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경의선 철도 현지 조사를 위해 우리측이 군사분계선 통과를 신청했지만 불허했다. 출발 48시간 전에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긴급통행이라는 것도 있는데 고려하지 않았다. 경의선·동해선 철도 현대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요합의 사항이었고, 공동조사는 이를 위한 첫 단계 사업이었다.
유엔사는 올해 초 북한에 지원하는 타미플루 적재 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도 허가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독일에서 온 방문단을 이끌고 고성 통일전망대와 GP(감시초소)를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제동을 걸어 못 갔다.
국감장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유엔사는 2018년 이후 DMZ 출입신청 2220여 건 가운데 93%는 승인해줬다고 밝혔다. 7%, 155건은 불허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많은 것이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구성돼 정전협정을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 있다. 정전협정 1조 7항이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함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9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비무장지대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또 군사정전위원회의 한쪽 당사자가 유엔사로 되어 있고, 군사정전위 남측의 구성과 운영을 유엔사령관이 맡아서 하고 있다. DMZ 출입과 군사분계선 통과를 유엔사가 관장하는 것은 이러한 정전협정 체계에 따른 것이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우선 중단한다는 내용의 합의이고 군사정전위원회는 이 정전협정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고 합의 위반 사항에 대해 협의,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유엔사도 그런 목적에 맞게 운영되면 된다. 그런데 지금의 유엔사는 그렇지 못하다. 미군체계 속에 있으면서 미국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먼저가지 말라는 입장이다. 북한에 대해 제재를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무슨 일을 추진하고 북한과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인 것이다. 유엔사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면서 이를 반영해 DMZ 출입에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엔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다. 미군의 4성장군이다. 게다가 당초 유엔사가 생길 때는 유엔의 틀에서 창설되었지만 운영은 미국이 해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1950년 7월 24일 창설됐지만, 이후 운영은 오롯이 미국에 맡겨진 것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나 사무총장 등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1995년 북한이 유엔에 유엔사 소환을 요구하자 당시 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유엔사는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며 유엔사의 해산문제는 유엔기구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권한 내에 있는 문제'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유엔사가 유엔의 조직이 아니라 미국의 조직이라는 얘기다. 유엔사가 미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명령을 받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운영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 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유엔사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없어져야 할 존재이다.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기구이니 정전체제가 사라지는 날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한반도에 훈풍이 불게 되면 유엔사는 해체 준비를 해야 한다.
조직은 한 번 생기면 점점 커지는 속성이 있다. 파킨슨의 법칙이다. 외교정책이론 가운데 관료정치모델도 대외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관료들이 서로 자기 조직의 존속·확대·강화 등을 추구하면서 쟁투하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와중에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유엔사 입장에서는 자기조직의 해체를 앞당길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와줄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유엔사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아서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가 되려한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한미연합사는 없어지고 미래연합사가 생겨 한국군 4성장군이 사령관이 된다. 미군장성이 미래연합사 부사령관이 되어 주한미군을 지휘한다. 이런 상황이 미국에게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사를 키워 이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한미연합지휘소 연습이 실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 유엔사가 한반도 위기관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 유지 임무를 넘어 한반도 위기관리에도 참여한다는 것은 유엔사를 통해 미래연합사와 한국군을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유엔사의 후방기지가 일본에 있고, 후방기지는 유사시 전력제공국의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한국으로 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이 적극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유엔사는 확대되고 있다. 유엔사 부사령관은 종전에는 주한 미7 공군 사령관이 겸임했는데, 작년 캐나다 육군중장 웨인 에어를 임명했고, 올해에는 호주 해군 소장 스튜어트 마이어를 임명했다. 따로 부사령관을 임명해 유엔군의 규모를 확대하고 다국적성도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미8군 사령관이 겸직하던 유엔사 참모장도 따로 임명해 지금은 마크 질레트 미육군 소장이 와 있다. 유엔사 참모부의 자리들도 한국군, 미군, 제3국군으로 채워나가려 하고 있다. 독일군 연락장교를 배치하려고도 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국군 장교 20명 파견도 요청해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 정전협정의 서언(序言)은 "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 쌍방에만 적용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협정의 내용은 군사적 부문에만 적용된다는 얘기다. 비군사적 성격의 DMZ 출입까지 군사정전위원회와 유엔사가 관장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화재를 조사하고, 북한에 의약품을 전해주고, 환경조사를 하는 것까지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고 하겠고, 이는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그런 부분에 대한 정밀한 연구, 그에 따른 유엔사 권한의 엄밀한 제한이 우선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유엔사가 자기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종전선언, 평화협정까지 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남북이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단계로 나아간다면 '유사시'를 상정해 유엔사의 역할과 조직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논리적 기반이 약해진다. 유엔사의 발밑을 파는 작업, 설 자리를 아예 없애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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