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달라져 이불을 정리했다. 여름 이불을 빨아 넣어두고 도톰한 겨울이불을 꺼내고, 여름 옷들을 정리한 뒤 긴팔과 겉옷들을 정리해 놓는 일. 1년에 서너 번쯤, 철이 바뀔 때마다 하는 빼놓을 수 없는 가사노동이다. 이런 노동에는 자연스레 계절의 변화와 날씨에 대한 생각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올여름은 그래도 잘 넘겼어, 올겨울은 얼마나 추우려나. 올해는 태풍이 잦네.'
기후 변화는 누구에게 잔혹할까?
해마다 이즈음이면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만 올해는 꽤 긴 시간 날씨에 대해 생각했다. 봄이면 황사, 여름이면 폭염, 가을이면 태풍, 겨울이면 폭설과 혹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면 종종 뚜렷한 사계절이 과연 장점인가 곱씹기 마련이지만 올여름 유럽의 폭염 뉴스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고, 잦은 태풍이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기후 위기를 말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산업재해가 비정규직에게 더욱 자주 가혹하게 일어나며, 그 보상이나 처리조차 불평등하다는 것을. 삶뿐만 아니라 죽음조차 불평등하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사회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그들을 위험으로 밀어 넣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날씨는 어떨까. 더 더워지고 더 변덕스러워지는 날씨는 누구에게 가장 잔혹할까.
"2018년 8월 3일 정오 12시 55분경 은평구 진관동에서 주차도우미로 일하던 김 모씨(31세, 남)가 오전 11시부터 어지러움증을 느끼면서 점차 증상이 심해져서 몸에서 열이 나고 속이 울렁거려 의식을 잃을 뻔하여 본인이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2018년 8월 5일 09시 39분경 강동구 고덕동의 25층짜리 공사 중인 건물에서 작업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근로자 김 모씨(45세,남)가 쓰러졌고, 같은 날 10시 50분경 용산구 한남동의 건축공사장에서 근로자 임 모씨(46세, 남)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으며, 또한 11시 8분경 도봉구 창동에서 에어컨이 고장 난 가게에서 2~3시간 더위에 노출된 장 모씨(72세,남)가 구토, 오한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119에 신고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발표한 여름철 온열질병 사례 중 일부다. 기록적 폭염이라는 단어가 언론을 장식하는 동안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고시원에서,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에서, 경비노동자의 사무실에서, 뙤약볕의 야외 건설현장에서 사람이 죽어갔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폭염피해 구급활동 자료를 보면,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작년 2018년이 414건으로 가장 많았고, 폭염 일수가 가장 적었던 지난 2017년이 56건으로 가장 적었다. 특히 야외 건설 노동자에게 더위가 더욱 가혹했다. 직군별 통계가 아닌 연령대별 피해를 보면 61세 이상이 353명(58.8%), 51~60세까지 110명(18.3%), 41~50세까지 62명(10.3%), 31~40세까지 29명(4.8%) 등의 순이었다.
위험은 평등하고 또 불평등하다
인간이 지구를 괴롭힌 결과를 우리는 이제 뉴스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더 많은 태풍, 더 높은 온도의 여름, 지독한 추위의 겨울, 몇백 년만의 기록적 폭우나 폭설. 이 모든 위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화산이 터지고, 태풍이 불고, 혹서와 혹한의 날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지만 위험을 회피하는 것도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더 안전한 주거를 찾고, 안전한 먹거리를 고르고, 쾌적하고 안전한 직장을 고르는 일은 지구의 분노로부터 도주하는 좋은 방법이지만 누구나 그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의 회피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기록적 폭우로 물이 넘치는 집,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집은 타워팰리스가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빈곤하다는 것은 양말 한 짝에서 '취향'을 들이밀 수 없다는 것이라고. 취향이 아니라 안전한 삶은 말해 무엇할까. 태어나는 병원부터가 다른 자들과 대대로 이어진 재산과 사회자본의 차이는 교육과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거주지역과 노동환경의 선택지를 좁혔으며,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배제로 이어진다. 삶의 구석까지 알알이 들어와 박힌 가난에 잔혹한 날씨는 언제나 빈곤을 더 무겁게 하는 일이었다. 고된 삶에 더 가혹해진, 더 잔혹해진 날씨가 더해지고 있다.
위험에 더 취약한 자들은 생물학적 약자와 사회경제적 약자이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폭염은 노인에게 더 위험하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폭염사회>(홍경탁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서 지적한 대로 1인 독거 노인들에게 폭염은 공포였으며, 사회적 연결망이 단절된 노인들에게 더욱 심각한 피해를 줬다. 그는 출신 국가나 인종적 커뮤니티, 공동체의 커뮤니티가 있는 곳은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고립되고 가난하고 외로웠던 노인들이 폭염 속에서 사망했던 시카고의 그해 더위를 기록했다.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획득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어야 하는가. 현대경제원의 지난 3월 발표에 의하면 공기청정기나 마스크 등과 같이 미세먼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가구당 월평균 2만 1260원이었다. 공기청정기를 사고, 전기장판을 사고 에어컨을 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이 방법 외에는 없는가. 결국 공동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빈곤의 그늘을 투명하다고 인식해버린다면, 위험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빈곤이 주는 고통을 배가시킨다.
텀블러와 에코백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에 대해 많은 뉴스를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보다 조금 더 피부로 느껴지는 뉴스가 되었다. 여름은 더 덥고, 비는 더 많이 오고, 겨울은 더 춥다. 과거에 비해 슈퍼태풍으로 성장하는 비율도 증가했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37만 가구가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며, 15만 가구가 고시원에 살고 있다. 오피스텔을 제외하고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가구의 40% 이상은 고시원에 산다. 가구주가 일을 하는 비율(79.2%)은 높지만 월평균 소득은 200만 원 미만 비율이 51.3%에 달했다. 거주한 기간은 1년 미만 비율이 27.1%로 가장 높지만, 20년 이상 비율도 10.7%로 낮지 않았다. 이들은 가구당 평균 16.7㎥의 공간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인 가구는 71.9%(26만6000가구)에 달하며 평균 가구원수는 1.4명이었다(주택 이외 거처 주거실태조사,2018). 이들은 기후변화를 어떻게 느낄까.
이제는 기후가 변화한다는 단어가 아니라 기후 '위기'라는 단어로 진화했다. 이 '위기'는 또 얼마나 빈곤의 깊이를 더할 것인가. 이 위험 앞에서 더 취약한 사람들, 생물학적 약자인 노인이나 아이들은 물론 안전한 곳으로 달아날 곳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공동체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미세먼지를 피해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것이 최선일까.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이제 7억 톤을 넘었다. 여전히 석탄발전소는 60기가 가동 중이다. 그리고 올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 것인가. 날씨는 더 변덕스러워질 것이고, 이제 누가 더 고통받는지, 누가 이 위험의 최전선에 놓여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삶 위에 딛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방파제를 쌓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이 방파제를 쌓는 일은 모두 개인의 책임이어야 하는가.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책 <피프티 피플>(정세랑 지음, 창비 펴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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