와 양진호가 선임한 변호인 이름과 경력을 찾아봤다.
역시 오래전, 그 양진호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양 회장 같은 사람은 더욱.
양진호 회장은 1년 전 이맘 때 구속됐다. 그는 특수강간, 마약(대마), 폭행, 강요 등의 혐의로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엽기적인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시발점에는, 양진호의 탐욕스런 이혼이 있다.
박 씨는 2000년 양진호와 결혼해 아이 셋을 낳았다. 당시 양진호는 직업과 돈이 없었다. 박 씨가 벌어오는 돈으로 양진호는 생활했다.
양진호는 2000년대 후반부터 웹하드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 유통, 마약, 과음을 시작했고 부인 박 씨를 주먹으로 때려 얼굴을 못 알아보게 만들었다. 외도를 의심해 박 씨의 동창 K 교수를 회사로 불러 집단 폭행을 교사했다.
박 씨는 2014년 2월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양진호의 힘이 빛을 발했다. 두들겨 맞은 사람은 박 씨와 K 교수인데, 법원의 판단은 늘 양진호 쪽으로 기울었다. 전 부인 박 씨가 말하는 양진호의 전략은 이렇다.
"일단, 온갖 핑계를 대서 재판을 최대한 질질 오래 끕니다. 그런 다음 측근들에게 거짓진술서를 쓰게 해서 법원에 제출합니다. 마지막엔 큰돈을 써서 전관 변호사 구합니다."
양진호가 이혼 재판 중후반에 선임한 변호사가 판사 출신 최유정이다. 전관의 힘인지, 법과 양심에 따른 정확한 판결인지, 결과는 양진호의 대승으로 끝났다.
1000억 원대 자산가 양진호는 박 씨에게 재산분할로 아파트 매매대금의 절반만 줬다. 세 아이 양육권, 친권 모두 그가 가졌다. 양진호의 꼼꼼함은 끝까지 잔인했다.
"그의 재산이 1000억 원인데, 양육비로 월 30만 원을 제가 부담하라는 결정이 났어요. 그래, 30만 원 주자… 했죠. 그런데 이 사람이 돈 보낼 계좌를 안 알려줘요. 그래서 6개월치 180만 원을 전달 못했는데, 양육비 안 준다고 또 소송 걸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예요. 끝까지 사람을 괴롭히는 겁니다."
박 씨는 2019년 4월, 세 아이 중 거의 성년에 이른 첫째를 제외한 둘의 친권-양육권을 자신에게 반환하라는 소송을 시작했다. 해당 재판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가사담당 김진하 판사가 맡았다. 양진호는 과거와 같은 전략을 썼다.
1단계 - 여러 이유로 재판을 연기하거나 법정에 안 나온다.
2단계 -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혼자 대응한다.
3단계 - 재판을 지연시키며 상대방이 주장과 전략을 모두 확인한다.
김진하 판사는 지난 9월, 양진호에게 말했다.
"최종 결정을 10월 21에서 24일 사이에 할까 합니다. 그때까지 의견서를 내 주십시오."
양진호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재판부의 결정이 임박한 10월 16일, 양진호의 변호사가 위임장을 냈다.
'법무법인 우람 김동윤, 권영문, 이미주 변호사'
박 씨의 모든 주장을 이미 확인한 양진호 대리인단은 의견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양진호는 아버지로서 담임 선생님과 연락을 하며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였고, 아이들 친구 부모들과도 소통하며 지냈습니다. 아이들 친권, 양육권 변경은 필요없습니다. 박 씨의 주장은 기각되어야 하며, 양진호가 구체적인 반박 내용을 추가로 제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4월에 시작된 재판, 결정이 임박해서야 또 시간을 달라니. 박 씨는 '법무법인 우람'을 검색해 봤다. 부산에 있는 법무법인. 재판은 성남에서 진행되는데 부산 변호사 선임… 박 씨의 등이 서늘해졌다.
대표 변호인 김동윤, 권영문을 검색했다. 혹시나 했는데, 구치소에 있어도 역시 양진호는 양진호였다.
박 씨의 친권-양육권 재판을 담당하는 김진하 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창원지법 진주지원에서 일했다. 이때 진주지원장(2017년 2월까지)이 바로 김동윤 판사였다. 김 판사는 부산지법 서부지원장을 거쳐 2019년 3월 법원을 떠났다.
권영문 변호사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창원지법 통영지원장으로 일했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든 아니든 '최유정 트라우마'가 있는 양진호 전 부인 박 씨는 충격을 받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번에도 재판이 이상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판사님이 10월 21일부터 24일 사이에 결정하겠다고 직접 말했는데, 결정이 연기됐습니다. 너무 불안합니다."
박 씨가 울며 전화했을 때는 10월 25일, 재판부는 10월이 다 갈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양진호 측의 요청대로 정말로 결정을 연기한 걸까.
11월 1일 오전, <셜록>과 <프레시안>이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취재했다. 공보담당 판사가 이렇게 말했다.
“김진하 판사가 김동윤 변호사와 진주지원에서 함께 일한 건 맞지만, 같은 재판부는 아니었습니다. 가사조사관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하느라 결정이 미뤄진 겁니다.”
재판부는 법과 양심과 따라 판단했을까, 아니면 취재가 시작되자 급히 결론을 낸 걸까. 1일 오후 박 씨가 제기한 소송의 심판문이 나왔다.
"두 아이의 친권, 양육권을 양진호에서 박 씨로 변경한다. 양진호는 2019년 11월 1일부터 두 아이가 성년이 되기 전날까지 양육비를 지급하라."
심판문을 받은 양진호 전 부인 박 씨는 또 울며 전화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권-양육권 소송에서 패한 11월 1일 오늘, 양진호는 법원에 보석을 청구했다. 그동안 양진호는 측근에게 공언했다.
"내가 나가면 애들 엄마(박 씨), 공익신고자, 박상규 기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양진호 회사에서 고위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최근 법정에서 증언했다.
"양진호 회장이 변호사 비용으로 쓴다며 회삿돈 50억 원을 빼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양진호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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